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B급의 향연, B주류 리포트 [문화 전반]

B의 매력의 찾아서
글 입력 2024.09.0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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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들은 뭐 좋아해?’ 어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회사에서도, 친척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걸 기획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들 궁금해한다. 하지만 나는 트렌디하다기보단 예쁜 구닥다리를 모아 놓고 혼자 만족하는 타입이다 보니 대답이 시원치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항상 말하는 건 ‘재미있으면 됩니다’라는 싱거운 한마디다. 재미란 무엇이냐 파고들면 밑도 끝도 없겠지만, 역시 타율이 좋은 건 상대가 예상치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B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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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공주 모모코 (2005)

 

 

나는 시네필이 아니기에 그럴듯한 영화 이론도 모르고,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감식안도 없다. 그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나만의 기준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결론을 내리는 게 몇 없는 취미 중 하나다. 그리고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자리가 생기면 꼭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라는 질문이 오고 간다. 그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영화가 <불량공주 모모코>라는 B급 영화다.

 

값싸지만 명품 같아 보이는(한 마디로 짝퉁) 것을 최고로 여기는 시골에서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옷을 고집하는 모모코, 항상 한 쪽 눈에 안대를 착용하며 괴짜 같은 모습을 보이는 할머니, 아무 데서나 방귀를 뀌며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해내는 아빠. 오합지졸이지만 개성 있는 캐릭터성과 만화 같은 연출로 물 흐르듯 이야기는 진행된다.

 

늦여름같이 후덥지근한 색감, 롤리타 소녀와 양키의 우정, 스스로 갇힌 틀에서 벗어나는 해방 서사 등 사랑받을 만한 요소들도 많은 영화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맥락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다. 일부 사람들에겐 그 점이 진입장벽이 되어 선뜻 손이 안 간다는 말을 하지만 요즘은 B급 중 A급, 뱀의 머리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근 몇 년 전부터는 B급에 대한 인식과 평가도 많이 변화했다. 질 낮고 가벼운 저예산 콘텐츠에서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그것이 판매 물품에까지 그대로 호감을 주는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젊은 소비층들의 경험 추구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을 실물로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보단, 대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재미와 경험을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웹상에서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고, 경험한 일을 SNS에 인증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그때 대중들은 수동적인 수용자에서 주체적인 체험자가 된다.

 

다시 말해 대중들은 재밌는 경험을 직접 찾아 나서는 능동적 체험자이자 민간 마케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누군가 시킨 일이라면 오히려 거부감이 있지만, 순수한 재미를 찾아 나서는 건 인간의 본능이기에 대가 없이도 소비와 생산의 순환이 가능해진다. 한때는 내가 얼마나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냐로 급을 나누었다면, 요즘은 키치하고 신선한 문화를 누가 먼저 디깅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세련된 소비자의 덕목이 되었다.

 

 

 

다운그레이드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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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 정규 1집 홍보물 / 뚜레쥬르한 장씩 뜯어먹는 32겹 브레드

 

 

처음 접하면 조잡하다고 느낄지도 모를 포스터들이다. 에스파의 명함은 길을 걷다가 바닥에서 한 번쯤은 봤던 것 같은 일수/대출 광고가 떠오른다. 게다가 뚜레쥬르의 포스터는 포토샵을 처음 배운 사람의 과제물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광고물을 보고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도 어떤 영역에 차용되느냐 따라서 신선함은 배가 되기도 한다. 그때 터지는 웃음이 비록 헛웃음일지라도 말이다.

 

일단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부터 성공적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봐주는 이가 없으면 소비되기도 전에 상한다. 추후에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 않으면 창작자의 사기가 꺾이고 계속해서 콘텐츠를 제작할 원동력이 줄어든다. 좋은 구성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콘텐츠의 해상도를 낮추는 행보가 이해가 가는 이유다.

 

 

 

흔들다리 효과, 장르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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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하기 <순정망화> / <에밀리의 저택>

 

 

사람의 첫인상을 30초면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이름과 겉모습, 걸친 옷과 가방으로 어떤 사람일까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 동물적인 감각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당된다. 만화의 제목이 무엇인지, 주인공의 머리색은 무엇인지 기대하고 스크롤을 내린다. 예상에 걸맞은 내용이 나오면 만족스럽게 보기도 하지만, 클리셰 범벅의 올드한 스토리가 예상되면 빠르게 창을 닫기도 한다. 인간은 기대에 불일치하는 상황을 불편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손하기의 만화들은 항상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뇌를 빼고 봐야 하는 만화’라고 평하기도 한다. 순정 만화를 지향하지만 사실상 개그 혹은 액션물에 가깝다. 현재 연재작인 <에밀리의 저택>은 미스터리 오컬트물로 오해할 만한 음산한 포스터와는 180도 다른 해맑은 주인공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부터 장르를 못 박지 않고 기대한 바를 깨는 것이 주요한 재미 요소다. 독자들 또한 다음 화를 추리하며 새로운 전개를 상상해 보며 댓글에 공유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진부한 사고를 하며 콘텐츠를 소비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유연한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장르 비틀기는 근본 없을지는 몰라도,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탈권위적인 새 관점을 시사한다. 마치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비주류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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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맨 유튜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타겟팅을 잘 하는 것도 능력이다. 흩어져 있던 소수를 모으면 하나의 장르가 된다. 그것이 인터넷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이라면 침착맨은 능력 과다다. 만화가 이말년에서 유튜버 침착맨까지, 다재다능한 그는 어느덧 258만의 유튜버다. (24년 9월 기준) 규모가 큰 계정을 운영하는 그가 어째서 B급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방송들을 몇 편만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주로 다루는 콘텐츠를 나열하면 주제별 이상형 월드컵, 나무위키 설명회, 롯데리아 신제품 품평회 등.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보편적인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메인 스트림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꾸준히 본인의 색을 유지하면서 방향을 잡아갔다. 물론 이제는 나만의 작은 유튜버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그가 지닌 본질은 늘 같다. 독특한 시각을 가감 없이 공유하고, 남을 위해 움직이기보단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소신 있게 실천하는 게 그만의 매력이 되었다. 고도로 발달한 비주류 컬렉터는 감도 높은 큐레이터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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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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