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같은 하늘 아래인데 빌런도 있고 귀인도 있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빌런이 좀 더 우세한 것 같기도 하다. 하고 다니는 성품은 어찌나 다채로운지. 어휴, 말을 말자. 누구에게나 인생 빌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그 빌런을 통해 나름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해 교훈을 얻기도 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어째 갈수록 때가 탄다. 하지만 때 타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성숙한 인격체의 모습으로 거듭난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사람을 보는 고유한 ‘기준’이 생겼고, 불순물이 체에 걸러지는 것처럼 질 나쁜 온갖 군상들을 깨끗이 걸러 낼 수 있는 ‘인간 거름망 시스템’도 구축하게 됐다. 만남과 헤어짐 속 셀프정화를 하며 궁극적으로는 이런 깨달음에까지 도달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도 있겠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요새는 바른 성품이 제일로 귀해 보인다. 수많은 종류의 매력 중에서도 본질이 올바른 게 가장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심지어 농염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나는...? 갈 길이 구만리다.


기억 속에 자리잡은 과거의 사람들을 소환해 보았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함께 동그랗게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선생님, 고무 동력기 대회에서 1초 만에 비행기가 땅으로 처박혔을 때 “얘 기회 한 번 더 줘요” 하고 어렴풋이 들리던 목소리, 앞에서는 무심했지만 뒤에서는 내 칭찬을 하고 다녔던 직장 상사. 이제 와서야 그 고마움이 실감난다.


삶에서 귀인을 곁에 더 많이 두기로 했다. 현실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드라마 아니겠는가. 그간 차곡차곡 성실하게 내적 친밀감을 쌓아 온 이들이 꽤 있다.


위로 받고 질투하고 동경 존경 다 했던, 내가 사랑한 인물들의 매력적인 면모를 한데 모아 봤다.




또 오해영 - 해영 母 <끝내는 응원자: 내게 사랑은 친년이 곁에서 주먹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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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의 엄마 ‘황덕이’. 그녀의 남다른 억척은 딸 해영 덕분이다. 하나뿐인 딸내미가 결혼식 하루 전날 대차게 결혼을 엎었다. 그것도 모자라 속없이 깔깔 웃고 밥만 잘 먹기까지.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부아가 절로 치민다. 안에서 새는 칠칠이 행여 밖에서는 안 샐까 싶어 속은 이미 골백번도 더 터졌다. 말보다 행동이 늘 앞서는 탓에 매운 손도 먼저 나가는 황 여사다.


원래 억척스러운 사람이 속정은 더 깊다. 앞에서는 모질게 굴었어도 뒤돌아서 참 많이 울었다. 그녀의 눈물은 오직 그녀만 안다. 짠한 짓만 골라 하는 딸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정 많아 슬펐던 내 인생, 해영이도 같은 코스로 걷게 될까 봐 자꾸 노파심이 든다. 칠푼이 같은 저 웬수가 날 닮아서 가슴이 아리다.


아니나 다를까, 해영이가 또 어떤 놈한테 정신 팔려서 대낮부터 도시락을 싸고 있는 것 같다. 다짜고짜 우엉 찾는 철부지 딸도 딸이지만 우엉 사러 슈퍼 가는 나도 나라고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해영의 엄마는 그렇게 해영의 옆에 앉아 말없이 주먹밥을 만든다. 이런 짓 좀 그만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응원해 주면 그래도 덜 슬프려나’ 하며 그저 조용히 딸 곁에서 음식 만들기를 돕는다.

 

하늘 아래 이런 내 편도 없다. 해영의 엄마는 결국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야 만다. 묵묵히 함께하는 것으로 딸을 보듬고 지켜 준다. 끝내는 응원자. 그게 그녀가 사랑을 행하는 방식이다. 해영이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사는 것도, 금새 툭툭 일어나 회복하는 것도 어쩌면 소리 없이 뒤에서 받치고 있는 황 여사의 사랑 덕분일 거다.


해영의 엄마가 우엉을 사러 슈퍼에 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나온 내레이션 때문에 많이 울고 웃었다. 딸처럼 엄마 속 하나 모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서.


