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0250421221844_yxtvcvuv.jpg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문득,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이는 날이 있다. 회색빛 도시, 회색빛 거리, 회색빛 사람들과 회색빛 하늘까지.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건 다시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칠할 어떤 색깔이다. 희망이라고도, 사랑이라고도 부르는 가슴 뛰는 무언가. 그 색은 질리도록 듣고 또 듣는 노래 속에 녹아있기도 하고 유치하다며 깔깔거리며 재밌게 본 영화 속에 슬쩍 숨어있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미소에도, 온 세상을 한바퀴 쓸어내리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도 우린 새로운 색깔을 찾을 수 있다.

 

유독 사랑하는 해가 지는 시간 속에 잠시 가만히, 그 안의 나를 문득 깨닫는 것만으로도. 찬찬히 퍼져나가는 가슴 뛰는 고동을 따라 우리의 세상은 다시 황금빛 노을의 색으로 물든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건 이렇게 지독히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며 사랑받았고 또 여전히 사랑받는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강렬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칠한다. 그렇게 삶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담아낸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공연브랜드 K-컬쳐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이 오는 5월 8일(목)부터 6월 28일(토)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창작 초연으로 선보이는 신작 '단심'은 모두가 아는 심청의 이야기이지만, 이번엔 누구도 보지 못한 심청의 마음을 마주하는 작품이다.

 

내면의 갈등,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무대, 심청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단심'은 고전 설화 ‘심청'을 모티프로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무대 전체를 채우는 화려한 영상으로 구현하는 판타지적 세계와 한국 전통 복식을 바탕으로 각 막의 정서와 무대 구성에 맞게 어우러지는 다층적으로 해석된 의상이 유독 아름다웠다.

 

한국 전통문화의 진화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은 정구호 연출과 정혜진 안무가가 전통 설화를 감각적인 연출로 재탄생시킬 '단심'을 위해 다시 만났다.

 

‘정구호 스타일'로 불리는 간결하고 정제된 미장센과 우리 전통 춤이 만나 비워내되 몰입도 높은 무대로 심청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KakaoTalk_Photo_2025-05-20-01-20-15 006.jpeg

 

KakaoTalk_Photo_2025-05-20-01-20-15 008.jpeg

 

KakaoTalk_Photo_2025-05-20-01-20-15 009.jpeg

 

 

공연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심청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과, 그 후 마주한 화려한 용궁세계였다.

 

화려한 조명과 영상, 물 흐르듯 어우러지는 안무와 하늘하늘한 의상으로 무대 위는 무한한 공간을 품은 세상이 되었다. 특히 ‘용궁 여왕' 역할을 맡으셨던 채시라 무용수의 독무 파트가 인상적이었는데, 무대를 꽉 채우는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익살스러운 연기의 뺑떡 어멈, 폭풍우가 몰아치는 인당수 바다 위 선원들의 단체 안무, 그리고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를 찾기 위해 연 화려한 맹인잔치까지 볼거리 풍성한 공연이었다.

 

격랑이 몰아치는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고 또 극적으로 아버지 심봉사를 마주하는 심청이는 여전히 우리를 선뜩하게도, 가슴 저릿하게도 한다. 수많은 이본과 재해석 작품들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선명한 색깔을 ‘심청’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

 

기존 이야기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잘 녹여낸 흥미롭고도 다채로운 공연이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