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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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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이자 건설회사 사장의 아내인 선희(정혜인). 그런 선희가 돌연 이혼을 통보하고 고향인 완도의 무지개마을로 내려온다. 그곳에는 로스쿨을 포기하고 마찬가지로 돌아와 야영 텐트에서 생활하는 동필, 그리고 어릴 적 자신을 키우다시피 해주었던 마을 주민들이 있다. 지난 삶에 후회하고,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는 선희는 동필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비로소 맑게 개인 ‘써니데이’를 만들어간다.

 

 

 

인물 : 과거보단 오늘, 그보단 미래


 

선희. ‘써니’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이름처럼, 영화 써니데이는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마주한 주인공 선희의 이야기를 차근히 풀어나간다. 써니데이가 인물의 서사를 다루는 방식은 담백하다. 선희가 전직 배우였다는 것 그리고, 이혼 예정이라는 것 외에 성인이 된 후의 자세한 과거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선희의 첫사랑인 고향선배 동필(최다니엘)의 사연 또한 부재하다. 그가 왜 멀쩡히 다니던 로스쿨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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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히려 이런 명확한 설명의 부재가 오히려 더욱 현실과의 접점을 더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줄곧 하던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돌연 어딘가로 도피하는 그런 사연 하나 가지게 되기 마련이니. 누군가 깊이 묻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 영화는 함구하고, 오히려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동필이 로스쿨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어렵지만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로스쿨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왔기에 첫사랑 선희를 다시 만났다는 것. 이 ‘결과’가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에 더욱 주목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명확한 태도가 현실의 우리에게도 슬그머니 위로를 건넨다.

 

 

 

주제의식 : 우리들의 '선희데이' (써니데이)


 

‘첫사랑’, ‘고향마을’, ‘이웃의 정’과 같이 다양한 주제의식이 영화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하게 와 닿았던 것은 역시 ‘추억’이다. 선희가 고향 무지개마을을 찾은 건 늘 간직하고 있던 마음속 ‘안전지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행복했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


당장 먹구름이 드리우고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더라도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선희가 무지개마을에서 쌓았을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날들의 기억 때문이다. 과거의 ‘써니데이’를 회상하며, 고향 마을에서 또 다른 화창한 날들을 차곡차곡 기록해 가는 선희를 보다 보면 잊고 있던 맑은 날의 공기가 영화관을 비집고 스며드는 것 같다.

 

우리 누구나 주인공 선희처럼 열 손가락 펴도 한참 모자를 ‘써니데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은 주저앉더라도 앞으로의 맑은 날을 묵묵히 기다릴 힘도 낼 수 있다.

 

 

 

배경과 연출 : 너른 바다, 섬세한 옷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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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가 동필, 마을주민들과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주요 장면에서는 가슴이 트이는 광활한 바다, 자연과 함께 한 폭의 풍경이 된 마을의 모습이 눈에 띈다. 바다는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한가득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 너그러운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바로 집 앞에 두고 살아가는 선희를 보며 한층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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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부문에서는 역시나 인물 묘사 방식만큼이나 담백하지만, 명확히 짚어주는 방식이 통했다. 처음에는 창백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졌던 선희의 겉옷 색이 무지개 마을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점점 웜(warm) 톤으로 차츰 밝아진다. 인물의 정서를 명쾌히 설명하는 동시에, 극 몰입을 돕는 사실감을 부여했다.


현실에서도 옷차림은 우리의 내면과 기분을 잘 드러내는 요소에 해당한다. 우울하고 만사 귀찮은 기분이 들 땐 검은색,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의욕과 열정이 넘치면 아이보리색 겉옷을 과감히 택하는 것처럼. 이처럼 단순하지만 의외로 정확한 내면의 지표이자, 일상에서도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옷차림’이라는 요소를 장치로서 잘 활용하였다.


써니데이는 눈으로 슥 보기만 해도 간단히 풀리는 매듭같이 명쾌하다. 복잡하게 얽힌 플롯,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인물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맑고 순수한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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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써니데이는 그런 영화다.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옷도 바짝 말릴 만큼 산뜻한 건조함을 선물하는. 옷에 남은 온기를 손으로 쓸다 보면 그 기분 좋음에 다시금 힘을 내보게 되는. 영화를 보는 내, 따스한 햇살 아래 일광욕을 마치고 가볍게 자리를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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