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리를 통해 보여지는 우리 주변의 관계들 -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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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론되는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들은 대부분 개인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소프트 스킬(soft skill)'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기업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협상, 팀워크, 리더십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소프트 스킬은 비단 기업 및 경영 수준에서만 필요한 역량은 아니다. 넓게는 우리 주변 도처에 있는, 보이지 않지만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주고 받는 모든 관계망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1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마이클 주의 개인전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은 이와 같은 소프트 스킬(마음의 기술)에서 작품과 전시의 의미를 찾는다. 마이클 주는 과학과 예술을 이으며 인식과 정체성, 경계를 주제로 작업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중에서도 지리적이기도 생물학적이기도 한 교환관계, 연결망을 탐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부드러운(soft)’ 기술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딱딱한 유리와 아크릴 패널들이 수직으로 서 있어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유리의 물질성은 전시장 공간을 구획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움직임을 유도하면서도, 그 너머를 투명하게 비춤으로써 공간이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공간의 분할과 연장이라는 유리의 이중성은 다이크로익 유리 작업인 〈Revider〉 시리즈에서 극대화된다.
이색성 유리라고도 불리는 이 유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며, 거울처럼 앞의 대상을 반사시키기도, 일반 유리처럼 반대편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우리는 유리 앞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유리 뒤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곳과 저곳이 연결되고 확장된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비가시적인 연결망을 암시한다.
색 없이 투명한 다른 아크릴 패널에는 거대한 바위나 버섯이 부착,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Revider with Carbon Doppelganger〉(2024)의 바위는 우레탄, 탄소 가루, 흑연, 숯 등을 섞어 만든 덩어리다. 그 형태는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사는 어린이들이 한탄강에서 수집한 화산석 표본들로부터 따왔다.
작가는 DMZ라는 정치적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장소를 전시장으로 불러들여 관람객에게 환기시킨다.
특정 장소의 흔적으로부터 그 의미를 소환한 작품은 이 외에도 〈Cosms(Catalunya)〉 연작, 〈The Vagueness Argument〉(2017) 등이 있다.
〈Cosms〉 연작은 마치 전시장을 떠받드는 네 개의 기둥이라도 된 듯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정사각형의 다이크로익 유리판이 받치고 있는 알라바스터 암석은 스페인 카탈루냐에 있는 퇴적암층에서 잘라온 것이다. 암석의 표면은 은도금이 되어있어 그 반짝거리는 반사면은 아래 유리판과 함께 빛을 낸다.
〈The Vagueness Argument〉의 반짝이는 표면 역시 은도금에서 기인한다. 동양화 같기도 한 캔버스 화면은 독도나 바르셀로나, 뉴욕의 폐공장 등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소외되거나 논쟁이 되는 땅의 흔적을 채취한 것이다. 지면에 에폭시를 바른 캔버스를 고정시킨 후 노출하여 땅을 본뜨고 은도금을 통해 텍스쳐를 강조했다. 때문에 표면은 흐릿하지만 거울처럼 관람객을 반사시켜, 우리를 캔버스 위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다만, 제작 과정 특성상, 장소의 흔적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화면에는 구릿빛 바탕 위에 검은 무늬의 형태가 모호하게 나타날 뿐 각 장소의 어떠한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진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가 각 작품이 뿌리를 둔 곳을 식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제목을 통해서다.
매끄럽고 차가워 보이는 유리 작업들 속에서 이불은 뒤집어쓴 형태의 〈Mediator(redux)〉(2024)는 이질감이 든다. 요셉 보이스가 1974년에 선보였던 퍼포먼스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를 오마주한 이 작품은 그 형상 뿐 아니라 작가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보이스의 지팡이는 돌구슬로 만든 옥수수 수염으로 치환되며, ‘저변의 속삭임’을 암시하듯 전시장 바닥을 기며 사방으로 흘러간다. 한편으로, 이 이불을 뒤집어 쓴 형상도 다이크로익 유리판 위에 올라가 있어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하다.
[정충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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