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깊고 무거운 이야기 - 숄

글 입력 2023.12.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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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숄>은 그 두께가 굉장히 얇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얇기와 달리,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압도되는 표지의 그림이 첫 번째 이유였다. 현대 무용을 상상하게 만드는 표지의 이미지가 어쩐지 무거운 인상을 주었다. 제목은 숄, 외자인데 숄 안을 들춰보면, 그 속에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품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숄>은 2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숄>과 그 후속과도 같은 <로사>. 후속이라는 설명에서처럼 두 단편은 이어져 있다. 소재는 홀로코스트. 아, 내가 느낀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구나.

 

두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로사이다. 로사는 한 아이, 마그다의 어머니이자, 또 다른 아이, 스텔라의 고모이다.

 

숄 - 나치의 대학살로 가족을 모두 잃고 남은 사람은 단 셋. 그들은 춥고 혹독한 학살을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그 즉시 아이는 살해당하고 만다. 따라서 로사는 자신의 숄 속에 마그다를 꼭 품고 혹여나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린 채 고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날은 몹시 춥고 먹을 것은 없다. 하지만 기특한 마그다는 숄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숨길 줄 아는 아기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날이 더없이 춥고 모질었던 밤, 추위를 이기지 못한 스텔라가 마그다를 감싸고 있던 숄을 잡아 끈 그 순간. 순식간에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로사는 마그다와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된다.

 

로사 - 홀로코스트가 있고 몇 년 후, 로사는 미국의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자신의 가게를 스스로 때려 부순 후 조카 스텔라가 보내주는 돈으로 지역 호텔에 거주하고 있다.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스텔라와 달리, 로사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져 있다. 지금의 삶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곁에는 아직도 마그다가 살아 숨 쉰다. 어디선가, 멋진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그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로사. 변해버린 스텔라를 속물이라 욕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시로 차오르는 분노의 화염은 그녀를 넘어 타인의 호의에게까지 번진다.

 

단편 <숄>과 <로사>의 주인공은 모두 로사이다. 첫 번째 단편 <숄>에서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자, 딸의 죽음 앞에서도 그저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두 번째 단편 <로사>에서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과거의 상흔 속에서 살아가는 노년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딸 마그다의 죽음으로 이어진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를 저자는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읽다 보면, '이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로사의 황량하고 황망한 마음이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단어와 표현으로 묘사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치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인처럼 생생한 기억이지만, 막상 저자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질 당시 미국에 있었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보다 1년 먼저 태어났음에도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참사를 피한 것 같아 왠지 모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저자. 소설 <숄>은 자신이 쓰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라, 저절로 쓰인 글이라고 말한다.

 

홀로코스트를 타인의 역사로 배우는 이와 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이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느껴지는 아픔과 고통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 <숄>의 깊은 이야기는 저자가 이를 단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로 여긴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자신의 삶이라 여겼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꾸며내지 않은 진짜의 언어와 감각으로 쓰여 있기에 겉보기엔 짧고 얇지만, 쉽게 끝내기 어려운 깊고 무거운 이야기였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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