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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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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기억이 너무 오래 머문다. 남자에겐, 기억이 너무 빨리 떠난다.

 

그리고 기억의 양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두 인물이 사랑에 빠진다.

 

실비아 (제시카 채스테인 역)은 뉴욕에서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 그녀는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며 가끔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건 그녀를 묶어두는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사울(피터 사스가드 역)은 파티 후 집까지 따라온다. 처음엔 수상했지만, 어딘가 불안한 그가 치매 환자임을 실비아가 곧 알게 된다.

 

처음엔 남자를 오해한다. 실비아의 고등학교 기억 속 성적 학대를 저지른 사람인 줄 알았지만, 사울은 그가 아니었다. 자신이 아님에도 사울은 떠나버린 기억 때문에 부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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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한 것이 미안했는지, 실비아는 사울의 간호 일을 선뜻 맡게 된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원하지 않는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과 원해도 기억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함께 지내는 것은 마치 쓰러지는 막대기들이 공중에서 만나 서로를 지탱하는 격과 같았다. 방향성은 달랐지만, 결핍이 같았다. 그것이 그들을 사랑으로 이끈다.

 

‘기억’이라는 단어는 그들을 만나게 했고, 사랑하게 했다. 하지만 그건 두 사람 간의 문제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비아와 사울은 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기억에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실비아의 동생은 실비아의 신경 쇠약을 걱정하고, 사울의 형은 치매가 사고로 이어질지 걱정한다. 둘의 만남은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둘이 만나서는 안 되는가? 그건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 때문에 영화도 답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 실비아가 ‘어떻게 찾아왔어요?’라고 물을 때, 사울이 기억을 잃는 탓에 습관처럼 하는 말, ‘몰라요.’로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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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은 정말로 모른다.

 

왜 그가 실비아를 따라갔는지, 어떻게 실비아의 집으로 찾아왔는지.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사랑을 위해선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필요했고, 기억이 없어도 그의 마음속 무언가가 그를 계속 실비아에게 이끌었다.

 

영화를 보면 건조한 공기의 뉴욕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특히 호화로운 집에 살지만 치매 때문에 사고가 날까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사울을 보면 그 무력함이 관객에게까지 전염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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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질적 호화로움 속 사울을 위치시킴으로써 그 대비 감을 강조한 점이 인상 깊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하지만 체감하기 어려운, 돈보다 건강이 우선 되어야 하는 행복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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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왜이렇게 불친절할까?

 

실비아와 사울을 인물이 아닌 기억의 양면성으로 치환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힘든 기억은  너무 오래 머물고, 행복한 기억은 빨리 떠나는 것만 같다.  힘든 기억과 행복한 기억의 혼재 속 묘한 균형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영화 <메모리>가 두 인물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삶과 기억에 대한 통찰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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