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솔’의 음정을 닮은 책, ‘G는 파랑’

글 입력 2023.11.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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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는 파랑_표지_앞표지.jpg

 

 

‘G는 파랑’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오래전 쥐었던 연필의 느낌이 생각났다. 십 년은 족히 넘었을 그 옛날의 느낌이었다.

 

어릴 적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론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시사철 특유의 서늘함이 사라지지 않았던 학원에서 유일하게 따스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을 수 있는 낮은 책상과 의자, 벽면 한쪽을 가득 메운 이론 책들과 교재 가방들. 오래된 눅눅함과 묵은 책 냄새가 가득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론 문제들을 풀 때는 즐거움뿐이었다.

 

두꺼운 도화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듯 유독 빳빳한 교재 종이에 연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답을 써 내려갔다. ‘G’는 ‘솔’의 음이름이다.


‘G’는 파랑이라고 이야기하였으니 음악을 색채에 비유하려나 생각했다. 하지만 ‘G는 파랑’이 이야기하는 것은 음악의 ‘감상법’이었다. 색채에 비유한 설명보다는 조금 더 다채롭게 감상하는 방법을 말해준다. 작가는 직접 경험한 시간을 소개해주거나 음악을 들으며 상상한 장면을 그린다.

 

나는 클래식이나 재즈에 조예가 없다고 할 만큼 그 정도가 깊지 못하다. 몇몇 곡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G는 파랑’에서 다루어지는 작품은 대부분 모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책은 지루하지 않았다. 곡을 알면 바로 그 느낌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는 모두 비슷한 결의 ‘무엇’이었다. 나는 이것을 ‘일상’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삶에서 쉽게 상상해볼 수 있는 장면으로 음악을 소개하고 감상한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진은숙의 피아노 에튜드 5번, 토카타에 관해 이야기한 ‘현대음악’이다.


‘현대음악’에서는 현대음악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현대음악으로 분류되는 진은숙의 음악을 소개한다. ‘예쁘지 않은 소리’, ‘음악은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을 부숴준 친구의 말이 나에게도 와닿았다. 음악은 추상적인 예술이라는 말에도 굉장히 공감하기에 ‘음악은 이래야 한다’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음악은 취향의 차이가 크다. 좋은 음악을 구분하는 것도 본인만의 기준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현대음악을 즐기지 않았던 작가가 이제는 공부하고 좋아하고 있다는 일화가 감명 깊었다. 대중음악 중에서도 Rock 장르는 외면하다시피 굴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곡이기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하지 않고 감상하며 좋아할 수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졌다. 검색해서 직접 들어보니 왜 익숙하지 않다고 말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생경함이 불편하지 않고 설렜다. 어쩌면 작가도 이러한 느낌으로 아름다움을 논한 것일까? 익숙한 것을 좇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익숙지 않은 것에 도전하며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때로는 새로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쓸 때 보통 양쪽 정렬을 하는 편이라 ‘G는 파랑’의 편집이 익숙하지 않았다. 왼쪽 정렬을 한 듯 오른쪽은 문장이 들쑥날쑥한 길이로 정렬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일기처럼 편하게 쓴 글처럼 느껴졌다. 잘 정제되어있는 글이라기보다는 누군가 구전설화를 전해주는 듯 편하고 쉬운 이야기였다. ‘달력 같은 책’이라고 표현한 서평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를 담아낸 듯한 책이자 하루에 하나씩 읽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솔’은 안정적이면서도 가장 예쁜 음이라고 느낀다. 낮지 않지만 지나치게 높지 않은 음정이다. 어쩌면 ‘G는 파랑’은 그러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침 없으면서도 나의 하루와 음악 감상을 조금 더 예쁘게 만들어줄 책. ‘G는 파랑’이 선사하는 다채로움을 오랜 책 냄새 사이에 따뜻하게 간직하고 싶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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