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하지 않는 영화다. 관객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보여준다. 압도적 짜릿함을 선사하는 킥이 될 만한 장면은 없더라도, 155분 내내 연속되는 스릴과 멋짐이 관객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정체성에 충실한 영화라는 말이다. 레이싱 영화에서 기대하는 스피드와 쾌감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를 기대하는 이에게는 상처를 숨기며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관능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할리우드 스토리
젊었을 적 불운의 사고로 인한 두려움과 아쉬움으로 F1의 주변만 겉돌던 소니 헤이스는 여전히 자신이 최고임을 증명할 기회를 얻는다. 일생일대의 기회이지만, 그닥 좋은 여건은 아니다. 꼴찌를 달리고 있는 팀인 APXGP와 자신의 실력을 무시하는 어린 팀원 조슈아 피어스의 존재 때문이다. 주인공을 달갑게 보지 않는 시선과 역경 어린 환경, 그렇지만,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흐르는 중년 남성,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끝내 이루어지는 사재 지간. 어디선가 본 듯한 스토리 구조는 사실 조셉 코센스키 감독의 전작인 ‘탑건: 매버릭’과 유사하다. 중년 판타지를 자극하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작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클리셰가 하등 나쁜 것만은 아니듯, 분위기 형성에 충실한 스토리텔링은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굳이 어떠한 변화가 아니더라도 기본에 충실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짙은 향기가 날 수 있다.
캐릭터가 브래드 피트에게 찰떡이란 점도 영화의 전통성을 대변한다. 소니 헤이스는 마치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남성상의 표본과도 같다. 단추를 두 세개씩 풀어 레이어드한 목걸이를 내보이는 패션이나 맥도날드의 특대 사이즈 콜라를 차에 두고 다니는 면모 같이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브래드 피트가 이미 숱하게 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소니 헤이스는 특히 그의 대표작인 ‘머니볼’의 캐릭터인 빌리 빈과 유사한 점이 많다. 야성적이지만 말 못할 과거를 숨기고 있다는 점,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팀을 위한다는 점, 무엇보다 남들이 루저라고 해도 사랑하는 것을 놓지 못한다는 점과 비즈니스적 개입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이제껏 브래드 피트가 맡아온 캐릭터들에서 알 수 있듯, 소니 헤이스는 그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다.
전진, 쾌속 질주
레이싱 영화인 만큼 스토리 전개 또한 쾌속 질주다. 소니 헤이스의 과거사에 대해서 긴 플래시백을 가져갈 수 있었으나, 영화는 기자회견에서의 몇몇 멘트로 일격에 끝낸다. 앞서 말했듯, 소니 헤이스는 워낙 전형적인 할리우드 남성상이다. 그렇기에 그가 겪어온 굴곡진 삶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어림짐작 할 수 있다. 대신 영화는 소니 헤이스의 캐릭터성에 기댄다. 그의 성격적 기질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하며(그를 따라 러닝하는 팀원이 점차 늘어나는 장면처럼) 과거가 아닌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가 APXGP에 남긴 발자취를 몽타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를 응원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소니 헤이스의 레이싱 수법은 더욱 거침없고 과감하기까지 하다. 팀원인 조슈아 피어스를 밀어주기 위해 상대방 차량과 일부러 충돌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현실 F1 팬들 사이에서는 규칙 위반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큰 논쟁 거리인 전략은 영화 속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F1이라는 꿈의 무대에 서지 못하며 주변만 뱅뱅 돌 뿐인 그였기에 억울함을 분출하는 듯한 공격적인 레이싱을 해왔을 테다. 그의 레이싱은 오프닝 장면에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고로 인해 F1을 떠나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팀의 승리를 위해 자의적인 충돌을 감행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이 최고임을 세상에 보여주고픈 굴뚝 같은 마음보다 팀스포츠 정신을 우선시한 결과란 점에서 입체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한다.
소니 헤이스는 영화에서 다양한 질문들을 마주한다.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나요?'나 '돈이 문제가 아니면 뭐가 문제인데요?' 같은 질문들이 그러하다. 그럴 때면 그는 쿨하게 대처한다. '네, 그러게요' 라는 식이다. 현재에 충실하고 전진하는 것만이 오로지 두려움과 미련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해답인지는 모르나, 피트 스톱에서 자신이 원하는 타이어로 교체될 때까지 기다리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관철하는 승부사다.
다채로운 구조
단순히 소니 헤이스만의 영화는 아니다. 비즈니스 드라마 같은 서사도 존재라며 조슈아 피어스를 중점으로 성장 드라마적 요소 또한 가미되어 있다. 조슈아 피어스와 소니 헤이스는 여러 부분을 대치하면서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주인공인 소니 헤이스부터 어른스러움과 소년미를 둘 다 겸비한 만큼 조슈아 피어스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그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치기에서 나오는 무모함과 대범함, 재능을 믿는 태평함과 노력을 따르는 꾸준함 등이 그렇다. '탑건 매버릭'에서도 매버릭과 루스터를 통해 볼 수 있던 라이벌이자 사제 구도이기도 한 만큼, 조셉 코센스키가 가장 잘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의 젊은 층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비틀어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과 의리를 일깨우는 연출에는 도가 튼 것처럼 보일 정도다. 마지막에 소니 헤이스와 조슈아 피어스의 얼굴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연출은 대미다.
조슈아 피어스의 시선을 따라가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소년물이기도 하다. 스승과도 같은 사람과 서로 이빨을 으르렁대다가도 끝내 배울 점을 엄숙히 받아들이며 한 층 성장한다. 다소 작위적인 면도 존재하긴 한다. 1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바라보는 장면은 제작에 적극 참여한 루이스 해밀턴과 신성 조슈아 피어스의 국적이 똑같다는 사실만큼 귀엽게 볼 만하다. 하지만, 초반부에는 '사과는 약함의 상징'이라며 어머니에게 소리친 조슈아가 마지막 레이싱에서는 타이어가 닳은 것에 대해 팀원들에게 먼저 사과하는 부분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드라마적 요소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또한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을 뿐이었다. 그가 어머니의 곁을 떠나는 엔딩이 아닌 모성애를 통해 서로 성장하는 모습 또한 영화는 어떤 것이든 조금의 오해와 지나침이 있을 뿐, 잘못된 것은 없음을 말하는 듯 하다.
영화는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달리는 오프닝 신과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를 질주하는 엔딩 신처럼 눈요깃거리로도 확실한 값을 해낸다. '포드 V 페라리'의 아성을 이을 만한 부분이 확실히 존재한다. 루이스 해밀턴이나 샤를 르클레르, 막스 베르스타펜 같은 현 F1 스타들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F1 팬에게도 영화팬에게도 큰 일갈 없이 충분한 기대를 채울 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