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데미안의 결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도서/문학]

데미안은 허상일 뿐.
글 입력 2023.11.20 11: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거장들은 대개 그 자신의 소설에서 공유하는 특성을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지만, 헤르만 헤세는 그중에서도 심한 편이다. 자아가 약한 주인공, 초월적 존재, 동성애적 묘사, 신경쇠약과 정신 분열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소설은 때로는 해석에의 다양성을 제공하고, 난해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그중 난해함의 측면에서 단연 발군인 것은 기묘하게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데미안>이라고 생각한다. 난 유년과 학창 시절, 20대의 극 초반을 거치며 약 세 번 정도 읽은 책이지만 제대로 (특히나 결말 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생각하진 않지만 인제야 결말 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생겨서 나름의 상상을 가미해 쓴다. 헤세가 듣는다면 신경쇠약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1311.jpg

 

 

프란츠 크로머는 작품 초반의 메인 빌런 롤을 수행하는 캐릭터로서, 신실한 빛의 세계에 살고 있던 싱클레어를 폭력을 통해 '어둠의 세계'를 인지하고 두려워하게 만든 매력적인 악역이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쯤까지도 크로머의 이름을 헷갈리고 '그 깡패. 누구였죠?'를 연발했다. 제법 볼륨이 있는 내용 속에서, 크로머는 초반의 큰 영향에도 이후 단 한 번의 언급이 없다가 마지막 전장에서, 싱클레어 앞에 홀연히 등장한 데미안에 의해 언급되고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괴롭히는 크로머에게 무엇을 이야기했기에, 단 한마디를 들은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인생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크로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언급하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데미안은 이분법적인 고전의 선악 개념을 부정한다. 그는 카인의 표식과 아브락사스 등의 예시를 들며, 기존의 종교적이고 신실한 세계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분리 불가능성을 논설한다.

 

그렇다면 데미안은 무엇을 말했을까.

 

작품 내적으로, 프란츠 크로머는 고전적, 이분법적 정의가 있는 세계의 '악의'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고전적 선의'를 가지고 있던 싱클레어의 '환경'에서 고뇌자인 싱클레어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고전적 악의'를 표출한다.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그릇된 인식이다. 작품 내내 고전적 선의와 도덕관을 의심할 것을 제기하는 데미안이지만, 그의 관에서 일방적인 악의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한 데미안의 말은, "당신이 하는 행동이 악이 아닐 수 있다."였다. 명시적 악을 행하고자 했던 크로머는 그러한 인식 이후, 싱클레어를 괴롭힐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작품 마지막의 싱클레어에 대한 데미안의 키스와 이별에 대해서, 데미안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러한 초월자적 이미지는 헤세의 소설에 자주 나오는 플롯이긴 하다만, 사실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데미안이 실존 인물인 편이 더 핍진성이 떨어지긴 한다.

 

우선 작품 내적으로 데미안은 너무 신출귀몰다. 싱클레어가 어디 있건, 그는 칼바람에서 스노우볼이라도 한 개 맞춰놓은 것처럼 (웃음) 슥 찾아온다. 데미안 본인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고, 실제로 남의 주의를 흩뜨렸다, 등의 핑계로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막 나타난다. 에바 부인은 더하다. 싱클레어는 아예 에바 부인을 만나기 전부터 에바 부인의 예지몽을 꾸고, 에바 부인과 데미안은 작품 내 그토록 강조되는 '중성성'을 띤다.

 

고전적이고 신실한 '빛의 세계'의 어린아이 싱클레어는 유년기의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상태가 된다. 갑작스레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 싱클레어의 트라우마는 이에서 도피하기 위한 기제인 '중립성'을 상정하고 '데미안'을 만들어낸다.

 

초반의 그러한 영향력과 트라우마를 남겼음에도, 그리고 모든 그 행동과 심지어 '데미안'의 기인이 되었음에도 소설 내내 '크로머'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싱클레어에게서도, 데미안에게서도.

 

싱클레어에게 크로머에 대한 기억은 겨우 극복해낸 트라우마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주하기 싫은 기억에 싱클레어는 이 기억을 의도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데미안>

 

데미안은 '내가 네 안에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싱클레어에게서 떠나간다. 싱클레어는 결국 그 자신이 감당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평생의 트라우마이자 성장의 원인이었던 프란츠 크로머를 다시 떠올리며 자신의 결핍과 정직하게 대면한다. 사람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픔을 스스로 마주하고 극복할 때 어른이 된다.

 

싱클레어는 사람들의 이상(理想)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결국 스스로 데미안이 된다.

 

 

[김우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0.0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