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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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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품을 일정한 시간을 두고 다시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연말에 산울림 소극장의 '쇼팽, 블루노트'를 두 번째로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쓴 글을 읽어보니 당시의 나는 조르주 상드와 쇼팽의 이야기에 라이브 피아노 연주라는 공백 아닌 공백을 넣은 기획에 신선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작곡가의 삶과 중요한 관계를 다루면서 클래식 라이브를 끼워 넣는 구성은 대중과 매니아층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만으로 '쇼팽, 블루노트'의 훌륭함을 논할 수 없다. 편지 콘서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을 이전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에 쇼팽 음악의 서정적인 특성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말이라는 연극이 오르는 시기도 중요했다. 사랑이 끝나는 시기에 빠르게 시들어버린 쇼팽의 삶이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본 리뷰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연극의 구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이러한 구조가 왜 쇼팽의 음악과 잘 맞아 떨어졌는지 써 보려고 한다. 우선 연극의 기본적인 구조가 깔끔하게 가지치기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쇼팽과 상드라는 두 인물의 뚜렷한 대조가 인상 깊었다. 시간순으로 그들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장면들을 나열하면서, 두 사람이 가진 특징을 때로는 조화롭게, 때로는 파괴적으로 대조시킨다.


연극 부분을 이루는 기본적인 골자는 사랑의 시작과 이별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예술가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살려내서 이들의 사랑을 풍요롭게 묘사한다. '예술가의 특징'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연극에서는 좀 더 감각적인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쇼팽과 상드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쇼팽은 자신의 사랑을 음악으로만 표현한다. 쇼팽은 자신의 첫사랑 콘스탄스를 위해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을 고하기 위해 음악을 작곡했지만, 정작 콘스탄스는 그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쇼팽의 언어는 상드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드는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언어를 사용해 소통한다. 상드는 쇼팽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인간들을 내려온 천사'라고 표현하며,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편지를 쓴다. 사랑이 깊어졌을 때는, '블루노트'라는 표현을 통해 그의 음악에 색을 입힌다. 상드의 언어가 쇼팽의 언어를 향할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를 확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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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음악적 언어로 자신의 감성을 전달하는 쇼팽과 비교하면 상드의 언어는 명확한 대상을 향해 전달된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쇼팽의 언어가 상드의 언어로, 상드의 언어가 쇼팽의 언어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면서 상드는 쇼팽에 대한 분노를 자기 작품의 인물로 등장시켜 모욕을 주었다. 더 이상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특징이 사랑의 시작과 끝을 지지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마법처럼 이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연출과 구성에서도 두 사람의 특징을 보조한다. 예를 들어 상드를 맡은 배우가 '쇼팽, 블루노트'의 해설자 역할을 겸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클래식 피아노 라이브는 쇼팽의 또 다른 '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쇼팽의 연주가 실제로 그 시기에 묘사된 감정을 중심으로 작곡되었는지 모르지만, 연극의 맥락에서 그것은 쇼팽의 대사가 된다.


훌륭하게 재현된 쇼팽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쇼팽의 음악이 가진 서정성이 이 맥락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쇼팽의 음악 연주 중 특징 중 하나가 '루바토', 즉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서 템포를 조절하는 기법이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날 감상한 쇼팽의 음악도 루바토를 사용하지 않고 악보를 그대로 친다기보다, 피아니스트의 감성을 섞어 감각적으로 치는 것으로 들렸다. 짧게 스포트라이트 되는 연주곡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피아노 연주가 작품의 메시지와 잘 어우러진다. 시나리오와 연출, 말과 음악이 적절하게 섞였으니, 클래식과 연극이라는 '산울림 편지 콘서트'의 초기 기획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마침, 이 글을 쓰기 두달 전, 쇼팽이 썼던 왈츠가 발견되어 피아니스트 랑랑에 의해 연주되었다. 우울하고 아름다운 감성은 당시 쇼팽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상드의 말이 너무나 로맨틱한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토록 연약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이나 연약한 몸으로 써 내려갔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로 그를 음악의 천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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