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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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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혹은 구제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진입 장벽이 있다. 남이 어떻게 입었을 줄 모르는 옷을 찝찝해서 어떻게 입느냐부터 시작해서 빈티지는 퀄리티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티지의 어원은 포도주 브랜드 ‘vintage’로, 오래된 와인의 숙성 기간이 주는 프리미엄이 비용을 높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빈티지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이전에는 최고의 상태, 고풍스러운 전성기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곧 패션잡지 보그에서 ‘보그체’로 사용되며 패션에 대한 지식을 있어 보이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대중들에 의해 고풍스러운 전성기라는 본래 의미와 조금 다르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말 그대로 ‘세컨드 핸드’로 과거에 사용되어 온 상품부터, 실제로 타인의 손을 타지는 않았지만 앤틱하거나 클래식한 특정 스타일을 모두 가리키는 용어로 그 범주가 넓어졌다.

 

나는 빈티지의 ‘ㅂ’자도 모르는, 오히려 부모님의 영향으로 빈티지에 좋지 못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20년을 살아오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 홍대 거리를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들이 좀 이상하다’였다. 그러나 음악방송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독특한 옷과 휘황찬란한 머리색들이 홍대 거리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어디서 산 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스타일의 옷들이 내 옷깃을 스치길 몇 달쯤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팔로우 된 계정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계정은 바로 빈티지 샵의 온라인 스토어였다. 그제서야 나는 그들의 옷이 이런 곳에서 나온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그들이 익숙해져 갔고, 결국 빈티지 스타일이 내 취향이란 걸 깨달으며 지금까지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방문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집에 놀러 와서 내 옷장을 열어본 친구의 당황스러우면서도 존경하는 듯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이제 나는 홍대 거리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언제 가도 항상 나보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에 학교 가는 길이 즐겁다.

 

나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에는 빈티지를 취급하는 가게들이 오프라인 매장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게까지 친히 방문했는데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허탕 치는 것이 싫어 인터넷 쇼핑을 즐겨 하던 나 같은 손님들에게 안성맞춤인 격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마켓 방식의 스토어는 걸어서 서너 군데 정도의 가게를 돌면 체력이 수직 낙하하며 당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접근성으로 다양한 옷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자주, 많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스크롤만 넘기며 쇼핑하다 보면 지갑 사정에 큰 타격이 오기도 하지만. 특히 대부분의 빈티지 샵들은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 기능을 사용하는데, 라이브 방송의 장점은 온라인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소통 단절을 메꿔 준다는 것이다. 상태나 재질, 수치를 사진으로 보고 가늠하기는 어려운데, 껄끄럽게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가려운 속을 긁어주듯 한 벌, 한 벌 직접 설명해주는 라이브 방송은 내향인들에게 그야말로 천국이다! 하지만 그 옷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댓글 창에 구매 의사를 남겨야 한다. ‘이건 내가 사야만 해!’라는 충동으로 질러버린 옷이 대체 몇 벌인지 셀 수도 없다. 이처럼 생각보다 빈티지의 세계는 가볍고도 심오하다.

 

 

 

Step 1. 선택 방법


 

너무나 당연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이 입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제대로 파악하고, 대략의 스타일링을 머릿속으로 먼저 시뮬레이션해 본 후 아이 쇼핑을 시작한다면 원하는 옷을 발견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뜻이다. 뜻밖의 행운으로 만난 옷이 마음에 들 때도 많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옷들과 어울리지 않거나 집에서 거울을 보니 핏이 이상하다는 등의 이유로 손이 잘 안 갈 때가 많지 않은가.

 

앞에서 말한 것을 토대로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마음에 드는 치마를 사도 어울리는 신발이 없어서 못 입는다든지, 이런 원피스는 나밖에 소화를 못 할 거라며 휩쓸려 구매한 원피스가 옷장에 몇 년째 처박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어디서나 어울릴 만한 무난한 아이템을 살 필요는 전혀 없지만, 독특하더라도 나의 어떤 옷에도 잘 녹아들 수 있을 법한 아이템을 고민해보자. 한번 잘 장만한 레어템, 열 장롱템 안 부럽다.

