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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Stop Making Sense."

   

영화 제목은 그 자체로 데이비드 번과 토킹헤즈의 미학적 태도를 압축한다. 번이 2023년 NPR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토킹헤즈의 대표곡 Burning Down the House는 "감정적 충격을 주는 논리적 비연속성"의 집합체라고 했다. 이는 토킹헤즈의 음악이 문자적 논리보다는 감정적 울림을 우선시한다는 그의 미학관을 보여준다. 즉, 기존의 '말이 되는' 논리를 의도적으로 해체하여 새로운 감각적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조나단 뎀 감독이 1983년 할리우드 팬타지스 극장에서 3일에 걸쳐 포착한 이 공연 실황은, 바로 그 역설적 미학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해 낸 걸작이다. 부자연스러운 몸짓, 럭비복처럼 부풀려진 오버사이즈 슈트, 기계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 모든 요소가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Stop Making Sense)'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미적 일관성이 구축된다.


이번 4K 복원판을 통해 재발견한 사실은, 이 공연이 단순히 1980년대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유효한 충격을 주는 실험적 퍼포먼스라는 점이다. 첫 곡 Psycho Killer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머신만으로 조성된 간결한 긴장감은 관객을 즉시 몰입하게 만들었고, 이후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음향적 구조는 공연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적 경험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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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번의 퍼포먼스를 보며 느끼는 묘한 감정은 복합적이다. 일본 전통 연극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기괴함과 동시에 강렬한 매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초 일본 투어를 통해 가부키, 노, 부토, 분라쿠 등 전통 연극을 접한 토킹헤즈는 이들의 고도로 양식화된 형식을 록 무대에 적극 이식했다. 번의 경직되고 각진 손동작, 의도적으로 절제된 표정, 그리고 상징적인 오버사이즈 슈트는 일본 전통 연극의 엄격한 신체 언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문화적 차용의 차원을 넘어선다. 일본 전통 연극의 '양식화'는 자연스러움을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더 강렬한 의미 전달을 추구하는 미학이다. 번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로보틱하면서도 제의적인 움직임은, 익숙한 록스타의 카리스마를 버리고 새로운 무대 언어를 창조하는 실험이다. 관객은 그의 퍼포먼스에서 서구적 록 콘서트의 관습을 벗어난, 거의 샤머니즘에 가까운 에너지를 감지하게 된다.


토킹헤즈의 음악적 성취는 뉴웨이브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펑크의 DIY 정신과 아트록의 실험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펑크의 신체적 그루브와 월드뮤직의 다문화적 요소를 정교하게 결합한 이들의 사운드는 기존 록 음악의 지평을 확장했다.

 

특히 Burning Down the House에서 드러나는 음악적 구조는 주목할 만하다. 번의 경련적인 몸짓은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음악 자체의 시각적 번역에 가깝다. 신디사이저의 기계적 펄스, 베이스의 유기적 그루브, 그리고 인간 신체의 예측 불가능한 리듬이 삼중주를 이루며, 청각과 시각이 분리되지 않는 총체적 예술 경험을 창조한다.

 

이는 단순히 '춤을 추며 노래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토킹헤즈는 움직임 자체를 음악적 요소로 편입시킴으로써, 관객이 음악을 '듣는' 동시에 '보게' 만드는 새로운 감각적 언어를 개발했다. 이 언어는 감각과 해석, 몸과 정신, 리듬과 의미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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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시각적 클라이맥스인 데이비드 번의 '빅 슈트'는 단순한 기행이 아닌 정교한 계산의 산물이다. 번이 "내 머리를 작아 보이게 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이 의상은, 인간 신체의 비례를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무대 위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재정의한다. 이 슈트는 움직임을 제한하면서 동시에 확장하는 역설적 기능을 수행한다. 불편해 보이는 이 의상 안에서 번은 더욱 정밀한 제스처를 구사하는데, 그것은 음악의 정교한 구조와 완벽하게 공명한다. 결과적으로 이 의상조차도 무형적 언어가 되어, 움직임과 의미, 신체와 사운드가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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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Making Sense의 가장 탁월한 연출적 장치는 밴드 멤버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음악이 완성되어 가는 구조다. 첫 곡에서 홀로 무대를 지키던 번에 곡마다 새로운 연주자가 합류하는 이 방식은, 단순한 세트리스트를 넘어 하나의 서사적 아크를 형성한다.

 

베이스, 드럼, 키보드, 기타, 백보컬, 퍼커션이 차례로 추가되면서 사운드스케이프는 점층적으로 확장되고, 관객은 이 구성에서 특별한 쾌감을 얻는다. 이는 마치 건축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각각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될 때마다 기존 음악적 구조는 재정의되며, 균형이 맞춰져 탄탄해진다.

 

무엇보다 이러한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다음에는 어떤 악기가, 어떤 연주자가 등장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공연 전체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Playlist]

 

Psycho Killer

Heaven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Found a Job

Slippery People 

Burning Down the House 

Life During Wartime 

Making Flippy Floppy 

Swamp 

What a Day That Was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Once in a Lifetime

Genius of Love

Girlfriend Is Better 

Take Me to the River

Crosseyed and Painless

 

 

4K 복원 작업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시각적 디테일들은 이 공연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과거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번의 미세한 표정 변화, 연주자 간의 아이컨택, 조명의 세밀한 변화 등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원본 멀티트랙 레코딩에서 새로 진행된 돌비 애트모스 믹싱은 악기의 공간적 배치를 더욱 정밀하게 전달한다. 이를테면, 티나 웨이마우스의 베이스라인에서 미묘한 코드 체인지와 하모닉스가 새롭게 드러나는데, 토킹헤즈만의 폴리리듬을 한층 더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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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시사회에서 이 복원판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번의 첫 등장이었다. 거대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Psycho Killer"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묘한 고독감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고독은 점차 다른 연주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해방되고 확장되어 갔다.


이 공연을 보며 깨달은 것은, 토킹헤즈의 음악이 단순히 '무대를 잘 짠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내면극이라는 점이다. 각 곡의 전환과 조명의 변화는 감정의 점층적 축적을 만들어내며, 관객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적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마지막 곡이 끝날 무렵, 벅찬 감정이 밀려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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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헤즈가 1980년대에 실험했던 장르 간 경계 허물기, 전자음악과 아날로그 악기의 융합, 퍼포먼스와 음악의 통합적 접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방법론이다. 특히 K-pop을 비롯한 현재의 대중음악이 퍼포먼스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토킹헤즈의 선구적 실험은 큰 의의가 있다.

 

결국 Stop Making Sense는 기존의 논리적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적 질서를 창조하라는 예술적 명령처럼 들린다.

 

토킹헤즈는 '말이 안 되는' 요소들을 조합하여 새롭게 '말이 되는' 미학을 구축했고, 감독 조나단 뎀은 그 창조의 순간을 영화사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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