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난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좋은데, 연극 <테베랜드>이 작품이 그렇다. 지난달 신당동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에서 배우 이주승의 연기를 보기 위해 테베랜드를 관람했다.


존속살인에 대한 철학적 토론과 위트 있는 유머, 정반대의 타인과의 만나며 인정으로 인한 위로와 치유.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이란 묵직한 울림을 담고 있는 <테베랜드>는 이 시대 갓 연극이라고 감히 칭한다.

 

 

[크기변환]461674163_866259235485706_7973272728591479570_n.jpg

 

 

<테베랜드>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존속살인과 이와 관련한 신화, 문학, 예술, 음악, 스포츠와 철학적인 이야기를 다룬 다채로운 연극이다. 아버지를 포크로 21번 찔러 살해해 무기수로 수감된 마르틴(21세). 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준비하는 극작가 S. 마르틴을 연기하는 동갑내기 배우 페데리코. 세 인물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며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극 속에서는 세 인물 이름의 의미가 나온다. 마르틴은 '전쟁, 전사', 페데리코는 '평화를 지키는 사람', S는 '파수꾼 혹은 보호자'. 앞으로 극이 진행되며 왜 이런 의미를 두었는지 무릎을 탁 치며 알게 될 것이다.




철창이라는 신선한 무대연출



[크기변환] 페어컷2.jpg

 

 

보통 공연이란 음악이나 의상의 변화, 또는 극 진행에 따라 배경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테베랜드는 이런 부차적인 연출은 없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철창만이 세워져 있다. 이 철창은 마르틴이 수감돼있는 교도소의 농구장, S가 정부 지시에 따라 무대 위에 설치한 철창, 페데리코가 S와 연극을 연습하는 연습실까지. 이 철창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


여기에 CCTV를 활용하여 더욱 특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관객이 마치 철창 밖에서 안을 관찰하는 것 같은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테베랜드는 치밀한 디테일도 매력포인트다. 마르틴이 농구에 각 장이 농구용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농구코트 단어를 활용해 막이 나뉘어져있다. 1 2쿼터가 전반전으로, 3 4쿼터가 후반전으로 주어지고 그 사이 쉬는 시간은 인터미션이다. 이후 연장전까지 이어진다. 농구 경기 방식을 연극에 그대로 들고온 것은 치밀하고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주승 배우, 그리고 1인 2역


 

[크기변환] 마르틴.jpg

 

 

<테베랜드>는 오직 두 배우의 연기만으로 약 150분 동안 극장을 가득 채운다. 이 연극에서는 공연 시작 전 일찍 앉아있는 것이 좋은데, 마르틴 역을 한 이주승 배우가 연극 시작 2~3분 전부터 철창 안으로 들어와 농구하며 연기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 전부터 농구를 좋아하는 마르틴을 보여주고 철창을 관찰하는 관찰자임을 암시하며 몰입도가 높아졌다. 홀로 농구를 하고 있는 철창에 S가 들어오는 것은 관계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기게 할 정도로 이주승의 연기는 사람을 몰입시킨다. 마르틴 그 자체가 되어 섬세하게 표현했다. 마르틴의 서툰 표현 방식과 S와 대화하며 점차 변화하는 모습이 보였고 살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득하고도 남아, 동정심이 들 정도로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특히나 마르틴이 분노하는 장면은 관객을 압도한다. S와 철창을 사이에 두고 CCTV는 마르틴을 비춘다. 이주승 마르틴은 객석을 등지고 앉아있으며, 그의 표정은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대화하던 도중, 마르틴은 모든 게 뒤섞여 S에게 자신을 이용해 책을 쓰려는 게 아니냐며 소리 지르며 처음으로 화를 낸다. 이주승 배우가 온몸으로 표현하고 대사를 쏟아낼 때, 압도되어 숨쉬기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이주승 배우는 마르틴과 페데리코를 연기하며, 표정과 발성으로 1초 만에 역할을 바꾼다. 의도된 혼란과 두 인물의 동질화를 통해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배우들의 혼연일체가 되는 연기력이 있었기에 작품이 무대 위 생생히 살아나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S는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마르틴이 적어준 농구 용어를 읊는다. S의 역할을 맡은 이석준 배우는 1코트부터 4코트, 연장전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쉬지않고 뱉어낸다. 그 경이로운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어마어마한 대사량에 연기까지, 열연을 펼쳐주신 이주승 배우와 이석준 배우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크기변환]캐스팅보드.jpg

 

 

이주승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테베랜드는 양자역학같은 연극'이라 말했다. 다른 인물이지만 마치 같은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신선한 혼돈이었다.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다른 인생을 살았고 다른 성격을 가졌고 다른 장소에 있지만, 같은 나이키 신발을 신었고 같은 브랜드의 선글라스를 꼈으며 첫 만남에 S에게 카시오 시계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이 1인 2역은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지금이 마르틴인지, 연기를 하는 페데리코인지 추리하게 만드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그리고 거의 동일인물처럼 연출하며 마치 둘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보이게 한다.




스톡홀름 증후군


 

[크기변환]공연사진 이주승.jpg

 

 

모든 관객들의 공감 포인트 일텐데, 극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살인자인 마르틴에게 공감하기 시작한다. 극을 시작할 땐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죄자였지만, 극의 후반부에는 가엾은 소년이 남아있었다.


