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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재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클래식한 수트 차림에 깔끔하게 정돈된 헤어스타일이었다. 스탠다드 재즈가 익숙한 편이라 그런걸까. 피아노와 드럼 기타와 목관 악기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인 걸까. 즉흥적인 음악이지만, 멋지고 복잡한 소리가 주는 정돈된 느낌에서 오는 생각일까. 어쨌든 이것들이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이들을 만난 직후 곧장 깨닫게 되었다. 바로, 세 명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다.

 

 

 

아티스트의 철학이 담긴 사랑스럽고 유쾌한 재즈 타임!

: Mathis Picard Trio First Liv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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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성수 아트홀에서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올해로 만 30세인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인 마티스 피카드는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장 창의적인 피아니스트이다. 어릴적부터 프랑스 퐁텐블로, 미국 시카고, 영국 맨체스터 등 다양한 곳에서 살면서 다국적 배경의 음악과 문화를 습득하였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줄리어드 음대 재즈과에 입학한 마티스 피카드는 현재 그의 세대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다. 그를 두고 영국의 Whatsonstage는 “끝내준다, 건반 위에서 비르투오소적인 모습만큼 역동적인 성격”, Downbeat 잡지는 “찬란한 클래식 기법과 생생한 상상력”을 지녔다는 찬사를 한 바 있다.


함께 활동하는 뉴욕 태생의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는 어릴적 부터 교회에서 가스펠 베이스를 연주했으며, 미국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에서 일렉 베이스 전공으로 입학을 했던 특별한 사례를 만들었고 일렉 베이스와 더블베이스 둘다 전공으로 졸업을 한 이후 그래미 수상경력이 있는 보컬그룹 Sweet Honey In The Rock에 합류하여 투어를 하였다.


드러머 조에 파스칼은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으로, 현재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2001년생 뮤지션이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영국 재즈씬의 라이징 스타이다. 11세에 Soultone의 영국 최연소 엔도저로 선정되었고, 영국의 “올해의 젊은 드러머”상에 2015년~17년 3년 연속 파이널리스트 선정 및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Junior Jazz Academy 프로그램 초청 및 영국 길드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재즈 전문잡지 Jazzwise가 “주목해야할 아티스트”로 2018년과 2019년 연속 선정된 바 있으며, 영국 재즈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이렇듯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뮤지션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팀의 첫 내한이라니! 현대의 재즈 음악이라고 해봤자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음악만을 들어봤던 터라 그들의 음악을 접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건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기존의 재즈가 아닌 색다른 느낌의 연주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공연 전, 라이브 영상 하나를 예습할 겸 감상하고서 성수아트홀에 방문했다. 라이브 영상으로 먼저 접한 그들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재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즉흥성"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영상이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자유로움, 그리고 관객과의 교감까지. 어쩌면 진정한 재즈를 맛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착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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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불이 꺼지고, 이윽고 무대 위로 조명이 비춰졌다. 무대는 단촐했다. 그랜드 피아노와 드럼, 일렉 베이스가 전부였다. 악기 외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랜드 피아노에 걸쳐 있는 알록달록한 러그일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라도 하는 듯,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 퍽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의 정적 이후, 히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복장의 마티스 피카드와 일렉 베이스 기타를 든 파커 맥앨리스터, 그리고 악동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조에 파스칼이 무대로 올랐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한국 관객을 맞이한 그들은 이윽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첫 번째 곡 "Hello"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아프로 느낌이 물씬 풍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보사노바풍의 박자감과 함께 산뜻한 봄 느낌의 멜로디가 이어졌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만으로도 이토록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음악에 담겨 있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관객의 품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연주 중간에 흥이 난 마티스 피카드가 피아노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추며 무대를 마음껏 즐기기도 했는데, 재즈에서 보여주는 즉흥연주가 아닌 즉흥 몸짓은 처음 봤던 터라 상당히 신선했고 덩달아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이들의 첫 인상에서부터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며 관객들은 삽시간에 압도 당했다.

 

“Hi! How's it going?”

 

첫 곡이 끝난 후, 마이크를 든 마티스 피카드가 관객에게 던진 질문은 요즘 어떻냐는 질문이었다. 마치 친한 친구를 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편하게 관객을 대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한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처음 보는 낯선 땅의 팬들에게 이토록 다정한 뮤지션이라니! 이에 질세라 한국의 관객들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귀여운 영어 답변에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졌다. 마티스 피카드는 음식도 너무 맛있었지만, 그보다 더 최고였던 건 한국 사람들이였다며, Welcoming’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답했다.

 

그렇게 관객과의 짧은 대화 후, 두 번째로 "Space Between Breath"를 선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새까만 우주에서 유영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를 시작으로, 드럼이 얹어지면서 순식간에 리드미컬한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거기에 베이스가 합세하면서 그루비하지만 펑키한 느낌까지 더해졌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재즈가 아니었다. 얼핏 들으면 R&B 장르인가 싶을 정도로, 잔잔하지만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무대 위에 있는 세 명의 뮤지션은 각자의 방식으로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재즈에서 이야기하는 스윙을 눈으로 목도하게 되다니!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연주를 마친 마티스 피카드는 다시금 관객에게 말을 걸어왔다. 본인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뉴욕에 대한 얘기였다. 그는 자연스레 뉴욕에 다녀온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고, 답변을 듣고난 후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뉴욕에는 전설적인 박물관과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우리에게는 "L-O-V-E"로 잘 알려진 전설적인 재즈 아티스트 냇 킹 콜의 곡인 "Penthouse Serenade"를 연주하겠다고 했다. 제목만 듣고서는 모르는 곡이라고 생각하여 일단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자는 생각을 했지만,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단박에 알아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곡을 찾아 들으면,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곡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더욱 짙은 농도로 편곡하여, 정말 뉴욕 어딘가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서 샹들리에와 달빛이 반짝이는 통창을 바라보며 뉴욕의 밤 전경을 살펴보는 듯한 이미지가 곧바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기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넉다운' 되고 말았다. 3번째 곡을 감상할 당시 썼던 메모의 일부로 여러분께 그 소감을 전한다.