 

결정적으로 빈티지 의류에서 가장 꼼꼼히 확인해 할 것은 옷의 상태다. 천에 이염이나 얼룩은 없는지, 나 모르게 뚫린 구멍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빈티지 의류는 교환/환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조금 가격대가 있더라도 상태가 좋고 소장 가치가 있는 브랜드 빈티지를 추천한다. 여타의 빈티지 제품보다는 확연히 값이 비싸지만, 새 제품이었다면 절대 그 가격에 구할 수 없는 옷을 “득템”했다는 뿌듯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Step 2. 스타일링


 

빈티지룩을 입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빈티지 의류만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빈티지와 빈티지가 아닌 아이템을 경계 지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믹스매치(mix match)가 잘 된 룩이 더욱 균형감 있게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빈티지한 프린팅의 크롭티에 핏하고 깔끔한 청바지, 베이직한 흰 셔츠에 빈티지한 넥타이를 매는 등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면 과하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는 조합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날 코디의 컨셉에 맞는 크고 작은 소품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키포인트다. 정해진 공식은 없으며 내가 손에 잡히는 걸 필요한 곳에 더하는 게 다이지만, 그런 작은 디테일에서 완성도가 크게 차이 난다. 화려한 패턴의 실크 스카프, 헤드폰, 카메라, 심지어 한여름 필수품인 양산까지 뭐 하나 패션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자신의 숨겨진 감각을 믿어보자.

 

거기에 통일감을 한 스푼 더하고 싶다면 톤온톤(tone-on-tone)/톤인톤(tone-in-tone) 코디로 룩을 완성할 수 있겠다. 먼저 톤온톤이란, 동일한 색상에 밝기와 채도에만 차이를 두며 전체적으로 같은 색상의 변주를 쌓아주는 조합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깔맞춤’, ‘그라데이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만약 내가 보라색을 좋아한다면 상의에 라벤더색, 하의에 딥 퍼플을 사용하는 것이 그 예시에 해당한다. 물론 배색 관계가 모호하거나 대비감이 지나칠 때에는 그사이에 흰색 혹은 검정색 등의 분리색을 넣어 단절감을 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반면 톤인톤은 다른 색상이지만 같은 톤의 색상을 사용하는 색 조합 방법이다. 어느 한 색이 돋보이기보다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한 컬러의 개별적인 톤을 집어내서 다른 색과 관계시키는 일의 체감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라서 톤온톤 배색보다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Step 3. 보관


 

빈티지 의류는 세심한 관리를 필요로 한다. 당연히 새 옷보다 사용감이나 데미지가 있는 옷이 쉽게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기본적이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에 한 번에 돌린 빈티지 의류는 한 번 세탁할 때마다 수명이 몇 년씩 깎인다. 나도 정말 알고 싶지 않았지만, 단지 나눠서 여러 번 세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이불과 함께 세탁한 원피스는 주인의 무지몽매한 실수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우리는 옷에 달린 택을 제대로 살핀 후 정해진 세탁 방법 준수를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리곤 반드시 직사광선이 덜 드는 건조한 곳에 얌전히 말려줘야 한다. 선크림을 발라줄 수도 없는 옷이 햇빛을 맞는다면 색이 바래는 건 한순간이다. 물론 빈티지 특유의 빛바랜 색을 사랑하지만, 잘못 말린 빨래는 생각보다 균일하고 예쁘게 색을 빼앗기지 않는다. 또한 비가 와서 습한 장마철이라면 제습 모드로 에어컨을 켜고 은은한 캔들을 켜주는 것도 옷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생활 속 습관이다.

 

마지막으로 빨래를 거두어들여 옷장 속에 넣을 때 드레스 퍼퓸을 몇 번 분사해 주는 것이 좋다. 본래 옷의 상태나 판매 매장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지하에서 판매하는 빈티지 의류는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해묵은 먼지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탁이 끝나고 뽀송해진 옷에 자신의 페이보릿 향기를 남겨준다면, 옷을 입을 때마다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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