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깊은 울림이 디제이의 비트 위에서 생동감 넘치게 변주됐다. 그날 무대 위에서 시간과 장르의 경계는 흐려지고, 관객과 공연자는 즉흥적 탐구의 동반자로 연결되었다. 'Present+ing'은 관객의 참여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탄생하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문 독창적 시도를 선보였다.
전통의 경계를 허물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다섯 개의 창작 공연이 김희수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수림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한 시리즈 <넛지>는 전통과 현대 예술의 융합을 탐구하며, 올해는 9팀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주목받았다. 나는 11월 30일에 열린 'Present+ing' 공연을 관람했다.
'Present+ing'은 판소리와 전자음악의 만남을 통해 즉흥성과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했다. 소리꾼의 전통 창법과 디제이의 현대적 리듬이 어우러져,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실시간 변주되는 독창적 경험을 선사했다. 공연은 관객 참여를 통해 감상을 넘어 공동 창작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이 리뷰에서는 'Present+ing'의 예술적 성취와 실험적 시도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강점과 아쉬운 점을 살펴본다. 특히 판소리와 전자음악의 융합이 제시하는 창작적 가능성과 관객과의 소통 방식을 중심으로 공연의 의의를 조명한다.
# 판소리와 전자음악의 공통점
판소리와 전자음악은 시대와 형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강한 공통점을 지닌다. 두 장르는 공연자와 관객 간 상호작용을 핵심으로 삼고, 즉흥성과 변주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Present+ing'은 이러한 두 장르의 공통점이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구현된 특별한 사례였다.
'Present+ing'의 가장 독창적인 점은 관객 참여가 공연의 핵심적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제안한 단어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 공연의 내용과 흐름을 실시간으로 바꾸며, 관객과 공연자가 공동 창작자로 연결되게 했다. 이 과정은 공연을 전통적 관람 형식을 넘어선 하나의 창작 장으로 변모시켰다.
공연은 관객 참여로 시작됐다. 관객들이 적은 단어를 소리꾼이 즉흥적으로 엮어 이야기로 완성하는 과정은 판소리의 상호작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관객들이 '별', '바람', '밤' 등의 단어를 제출했다고 가정하면, "밤하늘의 별 아래 소망을 품은 외로운 강물이 길을 떠난다"는 새로운 서사로 탄생하는 식이다. 이는 판소리의 전통적 청중 소통을 현대적 관객 참여로 확장한 사례이기에 더욱 뜻깊다.
전자음악과 소리꾼의 실시간 상호작용은 두 장르의 공통점을 극명히 드러냈다. 디제이는 물방울 소리를 이용한 반복적 비트와 선율로 음악적 골조를 제공하고, 소리꾼은 즉흥적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더해 공연을 완성했다. 이는 판소리의 즉흥 창작과 디제잉의 실시간 믹싱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디제이가 관객 반응을 기반으로 음악을 조율하듯, 소리꾼은 그날의 단어와 감정 흐름을 반영해 공연을 재구성하며 관객과 교감했다.
이러한 상호작용과 즉흥성은 두 장르의 공통된 예술적 DNA로, 매 공연을 유일무이한 경험으로 만든다. 'Present+ing'은 이를 구체화하며, 판소리와 전자음악이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적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한 장르 융합을 넘어,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공동체적 예술로 나아가는 두 장르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Present+ing'은 관객 참여와 장르 융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공연의 의도와 가능성은 인상적이었으나, 구현 방식에서 더 깊이 있는 예술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해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우선, 관객 참여 방식이 다소 단순하고 예측 가능했다. 관객이 적은 단어로 소리꾼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창의적이었으나, 그 표현이 안전한 방식에 머물렀다. 보편적 단어를 활용한 서사 구성은 참여의 재미는 제공했지만, 깊이 있는 정서적 반향을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는 공연의 몰입감을 강화하기보다 이벤트성 요소로 다가왔다.
디제잉과 판소리의 결합 방식에서도 약간의 전형성이 드러났다. 디제잉의 반복적 비트 위에 판소리 멜로디를 얹는 방식은 이미 다양한 퓨전 공연에서 활용된 것으로,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 두 장르의 융합이 흥미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냈지만, 각 장르의 본질적 특성을 심화시키거나 혁신적으로 재해석하지는 못했다.
즉흥성의 활용에서도 발전의 여지가 있었다. 소리꾼이 관객의 단어로 서사를 만드는 과정은 공연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보여줬지만, 이를 넘어서는 예술적 깊이로 확장되지 못했다. 즉흥성이 단순한 재미와 즉석 변주에 머물러, 공연의 흐름이나 메시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가능성을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쉬움은 공연의 실패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Present+ing'은 장르 융합과 관객 참여라는 중요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 정말 의미있는 '재해석'을 위해서
'Present+ing'은 판소리와 전자음악의 융합과 관객 참여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공연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있는 예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한 형식적 결합이나 이벤트성 참여를 넘어 각 장르의 본질적 특성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는 관객에게 더 풍부하고 감동적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존의 안전한 방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실험과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 검증된 형식에 머무르는 것은 예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으며, 현대 예술이 직면한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는 실패의 가능성을 동반하지만, 이러한 도전을 통해 예술은 지속적으로 진화하며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관객과의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관객을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공연의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예술적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관객의 경험과 감정을 공연에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진정성 있는 소통은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한층 높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