 

-tvN 드라마 ‘또 오해영’ 中- 


1985년 5월 22일

이 동네에 여자아이가 하나 태어났지요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했습니다

왜 정 많은 것들은 죄다 슬픈지

정이 많아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친년이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래서 미웠고 그래서 애틋했습니다

차고 오던 깡통도 버리지 못하고 집구석으로 주워 들고 들어오는 친년이를 보면서

울화통이 터졌다가 또 그 마음이 이뻤다가

어떤 놈한테 또 정신 팔려 간 쓸개 다 빼 주고 있는 친년이

그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응원하는 사람이 돼 주면 그래도 덜 슬프려나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잡아채 주저앉히는 사람이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좀 덜 슬프려나

그래서 오늘도 친년이 옆에 앉아 이 짓을 합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 이익준 <만인의 친구: 스치는 사람도 모두 소중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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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형 스탯이 있으면 ‘이익준’은 여섯 개의 모서리가 전부 코너 끝까지 꽉 차오른 모양일 것이다. 능력치가 전부 최상인, 현실에 있을까 말까한 사기 캐릭터. 익준은 올라운더다. 정말이지 빠짐없이 다 잘한다. 의대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했지, 본업 천재지, 성격 좋지, 재밌는데 센스도 있지, 기타까지 잘 치지. 이건 뭐 유니콘을 보는 건가 싶다. 심지어 꼬이거나 모난 구석도 없다는 거.


다정하고 밝은 기질 덕분에 익준 곁에는 항상 사람이 따른다. 99학번 동기들, 다른 과 신입, 환자, 보호자까지 아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병원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건너 건너 사람의 근황까지 모조리 다 꿰뚫고 있는 자칭 타칭 이 구역 소식통.


익준은 스몰토크의 대가다. 별관 지하 미용실 원장님에게 벌써 아드님이 결혼을 하냐며 자기에게도 청첩장을 달라 하고, 본관 안경점 사장님에게 잘 지내셨냐며 인사를 건넨다. 청소 이모님에게는 디스크 수술한 거 괜찮으시냐 묻고, 조경 일로 바쁜 아저씨에게도 지금 심는 모종이 모종? 하고 살갑게 잔망을 부린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익준이 먼저 다가가기 때문일 거다. 누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것이 그의 인관관계 철학일 수도 있겠다. 특유의 유쾌함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것뿐, 평소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는 늘 빛나고 있다.




멜로가 체질 - 소진 <성숙한 인격의 끝판왕: 반전 매력은 한우가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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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유발 엔터 회사의 대표 ‘소진’. 그녀는 직원 한주의 직장 상사이자 한주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 모델이다. 사회에서 만난다면 진짜 배울 게 많은 사람. 일도 잘하는데 인성도 갖췄다. 흔들림 없는 태도로 정확하고 냉철하게 일을 처리하는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매너까지 좋다. 그녀의 말과 행동은 모든 면에서 고급지다.


업무로 만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직원인 한주의 술잔에 제일 먼저 술을 따라 주는가 하면, 식당 이모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또 한주의 지인인 임 작가와 손 감독에게 자기 회사가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회사라며 한주 실장 덕으로 얻을 수 있는 배려는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젠틀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모두 떠나고 대표와 직원만 남은 자리. 한주가 그녀를 향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지금까지 흔들림 없고 정확한 대표님을 보며 성장했다고, 그런 사수를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3년 후의 내 모습도 대표님 같을까 기대된다고 고백하는데 웬걸, 그 철벽 같던 소진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 “나 안 정확해에...나 안 강해에...”하고 한주 앞에서 통곡을 한다.


작가와 감독에게 한우나 선물할까 싶어 가격을 보는데 고기가 너무 비싸서 슬픈 소진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남모를 서러움으로 눈물 쏟는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다. 그간 쌓여 온 부담감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다.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짠하기도 하지만 소진의 풀어짐은 도리어 호감을 산다. 그녀를 더 존경하고 따르고 싶게 만든다.




