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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는 '얼굴 없는 익명의 예술가'로 활동하며 각종 사회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메시지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영국 출신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전이다. 5월 10일부터 ‘그라운드 서울’에서 진행 중인 본 전시는 뱅크시가 설립한 회사이자 작품 판매와 진품 여부 판정을 맡는 페스트컨트롤의 정식 승인작 29점을 포함해 약 130여점이 전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뱅크시 작품전으로서 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전시 [리얼 뱅크시]는 1층 매표소에서 티켓을 수령하면, 곧바로 해당 층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하는 여타 전시들과는 달리 지하 4층에서부터 점차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기획된 공간 구성이 특징적이다. 이때, 처음 입장하는 계단과 벽면을 따라 뱅크시 작품의 핵심 소재인 ‘쥐’ 그래피티를 곳곳에 배치한 것은 비상구라는 공간 특성을 잘 활용하면서도 전시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래피티의 일부분으로 퀴즈 이벤트에 연동되는 QR코드를 함께 배치해 관람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역시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문단부터는 전시 [리얼 뱅크시] 주요 전시장의 섹션별 주제 및 작품 구성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감상 후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SECTION 1: 진짜 뱅크시는 어디에? (Where is Real Banksy? - Banksy was Here.)


  

Flying Copper(2003).jpg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Art should comfort the disturbed and disturb the comfortable."

 

 

지하 4층에 처음 발을 들이면, “Where is Real Banksy?”라는 Intro. 제목과 함께 뱅크시가 펼쳐온 지난 25년(1998~2023)간의 활동 이력을 국가와 연대기로 정리한 인포 그래픽을 만나볼 수 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1 전시장에서는 팔레스타인 장벽에서의 활동 기록과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문제, 자본주의에 대한 냉혈한 비판을 담은 디즈멀랜드, 그리고 2015년 활동 기록들을 중심으로 뱅크시의 예술적 행보에 담긴 ‘진정성’을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1 전시장의 핵심은 디즈멀랜드의 일부를 재현한 대형 거울 포토존이라 생각한다. 지하 4층에서부터 지하 1층에 달하는 높이의 거대한 디즈멀랜드 입구와 망가져서 녹아내린 회전목마, 그리고 반대편 벽을 모두 뒤덮어 이들을 비추는 거울까지. 이는 전시장 그라운드 서울의 공간감을 극대화함으로써 탁 트인 개방감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여러분은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됩니다. (Here you are not just spending, you are think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 (The Simsons)]의 오프닝 시퀀스를 벽면 미디어로 보여준 점 또한 기억에 남는다. 뱅크시가 기획한 오프닝은 불공정 거래, 동물 학대, 환경 오염, 노동 착취 등 비참한 하청업의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예술의 상업성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처럼 무게감 있는 연출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지닌 존재감이 더욱 부각되어 마치 우리가 뱅크시에게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SECTION 2: 풍선과 소녀 (Girl with Ball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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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역시 창조의 욕구다.

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

 

  

1 전시장의 흐름과 이어서, 2 전시장에서는 예술계 기득권의 엘리트주의와 예술의 자본화를 강력히 비판한 리얼리즘 작품들을 통해 자본주의에 침식당하는 예술의 가치를 되살리려던 뱅크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9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파쇄기에 작품이 갈리는 퍼포먼스로 굉장한 화제를 끌었던 작품 [풍선과 소녀]가 그 예시이다.

 

이때, 해당 섹션에서 필자의 취향을 가장 저격했던 것은 다름 아닌 뱅크시의 ‘쥐’에 대한 해석이었다. 뱅크시는 쥐들이 미움을 받고 쫓기고, 잡히고, 학대당하며 더럽고, 불결하고, 조용한 절망 속에 살고 있다 설명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쥐들은 허가 없이 존재하며 마음만 먹으면 문명을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존중을 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의 결정적인 역할 모델이 바로 쥐라고 말하는 뱅크시의 의도는 결국 소외된 자들이 지닌 연대의 힘과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SECTION 3: 진짜 뱅크시, 진짜 나 (Real Banksy. Real Me.)


 

Monkey Queen(2003).jpg

   

 

“이 세계의 거대한 범죄는 규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따르는 데에 있다.

The greatest crimes in the world are not committed by people breaking the rules but by people following the rules.”

 

  

3 전시장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지배구조를 보여주는 뱅크시의 작품들을 보여준다. 사회 지도층의 권위와 과도한 통제는 곧 대중을 수동적이고 관조적으로 만들어 ‘진짜 나’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게끔 한다. 그러니 우리를 지배하는 외부의 통제를 인지하고, 이유 없는 차별과 폭력에는 반대하며 고유한 자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섹션에서는 최종적으로, 투자의 목적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사달라 조언하는 뱅크시의 목소리를 통해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망과 갈망 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돌파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ECTION 4: 행동하라,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Banksy is Now Here.)


 

Happy Choppers(2003).jpg

 

 

“혁명은 오직 전시를 위한 것, 사람들은 항상 혁명가처럼 옷을 입으면서도 그들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This revolution is for display purposes only. People always seem to think if they dress like a revolutionary, they don’t actually have to behave like one.”

 

  

마지막 4 전시장은 예술을 넘어 우리 시대 그 자체에 던지는 뱅크시의 ‘나눔’과 ‘관심’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이 돈을 가져다주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를 나눔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세상의 빈곤에 관해 예술을 만들면서 그 돈을 혼자 쓰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라면서 말이다. 이에 필자는 외부의 부정적 인식에도 신념을 관철하며 그래피티의 위상을 높이고, 예술이 끼치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토대로 변화를 촉발하는 뱅크시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아티스트라 생각하는 바이다.

 

 

 

마치며: 진정한 REAL BANKSY의 정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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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22년 종로 아트 프라자에서 진행된 [아트 오브 뱅크시 앙코르 인 종로]를 통해 처음 뱅크시라는 예술가를 접했다. 스스로를 '아트 테러리스트'라는 조금 과격할지 모를 표현으로 자신을 지칭하면서도, 뱅크시의 시각은 단지 회의적이거나 염세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필자가 뱅크시의 활동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것 역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 뒤에 존재하는 약자를 향한 배려와 도움의 손길 때문이다.

 

또한, 뱅크시는 제도권에 대한 비판, 반전과 평화, 비폭력, 환경 등 현대 사회의 핵심 쟁점들을 주요 주제로 다루며 동시에 예술의 자본주의적 관점을 반대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라면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 매우 필연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에 어쩌면 시대역행적인 흐름일지라도, 뱅크시는 예술이 추구해야 할 본질이 순수성에 있음을 강조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기부와 지원으로 확장시키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문제의 근원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차가운 이성과 예술의 근본을 오래도록 지켜가는 뜨거운 열정의 조화. 그게, ‘REAL BANKSY’를 관통하는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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