마치 범죄자에게 애착을 갖게 되고 동조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모두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르틴은 악몽 같았던 삶을 살았다. 사랑이라곤 한치도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는 물건을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마르틴을 매일매일 신체적, 정서적으로 끔찍하게 학대했다. 또한 어릴 적부터 간질이 있었음에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지금까지도 심한 발작을 일으킨다. 게다가 유일한 마르틴의 편이었던 어머니에게까지 아버지는 폭력을 행사했다.


극작가 S와 페데리코 역시 마르틴의 이야기에 빠져들며 그에게 공감한다. 작가 세르히오 블랑코는 테베랜드가 가진 주요 가치가 '낯선 인간들간의 형제애적 만남'이라 말한다. 세 인물은 철장 안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었지만 결국 진정한 친구가 된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경청이었다. S는 마르틴에게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을 준다. 그는 그렇기에 내면의 이야기까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떤 평가도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마르틴에게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테베랜드>에서는 죄목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일생을 입체적 관점으로 사람을 인식한다. 그 여정에서 도덕과 법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관객의 마음속에 있었을 선을 넘나들며 <테베랜드>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마르틴은 존속 살인자인가?


 

 

오이디푸스 신화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이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낸 그 왕이 맞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걸 모른 채 어머니와 결혼한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존속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S에게 오디션을 볼 때, 페데리코가 의문을 품은 지점이다.


그렇다면 마르틴의 입장은 어떠할까. 자신을 학대하고 경멸했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마르틴의 인생을 짓밟은 그는 아버지가 아닌 짐승이자 괴물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S는 이런 짐승 같은 자를 진정한 아버지라 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S는 이 살해가 정말 정당방위가 아닌지, 존속 살해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크기변환] 공연사진 이석준.jpg

 

 

마르틴의 깊은 상처를 진정으로 공감하게 된 S는 마르틴과 페데리코에게 존속 살해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아버지인 줄 모르고 죽였던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 "내가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죠?" 괴물 같은 카라마조프 아버지를 아버지는 커녕 적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도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실제 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는 폭군이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우리는 모두 조금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를 들려주며 S 자신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말해주는 이야기.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어릴 적 그를 못살게 굴었다는 이야기.


S는 마르틴에게 정당방위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괴물 같은 아버지가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르틴의 깊은 상처에 공감한다. 그리고 이는 마르틴의 마음에 닿는다. 의심 많고 반항적이었던 마르틴은 점차 S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그가 찾아오는 날만을 기다린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지 어머니가 마르틴에게 남긴 하나뿐인 소중한 묵주를 S에게 건넨다.

 

 

[크기변환] 페어컷.jpg

 

 

연극을 위한 인터뷰는 모두 끝났고 S와 마르틴은 작별한다. 마르틴이 교도소 안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S는 태블릿을 선물한다. 테블릿에는 오이디푸스 신화 등이 담긴 전자책과 모차르트의 음악, 함께 보았던 그림들,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연극 영상 등등 마르틴이 필요할 모든 것을 담아두었다. 학교에서 단어를 배우지 못했기에 단어를 익힐 수 있는 백과사전, 그리고 학대로 종이책을 읽지 못하는 마르틴을 위한 S의 세심한 배려였다.

 

S와 마르틴은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는데, S가 마치 마르틴에게 필요하던 ‘사랑을 주는 아버지’, 또는 '진정한 친구'를 연상케 했다. 마르틴은 S에게, 또 S는 마르틴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고 서로가 서로를 치유했다.

 

S: 이제 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갑시다.

마르틴: 난 갈 길이 없어요.

S: 아니요, 그건 있어요. 모두 그건 가지고 있어요.

마르틴: 그런가요?

S는 마르틴에게 미래를 선물했다. 자신의 집도 길이 없던 마르틴에겐 앞으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극의 마지막, S는 떠나가고 농구장에 홀로 남은 마르틴은 테블릿을 보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이 왔음을 알리는 구절을 읽는다. "세상에 알려진 나 오이디푸스가 이렇게 직접 왔노라." 깊은 상처가 치유되어 살아감을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무대 위 조명은 모두 꺼지고 태블릿 불빛에 비친 이주승 마르틴의 얼굴엔 미소가 서려 있었다.




테베랜드에는 관객들 각자의 울타리를 열게 하는 힘이 있다


 

[크기변환]페어컷11.jpg

 

 

우리에겐 각자의 '테베랜드'가 있다. 우리는 결국 모두 오이디푸스처럼 모호한 테베를 가지고 있다. 조금 혼란스럽고 어두운 곳.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우리 모두 조금씩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깊은 상처가 잠들어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겠다. 테베랜드는 마음속에 있는 "테베"에 대해서 생각하게 자꾸 질문을 던진다. 마르틴이 아버지를 괴물로 여길 수밖에 없으며, 살인을 저지른 마음에 이해가 갔다. 도덕적으로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 기준을 바꿔놓은 게 이 작품이다. 인간의 가장 깊숙이에 있는 심연을 수면까지 끌어올려 툭툭 던지고 설득해 가는 테베랜드는 참 이상하면서도 중독적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해 낸 테베랜드의 물음표에 대한 답이다. 다른 관객의 테베랜드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어령 작가에 따르면 비극은 '영혼의 움직임을 느끼는 행위'라 한다. 타인을 알아가는 여정에서 그의 깊은 상처를 알게 되고, 그것이 나의 깊은 상처가 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 움직임은 포용이자 세계의 확장이다. 이렇게 상처가 누군가에게 포용 되면 치유와 회복이 피어난다. 이것이 비극이 주는 힘이다. 험난한 이 시대에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유쾌하고 뭉클한 연극 <테베랜드>에서 타인이 주는 치유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문화예술 애호가입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