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다를 사랑한 다능인 -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도서]

책으로 체험하는 라울 뒤피 전시회
글 입력 2023.09.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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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 표지.jpg

 

 

‘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화가 라울 뒤피의 일생과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라울 뒤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책을 읽게 된 것은 책 표지의 전체적인 색감과 삽화 때문이었다. 바닷가 풍경과 핑크와 파랑의 조화는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독서 시작의 계기가 뜬금없어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책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적힌 작가의 집필 이유를 읽고 죄책감을 내려놓았다.

 

“습관이다. 유명한 화가에 비해 비교적 저평가된 예술가들을 세상에 더 알리고 싶어 하는 습관. 이 일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고, 잘 해내고 싶다.”

 

세상에 묻혀 있던 귀한 보물을 보기 좋게 세공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이소영 작가. 그는 미술 커뮤니케이터이자 아트 메신저인 다양한 직함을 지니고 있다. 미술 교육인, 작가, 교육기관 대표, 강사. 미술이라는 분야 아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그와 책의 주인공, 라울 뒤피는 닮은 점이 있다.

 

바로 ‘다능인’이라는 것. 피카소, 모네, 고흐와 같은 유명 화가에 비해 라울 뒤피는 우리나라 대중에게 아직은 낯선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화가들은 이름을 대면 딱 떠오르는 명확한 이미지, 화풍이 있지만 라울 뒤피는 여러 미술 사조를 두루 섭렵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화풍을 고집하지 않고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또한 회화, 일러스트, 삽화, 직물 및 패턴 디자인, 벽화, 도예 등 창작물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같은 풍경을 담음 여러 그림이 모두 조금씩 달라 나만의 최애 작품을 꼽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폰트나 본문 배치 등 책의 편집 디자인은 실제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 옆 설명란과 흡사해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닌 라울 뒤피 전시회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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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지닌 라울 뒤피의 작품들은 형식과 느낌이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색감이 모두 강렬하고 다채롭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그림이 끊이지 않게 이어져 눈이 즐거운 미술 작품들을 보고 싶을 때 읽기 좋다.

 

페이지마다 자리한 라울 뒤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남긴 “삶은 내게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삶에 미소 지었다”라는 말이 절로 이해된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격변의 시대 속에 살았음에도 그림 속에 유쾌함과 희망을 담고자 한 그의 노력이 돋보인다.

 

또 다른 키워드를 제시하자면, ‘바다’를 이야기할 수 있다. 모든 작품이 바다와 연관 있지 않으나, 상당수의 작품이 바다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는 그가 태어난 프랑스 유명 항구 도시 르아브르와 레가타(요트 경주)가 열리는 생트-아드레스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라울 뒤피는 생전에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 또는 눈부신 물결의 움직임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호수 정도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강경 바다파의 바다 사랑 면모가 잘 드러나는 말이다. 투명한 물결은 자신의 파랑을 놓치지 않으면서 햇빛이나 우리의 모습을 모두 비춘다. 잔잔히 흐르는 물을 보고 있으면 ‘나’를 잃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존재의 대단함이 느껴진다.

 

저녁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치는 동네 인공 호수 뒤로 노을이 지고 있을 때, 대낮, 쨍쨍한 햇빛에 호수의 윤슬이 반짝반짝 빛날 때. 라울 뒤피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고작 호수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란다.

 

그리고 일 년에 몇 번, 호수의 몇 배가 되는 바다를 마주하게 될 때 더 큰 환희를 느낀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앞에 서면 결코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던 고민도 작아 보인다. 엄청난 크기만큼이나 여러 사람을 불러 모으는 바다에 ‘저 사람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바다에 온 걸까’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마 라울 뒤피도 나와 같은 맥락에서 바다를 사랑해 바다를 예찬하는 그림을 그린 것 아닐까. 실제로 그도 항구에 정박한 배들의 갑판 위에서 늘 살며 화물창에서 새어 나오는 온갖 향기들로 배의 여정을 추측했다고 한다.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 요트 경주 현장, 하늘과 바다의 조화, 항해사 다양한 바다 풍경을 그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좋아하면 닮는다고들 한다. 좋아하는 마음에 대상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게 되고,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대상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라울 뒤피의 다능인 면모는 드넓은 바다와 닮았다.

 

삶의 행복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펼친 라울 뒤피. 작품들과 함께 라울 뒤피의 일생을 접하니 그가 활자에서 튀어나와 3D로 느껴진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전문 용어나 배경지식이 쉽게 쓰여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한 작가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 싶고, 다양한 색감으로 눈이 즐거워지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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