동백꽃 필 무렵 - 황용식 <자존감 지킴이: 보약 같은 말로 사람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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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산의 파출소 순경 ‘황용식’.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세상 착하고 바른 사나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 용식의 계산법이라 돌려 말할 줄도 모르고, 숨기는 것도 안 되고, 아닌 척도 못 한다. 동백이의 면전에다 “되게 이쁘신 줄만 알았는데 어유, 되게 멋지시네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엄지척까지 날리는 그.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야 직성이 풀린다.


용식은 한다면 정말 한다. 그런 그가 동백이밖에 모르는 바보가 됐으니 동백의 상처도 시련도 모두 자기 일이다. 그의 눈에 동백은 지구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인데 남들이 그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수군거리는 소리에 늘 기죽어 있는 동백이를 번쩍 일으켜 세워 주고  싶다.


그는 “너가 젤 멋지다”, “너가 젤 대단하다”, “너가 젤 훌륭하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퍼붓는다. 동백이의 혼을 쏙 빠지게 할 정도로 열렬하게 응원한다. 용식의 말은 꼭 폭 고아진 보약  같다. 한 사발 들이켜면 다 쓰러져 가는 사람도 벌떡 일어설 것 같다. 시든 사람도 뜨겁고 뭉클해서 결국 살 것 같다.


자존감 지킴이 용식 덕분에 동백이의 스위치는 눈물에서 다 덤벼로 한 번 더 딸깍. 그녀의 말처럼 용식은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보면 볼수록 진국이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中-


“동백씨의 34년은요, 충분히 훌륭합니다”


“모르는 놈들이 보면은 동백씨 박복하다고 쉽게 떠들고 다닐지 몰라도요

동백씨 억세게 운 좋은 거 아녀유?

고아에 미혼모가 필구를 혼자서 저렇게 잘 키우고 자영업 사장님까지 됐어요.

이 동네에서요 젤로...장해요!” 




스토브리그 - 백승수 <남다른 역량: 그 어떠한 위기도 뚫고 헤쳐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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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즈의 신임 단장 ‘백승수’. 그에겐 남다른 이력이 있다. 씨름단, 핸드볼 팀 같은 비인기 종목의 단장을 줄곧 맡아 우승을 이루고 해체를 겪었다는 것. 그를 찾는 곳은 애석하게도 다 저물어 가는 스포츠 팀이다. 이번엔 프로야구다. 하위권 성적인 것도 모자라 코치진들의 파벌 싸움에 열정 없는 선수들, 신인마저 기피하는 팀이 되어 버린 드림즈 구단을 이끌어야 한다.


몰락하는 팀이 환골탈태를 하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가 그의 신조다. 사람들 눈에는 융통성 없게 보이겠지만 그의 경험상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는 방관과도 같다. 믿기보단 의심하고,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것은 그동안 이 바닥에서 부당한 꼴을 지겹도록 봐 왔어서다. 말을 잘 들었더니 말 같지도 않은 일을 계속 시켰다. 변하는 것도 없어서 백승수는 알량한 권력에 쉽게 놀아나지 않는다. 부러질지언정 더 올곧게 조직을 이끌려 한다.


백승수는 핑계가 없다.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또 진다는 걸 안다. 그럴 시간에 문제를 제대로 짚고 해결하는 것이 그에게 더 중요하다. 무너진 드림즈를 살려낸 것은 그의 남다른 위기 돌파 능력 덕분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백승수 단장 같은 사람이 절실할 뿐이다. 비록 그의 말이 뼈를 때리는 것 같지만 새겨듣고자 하면 맞는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조언들이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中-


“박힌 돌에 이끼가 더 많을 겁니다”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던 그 일을 되짚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떳떳하면...기분 나쁠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고쳐야죠...소 한번 잃었는데 왜 안 고칩니까? 안 고치는 놈은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


“돈이 없어서 졌다. 과외를 못 해서 대학을 못 갔다. 몸이 아파서 졌다.

모두가 같은 환경일 수가 없고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쓰레기 같은 인간이 상식적인 말보다는 힘에 의한 굴복에 반응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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