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두 에디터가 접하는 순간 - 컬쳐리스트 김채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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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를 만나러 가는 길
찜통 같은 더위에서 갓 탈출한 한 가을날.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만큼 날씨도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평소 오가면서 보았던,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컬쳐리스트 김채영님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것이다. -예외가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채영님과 만나기 전,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의 글을 향유하는 문우끼리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어색한 첫 인사도 잠시였을 뿐. 우리는 그동안 써오고 나눈 글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며 값진 대화를 나눴다. 피드백 모임과는 분명 다른 형태였다.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닌, 각자가 가기로 한 길을 그저 응원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채영님과의 만남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단순히 새로운 인연을 쌓는 것 이상으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는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정의한 뒤에 행한 첫 번째 활동이고 그런 만큼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도 모른 채 그저 달려갈 뿐인 꼬마 에디터에게 선배 에디터, 채영님은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어른으로 느껴졌다.
고수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평소, 채영님의 글을 눈여겨 읽어왔다. 내용과 구성도 수려했지만 눈에 띄었던 것은 주제 선정이었다. 다른 오피니언처럼 창작물에서 주제를 따올 때도 있었으나, 자전거나 딱복vs물복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글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차 싶었다. 당연한 건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인 만큼 많은 사람이 글을 읽으러 올 것이고 쉽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지만 결과물을 본 뒤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스스로 개척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채영님의 글을 쭉 찾아보았다. 신박한 주제를 다루기도 하였지만, 논조가 내 생각과 비슷한 글도 꽤 많았다. 느슨한 연결을 주장하는 글은 외로움을 다룬 나의 글과 유사하게 읽혔고 물복vs딱복을 다룬 글에서는 내가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 여겼던 것들을 그대로 짚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채영님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걷고자 했던 길을 선배 에디터로서 훌륭히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사실은, 당사자한테는 실례일 수 있지만…. 무언가 무림고수 같은 사람이 나올 줄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수의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공은 분명히 고수의 것이었으니까.
나누고 느끼고 배운 것
맥도날드에는 ‘필레 오 피쉬’라는 햄버거가 있다. 현재는 단종된 듯 하지만 내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있었던 메뉴다. 필레 오 피쉬.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 만큼 만드는 방법도 독특하다. 번(햄버거 빵)을 토스팅하는 다른 메뉴와 달리 번을 찜기에 넣고 쪄야 한다. 양상추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마요소스와 생선치킨 패티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인, 어찌 보면 간단한 메뉴다.
문제는 이 햄버거의 인기가 매우 저조했다는 것이다. 보통 하루에 세 개. 정말 주문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한 개도 팔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보통 이정도로 판매량이 낮으면 바로 메뉴를 갈아치우는 게 도리겠지만 필레 오 피쉬는 꽤 오랜 기간, 적어도 이 년은 살아남았던 것 같다.
이 명줄 긴 햄버거, 필레 오 피쉬는 사장이 교체됨과 함께 드디어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알바생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없어질 만 한 게 이제야 없어졌구나. 이 정도. 그렇게 필레 오 피쉬는 기억 속에 파묻혀가는 햄버거가 되었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오랜 시간이 지나, 채영님의 글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필레 오 피쉬의 실종을 그저 평범한, 햄버거 메뉴의 단종으로만 여겼지만 채영님의 글은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비추고 있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웬만한 햄버거 패티는 고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패티로 만들어진 유일한 버거인, 필레 오 피쉬가 없다면 할랄 푸드를 찾는 무슬림에게 맥도날드는 식당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채영님은 교환학생 시절 만난, 싱가포르 무슬림 판의 사례를 들어 다원주의적 식문화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그 글을 읽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내게 닭고기가 들어간 메뉴를 묻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주변에 산재된 사회문제들. 그동안 나는 남들보다 그런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지만 채영님의 글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래서 채영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웠다. 영감은 특별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얻는 것이라는 사실. 오히려 진입이 가벼워야 많은 사람들이 읽기 좋다는 것도. 일주일에 오피니언 한 개. 그러니까 한 달에 네 개의 주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소재를 고민하며 머리를 싸맸던 스트레스가 채영님과의 대화에서 가볍게 해결된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채영님과 나는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었다. 얽히는 인연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이 본 플랫폼,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 것도, 게다가 지향점이 비슷한 것도 신기했다. 이어짐이라는 건 이렇게 신명나는 일이구나. 요청하길 잘했다. 나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채영님과 대화했고 지금 이렇게 후일담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채영님의 글이 궁금해졌다면. 검색창에 김채영을 입력해보길 바란다. 재치 있고 깊이 있는 양질의 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한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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