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왜 그 작품 안에서 영원히 착해빠진 캐릭터로만 남는가 [영화]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평면적으로만 그려지는 콘텐츠 시장
글 입력 2024.11.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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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주관하는 아동권리영화제에 참석했다. 그 이름답게 모든 작품에서는 아동이 중요한 인물로 다뤄지고 있었다. 내가 참석한 날에 상영되는 작품들은 전부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였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편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영화 관람을 마쳤다. 상영이 끝난 후 감독님들과의 GV가 진행되었다. 약간의 칭찬이 섞인 질문들이 오가던 도중, 객석 뒷편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나지막이 손을 들었다.


“결국은 아동인 주인공이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결말인 게 아쉬웠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본인의 영화 감상평을 말하는 한 관객과 고개를 끄덕이는 주변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매체 상관없이 최근에 관람한 아동·청소년 주인공의 작품들은 전부 다 ‘착한 결말’로 끝났다. 모두 지극히 교훈적이거나 아동은 선하고 순수하기만 할 뿐이라는 편협하고 진부한 엔딩이었다. 이는 아동·청소년 인물이 갖고 있는 본연의 욕망을 무시한 채 그저 성인이 아동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욕망을 없앤 거라 볼 수 있다. 캐릭터가 욕망을 표출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디어 속 사회적 약자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언더도그마란?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언더도그마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특히 영화나 드라마 같은 스토리 콘텐츠에서 언더도그마 개념이 종종 쓰이곤 한다. 앞서 말한 아동·청소년 캐릭터는 물론,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 임산부 등은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언더도그마 사례의 대표적인 피해자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클리셰이긴 하나) 외국인 노동자가 악덕 사장에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을 떠올리면 아마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약자 캐릭터는 작품 내에서 단순히 선한 인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인물들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거나 능동적으로 사건과 부딪힌다기보다는 항상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다.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조연일 경우 수동적인 인물로 전락할 확률이 더 높다. 언더도그마적 시선에 기인하여 만들어진 작품 속 사회적 약자 캐릭터는 억울하게 피해를 보거나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운이 나쁠 경우 자신의 욕망을 깨닫기도 전에 먼저 악인으로부터 죽음을 맞게 된다. (사실 이런 캐릭터의 경우 욕망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이 정의 실현을 위해 악인을 물리치는 상업영화도 우리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주인공이 그 사회적 약자 조연을 사랑했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과거 회상으로나마 조연 캐릭터가 등장할 확률이 조금은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 캐릭터는 작품 극초반에 관객의 몰입을 돋구게 하기 위한 도구적 역할에만 그칠 뿐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체불된 채 일터에서 해고된 서도철과 재벌 캐릭터 조태오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서도철은 그의 아들과 함께 본사에 찾아가 시위하던 도중 조태오에게 호출되었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조태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다. 절대적 악인의 사악한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소비적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맡은 역할과 쓰임이 다르다. 여기서 내가 비판하는 부분은 사회적 약자 캐릭터를 단순히 선하게만 그려 입체성을 상실하고, 평면적으로만 표현한 작품에 있다. 그저 주인공의 활약상이 돋보이게끔 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걸 원하는 캐릭터가 과연 누가 있으랴.


사회적 약자를 무조건적인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적 구조, 섣부른 판단은 오히려 그들을 향한 차별을 더욱 견고히 다질 뿐이다. 이러한 차별적 시선은 사회적 약자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욕구 표출을 저해한다. 사회적 약자 중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점이 그들의 선함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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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이런 언더도그마를 깨부수는 작품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있다. <기생충>은 반지하 방에서 살고 있는 기택네 가족이 점차 부자인 동익의 집에 자리 잡게 되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2019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는 듯한 기택네 가족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동익네 집에 들어가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점에서 언더도그마적 문법을 탈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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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시로 영화 <조커>가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아서는 사회로부터 도태된 약자로 그려지고 있으며,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이 같은 주인공의 욕구는 결국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살해한다는 잔혹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선’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악’의 면모를 갖춘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더욱 입체적인 인물이 된다. 더 이상 사회적 약자 캐릭터가 납작하게만 보이지 않고 입체성을 가진 인물로 나타났으면 한다.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주인공으로 보다 많은 매체에서 활약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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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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