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일에서 맞닥뜨린 한국 아이돌 문화

글 입력 2024.06.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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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여행하던 와중에 난생 처음으로 ‘에어비엔비’스러운 에어비엔비에 머물러 봤다. 집에 함께 머무는 호스트가 직접 나와서 마중을 해주더니 집을 간단히 둘러보고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그러고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로 시작해 사적인 대화를 터 나간다. 한국, 유학, 납작 복숭아 등…

 

호스트와 우리는 유쾌했다. 어느 날 호스트들은 퇴근 후 도시 투어를 해준다고 먼저 제안했고 시간은 많고 계획은 없었던 나와 친구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너무 관광지스러운것 말고 독일인이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궁금하다는 우리의 말을 듣자 호스트 친구들은 ‘자랑스러운 독일 주식’인 케밥을 파는 곳으로 데려갔다. 역시 싸고 맛이 좋았다. 그 다음 코스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독일에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샷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허브샷, 토마토와 타바스코 소스가 들어간 멕시카나 샷, 계란이 들어간 에그노그샷을 연이어 마셨다. 오랜만에 밤을 유랑하는 젊은이가 된 기분이었다.

 

호스트들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자전거가 없는 우리는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의 대화를 복기해보고 있자니 마음에 쓰이는 하나의 대화가 있었다. 서로의 음악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호스트들이 물었다. 케이팝 좋아해? 독일에서 케이팝 인기는 정말 미쳤어. 우리는 답했다. 맞아. 요즘 난리지. 우리는 케이팝을 찾아 듣지는 않아. 호스트 한명이 이어 말한다. 케이팝 아이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들을 들었어. 케이팝 산업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나는 맞장구친다. 맞아. 케이팝 산업에는 건강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이하생략.

 

생각할수록 기분이 묘했다. 나는 한국 아이돌 음악을 즐겨 듣지도 않으며 그 산업에 병적인 부분이 많다고 본래 생각해 왔지만 이를 외국인의 입으로 들으니 맞장구를 치면서도 어딘가 슬그머니 불편했다. 욕을 해도 내가 하지, 외부인이 부정적인 말을 얹는 것이 못마땅했던 걸까. 부인할 수 없이 불편함의 큰 이유를 차지했지만 단지 그뿐 만은 아니었다. 서양권에서 일부는 ‘한국 음악의 부상’이라는 현상을 대하며 한국 아티스트들을 인격성이 결여된, 배운 대로 춤추고 노래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찍어내는 양산형 개체로 보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물론 이는 한국 내에서도 존재하는 비판이며 개인의 개성과 서사가 중시되는 서양문화권의 관점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주도 아래 오랜 시간 혹독한 연습생 시기를 거쳐 ‘칼각’으로 춤을 추는 한국의 아이돌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아이돌 '산업' 문화라고 부른다는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호스트들의 관점이 열등하고 인간을 상품화 시키는 동양을 한 축에 놓고 다른 한 축에 인격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서양을 놓은 후 둘을 대비시키는 오리엔탈리즘과 어딘가 닮아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정말 어려운 부분은 한국 아이돌 문화에 병적인 구석이 있다는 호스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고 그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그러는 넌?'이라고 되쏘아주는 피장파장의 오류에* 빠지거나 그런 병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미학을 긍정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의장의 한 인터뷰는 유명하다. 그는 한국 아이돌 문화가 아티스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느냐는 백인 앵커의 질문에 서양권의 문화를 되물으며 서양 아티스트들 또한 부담아래 활동하지 않느냐고 받아 친다. 이런 방시혁 의장의 대답은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로 이어지기 쉬워 보인다. 서양문화권에서 아티스트들이 부담감으로 인해 술과 마약에 의존하고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산다는 사실이 한국 아티스트들 또한 부담감 아래 살아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든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살수 밖에 없다’는 공식 같은 것을 도출하지도 않는다. (참고로 그는 하이브에서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자율권을 보장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피장파장의 오류: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 서로 낫고 못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 하는 오류 (네이버 사전)


 

 

 

한편 한국 아이돌 문화의 병적인 미학을 긍정한다는 것은 아이돌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그들이 체화활 수 밖에 없는 ‘아이돌성’을 그대로 긍정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중의 책임이 크다. 종종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가 아이돌들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심리기제 아래에는 두가지 논리가 있을 것 같다.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논리와 ‘대중은 소비자’라는 논리다. 전자의 공인 논리로 대중은 연예인의 영향력을 이유 삼아 그들의 말투와 행동거지, 도덕성 등을 심판대로 올린다. 후자의 소비자 논리로 대중은 스스로를 대중문화의 ‘소비자’로 인식, 잘못 나온 음식에 문제를 제기하듯 아이돌들의 외양 등에 정당하게 비판이나 비난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아이돌들에 대한 본인의 애정을 지렛대 삼아 ‘살 좀 빼야할듯’ 같은 "조언"이나 요구를 한다거나 ‘이렇게 하면 팬들은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지’ 같은 간접적인 협박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아이돌은 말그대로 ‘우상’이지만 대중 도파민의 먹이거리가 되는 ‘희생양’이기도 하다. 이런 아이돌의 정체성 자체를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긍정하고 과정의 병폐를 그 결과인 케이팝의 어마무시한 성공으로 정당화 하는 것이 병적인 미학을 긍정하는 것일테다.

 

과연 아이돌 문화의 병적인 미학을 긍정해도 되는가의 질문을 답하기 위해 논의의 대상을 넓혀볼 수도 있다. 가령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같은 것에 미학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날 오전 트램을 타러 가는 길에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빠른 속도, 많은 돈, 경쟁, 혼미해지는 정신. 한국 사회에는 자칫 월스트리트가 떠오르는 부분이 있다. 친구의 질문에 나는 그렇다, 이런 사회에도 특정 미학이 있는데 그것은 디스토피아적 미학이다, 혹은 그것을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지자면 미학이 맞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조적인 관점에서고 사람 사는 곳에 디스토피아적인 미학이라니 부적합하다는 논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만화책이나 영화로 보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서 디스토피아적 미학 따위를 실제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따라서 ‘한국 아이돌 문화 좀 이상하고 병적인 부분이 있잖아’ 라는 말에 ‘그게 뭐 어때서, 그게 우리 문화만의 매력이야, 혹은 그게 지금과 같은 성공을 가져다 줬으니 괜찮아’라는 태도는 누워서 침뱉기와도 같다. 혹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쉬운 소리이거나.

 

위의 인터뷰로 돌아가서 다소 얄밉게 한국 연예 산업을 바라보는 해외의-특히 서양의- 비평을 듣고 있자면 ‘그러는 당신들은?’으로 시작해 그들의 문제를 요목조목 나열해 주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슨 방법으로든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잘 먹히는’ 방법 혹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넓히고 만만히 볼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최근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 방시혁 의장의 인터뷰가 큰 인기를 얻기도 했던 것이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의 관점이 우리에게 객관적인 시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지 그 다른 나라 사람의 가치와 관점을 위해 우리 문화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한국 문화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대외에 어떻게 드러낼지 보다 우리 사회와 우리 스스로를 위해 내부에서 고치고 손보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지속적인 악플과 희롱, 그리고 그런 악플과 희롱이 인기를 얻는 문화에 실제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면. 연예인들의 잇다른 부고에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연예인들에 대한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지, 익명의 공간에서 성숙해지기란 영영 불가능한지, 왜 가상공간에서 언어는 이리도 가벼이 쓰이는지. 아이돌 문화의 기저에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 또한 쉬운 말이지만, 모두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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