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관에 들어섰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시절의 너> 라는 영화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간 것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광고에서 선명히 들려오던 배우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你保护世界,我保护你。
넌 세상을 지켜, 나는 너를 지킬게 라는 말이었다. 이 말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나를 끌었던 것인지.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이상한 확신이 마음 속에 들었다. 첸니엔이 지키고 싶었던 세상이 무엇인지, 베이가 지키려는 첸니엔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 가는 그 발걸음이 가볍고, 흥미로웠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첸니엔’ 은 시험을 잘 치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진 모범생 소녀이다. 무엇 하나 엇나가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온 아이이다. 반면에 다른 삶을 살아온 베이는, 누군가에게 맞아 피떡이 된 상태로 첸니엔을 맞이한다. 이들은 첫만남부터 하늘이 이어준 구원이었을까. 정반대의 삶을 사는 그들이었지만, 단시간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첸니엔은 하루같이 베이의 아지트에서 공부하고, 생활했고, 베이는 첸니엔의 그림자가 되어 묵묵한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베이는 첸니엔이 시달리는 학교폭력에서부터 잠시 피할 수 있는 그늘,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베이는 첸니엔의 그림자가 되어, 온전히 입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베이가 경찰서에 들어가 심문을 받은 날에, 첸니엔은 학교폭력 주동자의 습격을 받아 머리카락도 잘리고, 옷도 찢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베이는 울며 첸니엔의 머리를 밀어준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장면이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의 포인트는 첸니엔의 미묘한 얼굴 표정이었다. 첸니엔은 체념을 한 듯한 얼굴을 지으면서도, 웃음을 지었고, 그 아래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 얼굴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이런 사건을 당한 와중에도 첸니엔은 세상을 이롭게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을 잃지 않았다. 계속 입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첸니엔을 괴롭힌 학교폭력 주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당연히 그 의심의 화살은 첸니엔에게 돌아갔다. 어떻게든 첸니엔을 지키려는 베이는, 자신이 모든 잘못을 감당하고 첸니엔을 대신해 감옥에 들어간다. 하지만 형사는 무언가 찝찝해 베이를 미끼로 첸니엔을 자극해 결국 자수를 받아낸다. 그렇게 첸니엔은 4년형의 벌을 받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이 되어준 첸니엔과 베이.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두사람 뿐이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준다는 것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영화에서 베이는 철저한 첸니엔의 지지자, 그림자가 되어준다. 학교폭력의 위험이 도사리려고 하면 지켜주고, 자신의 집에서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사실 첸니엔은 친엄마에게도 벌림받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첸니엔에게 유일한 사랑을, 무언의 지지를 보내준 것은 베이였다. 심지어, 첸니엔의 죄를 대신해서 베이가 감옥에 들어갔다. 범죄자인 척을 하며.
우리는 얼마나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하는가.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하고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을 위한 방식으로 사랑하는가? 이 영화를 보고 우리의 사회를 정말 많이 생각했다. 영화를 본 후 감상평을 모아두는 노트에 다섯 글자로 감상평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나는?” 이렇게 다섯 글자였다. 지금의 사회는 얼마나 우리가 따뜻함을 느끼며, 서로를 도와주고 의지하며, 나는 얼마나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했는가? 노력이라도 해봤는가? 사람들을 묵묵히 도와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며 세기의 사랑을 느꼈다. 서로가 정말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베이는 첸니엔을 기꺼이 도왔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물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영화 속에서의 첸니엔과 베이만큼 어려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처럼 극적으로 치닫는 사건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는 이에 비해 얼음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잘하면 돼” 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말일수도 있다. 요즘을 살아가보면 진짜 “작은 정”이라도 감동을 받는 사회이다. 종업원의 무심코 건넨 한마디에,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는 사회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텐데도 불구하고, 감동을 받는다. 이는 얼마나 우리의 사회가 얼어붙었는지 잘 알려주는 것 같다. 첸니엔과 베이처럼 극단적으로 서로의 구원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사소한 행동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 도와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두 명의 세기의 구원을 넘어, 더 크게 나의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는 영화였다. 정말 많은 생각을 안겨준 영화라서, 나에겐 아직도 인생영화로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이 영화로 인도한 나의 발걸음들을 참 감사해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