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요건 : 광고주에 굴하지 않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자
우대사항: EA SPORTS FIFA 2021 숙련자
여러 기업의 하반기 채용 공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는 요즘이다. 당장 구직 사이트에 접속해서 스크롤만 조금 내려도 당신은 이미 수십 개의 하반기 채용 공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채용공고 글을 보면 대부분이 비슷하다. ‘경력직’, ‘국내외 4년제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 ‘영어 능력 우수’ 등… 그런데 이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기업이 있다. (사실 ‘기업’보다 ‘창작집단’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공개처형, 처음에는 공개채용을 잘못쓴 거라고 생각했으나 공개’처형’은 오타가 아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더 가관이다. ‘광고주에 굴하지 않고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자’라고 쓰여진 자격요건은 웃어넘길 수 있다고 쳐도, 우대사항에 선명하게 적혀있는 ‘FIFA 게임 숙련자’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2023년 공개채용시 지원서류 양식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에게 있어 광고라는 매체가 가지는 의미를 서술하시오.
2. 아래 열거된 단어와 문장을 모두 사용하여 작문하시오.
(분량 자유, 작문 양식은 에세이, 시나리오, 광고 기획안, 시, 가사, 논평 등 자유 선택)
[지우개], [거북이], [2시 58분], [스피커] , [다음에 만나면, 그땐 적이다.]
3. 기존의 영상 광고 중 ‘내가 만들었으면 이보다 더 잘 만들었겠다’ 생각되는 것을 골라
해당 광고의 새로운 기획안/시나리오를 제시하시오. (분량 자유)
1) 기존 광고명 :
2) 기존 광고 링크 주소 :
3) 기존 광고의 아쉬운 점 :
4) 자신의 기획안 :
4. 다음 중 택일하여 아래의 사각형을 채우십시오. (도구/프로그램 자유)
1) 본인이 지금까지 9집을 낸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고, 직접 10집 앨범 자켓을 제작하시오.
2) 자신을 소개하는 아트웍을 제작하시오.
3)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시오.
- 선택 주제 :
- 부연 설명 :
5. 자신이 돌고래유괴단에서 얻고자 하는 것과 포부를 (적당히) 쓰시오.
이걸 보고 기업의 지원서류 양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특히 '지우개', '거북이', '다음에 만나면, 그땐 적이다.'라는 키워드로 한 편의 글을 작성하라고 하는 작문 문제는 정말 특이하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다른 광고나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지원서류 양식에서도 이 정도로 독특한 문항은 본 적이 없다. 본인이 지금까지 9집을 낸 뮤지션이라니? 직접 10집 앨범 자켓을 제작하라니? 이런 질문들로 정말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돌고래유괴단' 2023 공개채용(처형)
'돌고래유괴단' 2021 공개채용(처형)
돌고래유괴단, 그들은 누구인가?
이야, 고놈들 참 웃기다.
‘돌고래유괴단’은 광고 영상을 소개해 주는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돌고래유괴단’의 PD이자 대표인 신우석 감독은 뉴진스의 ‘ETA’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유퀴즈 온 더 블락’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과거에는 빚으로 힘들었으나 지금은 약 3억 원에 달하던 빚을 전부 청산했다고 밝히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2018년에는 '유튜브에서 선정한 인기 광고 영상 20편' 중 돌고래유괴단이 제작한 광고가 무려 5건이나 포함되었다. 돌고래유괴단을 대중들에게 알려진 첫 작품이자 팀을 대표하는 ‘캐논 파워샷 G7 X Mark ll’은 지금까지도 많은 광고업계 사람들과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기업명이 특이해서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 하여 찾아봤는데 별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독특한 광고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에 흥미로운 마음에 돌고래유괴단 계정에 올라온 최신 영상 몇 개를 시청해 본 적이 있는데, 나에겐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상의 댓글 반응을 보니 나만 충격 받은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댓글창에는 'n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보러 온다', '확실히 잘 만든 광고는 다르다' 등 그들만의 독창적인 광고 영상에 대한 호평이 가득했다. 그들은 마동석, 김연아, 하정우 등 여러 유명인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들만의 특별한 경력을 쌓았다. 돌고래유괴단 특유의 병맛스러움은 광고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갈수록 더 빠르고 간편한 걸 선호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광고는 '어서 스킵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돌고래유괴단의 광고는 되려 사람들이 시청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게 만든다. 빨리 넘겨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 다시 한번 더 보게끔 만드는 광고 영상에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돌고래유괴단 작품의 중심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돌고래유괴단의 작품들에는 '깊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돌고래유괴단의 광고 영상을 단순히 '병맛'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작품에는 확고한 취향과 사색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스토리텔링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광고는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마는 그 깊이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의 독창성을 전부 아우를 수 있는 스토리가 탄탄한 기반을 다져준 덕분에 돌고래유괴단의 광고는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그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특유의 병맛스러움이 특별한 취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광고주 자제면 정말 바로 합격시켜 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