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산여행을 떠난 김에 부산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진행 중인 기획전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능수능란한 관종》, 《마크 리: 나의 집이었던 곳》. 가장 윗층에서부터 차례로 세 전시를 모두 관람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능수능란한 관종》이다.
이유인 즉슨, 최근 3년 간 본 전시 중 가장 '요상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라는 평범한 표현으로는 부족한 '요상한' 기획은, 말마따나 '능수능란한 관종'과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신민의 거대한 모형 작품과 거울샷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작품 캡션, 그리고 미로형 동선을 빼곡히 채운 23팀의 작품까지. 전시장 내의 모든 요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소리치는 듯 했다.
정치와 예술
서문에 따르면,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예술, 광고, 정치 등의 영역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택하는 방법을 조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창의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전시장 내부에는 '예술'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통용되는 주제가 제시된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관람을 이어가던 도중, 문화사회주의 연대기를 논하는 구간이 등장했다. 한 눈에 봐도 작품이 속속들이 보여 빠른 템포로 이어지던 전시의 흐름이 끊긴 순간이었다. 넓은 벽면 한쪽은 문화 사회주의 연표와 설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고, 맞은 편에는 공산주의, 전쟁 상황 등을 다룬 작품이 걸려 있었다.
단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주의에 사회 비판이 적당히 첨가된 전시에 묵직한 정치 꼭지가 등장한 셈이다. 갑작스런 전개에 설명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이념과 다른 것을 '정치적 관종'이라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시점에, 이런 형식으로 문화 사회주의 개념을 끌어다 놓은 저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젠지'의 시각화
한편, 제목에서부터 물씬 풍기는 'Gen Z(젠지)'의 향기는 출품작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본인은 디지털보단 아날로그를 편애하는 바를 우선 밝힌다. 실시간으로 뇌가 녹는 것 같은 릴스, 숏츠를 가능한 한 피하고 종이책 독서와 사유를 고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는 후반으로 갈 수록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숏폼, AI 인플루언서, 인터넷 밈을 다루는 작품은 낯설게 느껴졌고, 공감은 커녕 거부감이 든 순간도 있었다. 대부분 전시 말미에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배치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거부감'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현대 사회의 지나친 '관종'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현실을 돌아보는 한편,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적어도 필자에겐 완전히 '먹혔다'!
그러나 한 가지 고민되는 지점은 이 전시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는 사실이다.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공공미술관에 이 전시가 과연 부합하는가? 최신 변화를 지극히도 표방하는 이 전시가 세대를 아우르는 방법일 수도, 다른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발칙한 미술관
이와 같은 혼란함에, 부산현대미술관의 지난 전시를 살펴보았다. 미술, 전시의 변화를 논할 때 번번히 등장하는 《지속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을 필두로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등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 미술관 중에서도 특히 진보적인 길을 개척해 왔다. 미술관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는 것부터 오랜 시간 답습된 전시의 기본 개념을 비트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그 기획들 뒤엔 최상호 학예연구사가 있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4년차 큐레이터인 그는 그간 미술계, 특히 전시사에 주목할 만한 방점을 남긴 전시를 선보여 왔다. 작가 출신의 학예사로 '작업 같은 전시'를 선보인다는 평이 있는데, 그제야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마냥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전시를 납득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관객에게 '의심을 가지고 전시를 봐달라'고 말했다. 작품과 전시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고, 관객이 자신만의 의견과 생각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그의 기획 방식임을 알게 되고, 비로소 전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능수능란한 관종》전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표현하는 '관종'이라는 대주제 아래 세분화된 주제가 차곡차곡 빌드업되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알찬 기획이다. 그러나 그 밀도가 충분히 빽빽하고 주제의 흐름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었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각 팀에게 주어진 섹션 간의 편차가 커 완성도가 부족해보였고, 긴가민가한 시점에 작가 소개만 담긴 브로셔를 펼쳐봤자 아무런 힌트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공공미술관이라는 제도화된 공간으로 23팀의 별종들을 끌어 들여 하나의 전시로 묶었다는 점은 유의미한 성과다.
어느 정도의 '관종끼'가 성공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 현대 사회에 우린 모두 '관종'이거나, '관종'이 되고 싶거나, '관종'이 잠재되어 있다. 부산에 방문한다면, 부산현대미술관에 들러 자극적인 시각 예술로 도파민이 실시간으로 터지는 경험을 느껴 보길 바란다. 전시는 7월 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