 

재즈가 이토록 사랑스럽고 자유분방하며 힙하다니...!

정말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재즈는 이런 모습이구나.

 

 

네 번째 순서는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설명을 덧붙인 "HO AZY". 마다가스카르어로 ho azy는 그녀를 위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마치 정글을 연상시키는 생경한 소리로 시작해, 이윽고 사랑스럽고 포근한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중간 중간 메트로놈과 닮은 소리가 나왔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또 다시 온몸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음악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흔들거리는 몸짓, 흥에 겨워 절로 나오는 추임새. 어느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음악에 몰두해야, 얼마나 합을 맞춰야 이런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을까. 급기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곡은 끊임없이 박자를 바꾸어 가며 진행되었고, 드러머 조에 파스칼이 박자를 쪼갤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열정적인 연주 이후, 또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까는 뉴욕에 갔다온 기분이 들었냐고 묻던 질문은 어느새 목적지가 마다가스카르로 변해 있었다.

 

이후 이들은 연달아 3곡을 연주했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곡은 "Careless Thoughts"다. 우선 설명부터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평소에 불필요한 생각들을 하는데, 그게 곧 자신에 대한 의심이 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인지하며, 의심을 지우고 당신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 곡에 담긴 그의 생각의 깊이에서 또 한 번 반하고 말았다. 진정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는 늘 귀하니까. 그렇게 시작한 곡은 정말로 잡다한 생각이 많았을 때의 복잡한 심경을 음표로 나타낸 듯 했다. 그러다 그의 말처럼 상큼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뭘 그렇게 걱정하냐고 다정하고 위트있게 곁을 지켜주는 친한 친구의 말 같이 말이다.

 

또한 공연 중반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해당 곡부터 본격적으로 무대에 더 깊이 몰입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드러머 조에 파스칼은 집중할 때 입술을 내밀었고,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는 목으로 한껏 리듬을 느끼며 연주하고 있었고, 피아노의 마티스 피카드는 페달을 밟지 않는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처럼 온몸으로 연주하는 그들을 보며, 바쁜 일상에 꺼질 수밖에 없었던 열정에 불씨가 지펴졌다. 그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며, 열심히 무대에 임하는 모습에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7번째 곡"Prana"는 서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이면서도 도입부에서 마티스 피카드가 보여준 스킬이 신선했다. 뚜껑이 열린 피아노의 줄을 튕기는가 하면, ‘큰 체격과 유쾌한 모습에서 어떻게 저런 깃털같은 터치가 나올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섬세한 연주를 보여줬다. 현대미술을 귀로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달빛이 물에 반사되는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소리에서 폭발적인 터치까지. 찬란한 클래식 기법과 생생한 상상력이라는 타이틀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Is This Love"에서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그들의 교감 능력이 절정에 다다랐다. 방긋 웃는 얼굴로 관객이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며 음악을 즐길 수 있게끔 유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멋짐으로 무장한 아티스트 이면에 자리한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 어느 때보다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순수함에서 비롯된 밝은 에너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자워지는 그런 마음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지막 곡은 "Inner Child"였다. “이 곡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 기억을 거닐어 보세요. 좋았던 기억도 있고, 나빴던 기억도 있을 거예요. (…) 음악을 들으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그저 사랑해주는 거예요.”. 음악이 치유제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1시간 반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문장과 음악이었다. 바흐가 연상되는 선율에서 이윽고 통통 튀는 밝은 음정으로 옮겨간 소리는 정말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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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새처럼 자유로운 태도와 복장. 단촐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악기 구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즈의 본질과 아티스트의 철학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았다. 유쾌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그들의 말과 음악에서 많이 배우고, 많이 위로 받았던 시간이었다. 재즈 뮤지션들이 그러하듯이 그들 또한 매 곡마다 즉흥 연주를 가미하였는데,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에게서 나온 사운드와 몸짓 모두 음악에 동화된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본기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유쾌한 즉흥 연주는 라이브 공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비단 자유로운 연주 방식과 탁월한 실력만이 아니다. 곡 중간마다 이루어진 짧은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들의 철학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어떤 소리보다도 더 가슴 속에 진한 여운과 진정한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시간 반 동안 그들이 관객에게 선물한 소리는 단순히 현대 재즈가 아닌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라는 하나의 장르였으며, '재즈의 의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연을 통해, 엄청난 영감과 에너지를 얻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 몰입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과 열정, 또 그들의 음악과 철학으로부터 느낀 위로, 좋은 음악이 선물하는 새로운 생각들. 이 모든 것들을 1시간 반이라는 마법같은 공연으로부터 얻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삶에는 늘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 예술로부터 파생된 사유의 시간. 또 다른 내일을 살게 하는 열정적인 동력 말이다.

 

살면서 본 공연 중 제일이었던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첫 내한 공연. 아직 국내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이번을 계기로 자주 한국을 찾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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