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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빕니다. 이번 생은 어차피 모두가 처음이니까.
 


‘나한테 쪽팔려서 그래요. 그쪽이 아니라 나한테.’

 

지호는 자신이 3년 동안 짝사랑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세희에게 들켜 버린다. 쪽팔려 하는 지호에게 세희는 우리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으니까 쪽팔려 하지 않다고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호는 말한다. 그쪽이 아니라 나한테 쪽팔린 거라고. 나이 서른 먹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 한 자신에게 쪽팔린 거라고. 세희는 스무 살, 서른과 같은 시간개념을 구분하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른도 마흔도 똑같은 오늘 일뿐이라고. 지호는 다시 못 볼 사람인 세희의 그 말들이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곤 마음이 애틋 해졌다.


우리는 항상 나이를 앞세우며 이 나이 대에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지어놓곤 한다. 그리고 20대에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을 하지 않으면, 30대에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 나이 대에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여겨버린다. 그리곤 우리는 좌절한다. 남들의 20대는, 30대는 저렇게나 빛나고 멋진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다. 그래서 고양이에겐 내일도 모레도 없다. 오늘만 있을 뿐이다. 고양이들은 그저 오늘을 묵묵하게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스무 살도, 서른도, 마흔도 그저 똑같은 오늘 일뿐이다. 우리는 그 오늘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현재밖에 없는 고양이처럼. 그래서 우울해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는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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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지호는 아무런 감정 없이 계약 결혼을 한 세희에게 점점 마음이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희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잘 있어 돌아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

 

애틋한 감정이 담긴 쪽지를 보며 세희가 과거 연인과 어떻게 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호는 그 쪽지를 보며 ‘방문객’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지호의 감정은 질투, 슬픔, 좌절 등의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내가 그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살고 있는, 살아갈 일생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호는 세희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고, 궁금하면서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호는 세희의 마음의 길을 알게 된 순간 그냥 좀 슬퍼졌다.


세희는 알고 지호는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사랑이었다. 세희는 사랑을 아니까. 그래서 더 무서웠을 것이다. 알고 나면 못 하는 게 많아지는 것이 사람이다. 세희가 사랑을 알게 되어서 지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기 무서워하는 것처럼. 지호가 세희의 과거를 알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을 고민하는 것처럼. 우리는 한 해 한 해 인생을 겪어갈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은 결국 단점으로 돌아온다.


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다 아니까 우리는 모든 일이든 한발 내딛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치를 핑계 삼아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핑계가 많아지는 것 같다. 내일의 일을, 그 행동에 대한 결과를 그 누구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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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살아봤다고, 오늘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예전에 봤던 바다도 오늘 이 바다는 처음이잖아요.’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 해봤다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현재의 순간에는 모두 다 처음이니까. 과거에 그렇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다. 어떤 것은 부서지고, 어떤 것은 흘러가고. 그러니까 우리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제를 겪어봤다고 오늘을, 미래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의 생은 모두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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