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냥하는 가정교사들

가정교사들_안 세르
글 입력 2023.08.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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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은 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 페니나상, 그리고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 등 많은 상을 받으며 번역 이후 계속되는 찬사를 받은 프랑스 작가 ‘안 세르’의 첫 장편소설이다.

 

<오징어 게임>으로 얼굴을 알린 모델 겸 배우 ‘정호연’을 주연으로 영화화를 계획하고 있고 2년 전 우울한 코로나 시기에 따뜻한 희망을 전달한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가 <가정교사들>의 제작을 맡았다.

 

기존 문학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놓인 여성들을 문체와 단어, 그리고 행동을 통해 능동적인 개척자로 표현한다.


 

“그들은 그를 사랑하게 되리라.

그들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를 증오하게 되리라.

결코 그들 안에서 쉴 수는 없으리라.”

 

 

문체를 보면 고전 작품의 특징이 있는데 “…하리라.”, “…것이라”가 바로 그 예이다. 인물들의 대화보다는 작가의 시선과 묘사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작가가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을 다 아는 듯이 그들의 미래를 점친다. 운명론의 아래에서 인물들은 체스판 위에 있는 말들처럼 그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듯하게 보이지만 작가가 점을 쳤던 미래를 피해 끊임없이 꿈틀댄다. 가정교사들은 운명의 문체를 피해 살아간다.

 

그들은 ‘오스퇴르’라는 한 남성의 집 안에서 그의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지내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가정교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사뭇 다른데, 파티를 좋아하고 욕망을 감추지 않으며 권력을 행사하길 좋아한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시선’에 대한 이들의 태도다.

 

많은 문학에서 남성은 시선을 주고 여성은 그 시선을 받는 존재로 표현된다. <가정교사들>에서도 전통적인 그 시선의 힘이 작용한다. 집 주인 ‘오스퇴르’는 자신이 이 집을 살피며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옆집의 한 노인은 망원경으로 가정교사들을 관찰하며 일종의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가정교사들은 그 시선을 농락한다. 시선이 주는 힘의 방향을 바꿔버린다. 오히려 그 시선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존재를 과시하며 시선의 범주를 오감으로써 그들이 볼 수 없을 때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즉,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몸뚱어리가 아닌 육체 자본으로서 그 힘을 가하며 오늘날의 인터넷 방송처럼 시선의 통제권을 행사한다.

 

 

“그 남자들을 오스퇴르씨와 비교하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다가…

…마치 거대한 죽은 나비들처럼 정원의 철문에 바짝 달라붙는다.”

 

 

가정교사들은 반대로 시선을 주기도 한다. 이들은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데 철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남자들을 관찰한다. 바라보는 능동성은 특정한 단어와 결합되어 표현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뜨거워진다.

 

 

“그는 그들이 쳐놓은 광대하고 황량하고 내밀한 덫에 걸린 것이다.

꿩을 통째로 먹어 치우고…”

 

 

‘사냥’, ‘덫’이라는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들을 이들의 욕망 앞에 넣음으로써 덫을 치고 사냥하러 가는 가정교사들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들의 욕망이 ‘잡아먹다’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 중 ‘식食’, 먹는 행위에 비유되면서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먹는 게 아닌 잡아서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정교사들은 사냥을 통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며 신체를 권력의 도구를 사용하는 등 디오니소스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아폴론적인 이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 계기는 바로 출산이다. 가정교사들 중 ‘로라’는 여성만이 가능한 출산이라는 잉태와 창조로 절제와 질서를 찾는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자 육아를 소홀히 하며 자신에 대한 내적 탐구에 집중하고 머지않아 본래의 그녀로 돌아간다. 시선의 범주를 오가듯 광란과 질서를 오간다.

 

이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로서의 여성상에 한 방을 날린다. 그녀 안에 내재된 욕망과 자아탐구의 욕구도 모성애 못지않게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가정교사라는 아폴론적인 이성이 중요시되는 이들에게 디오니소스적인 태도를 부여한 건 우리 모두 이들과 비슷하게 내면의 무수히 많은 욕망과 자아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란스러움.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을 읽고 나서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가정교사들과 시선을 통한 힘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페이지 끝을 타고 몸으로 흐른다. 어느덧 내 안으로 들어와 나도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나에 대한 가능성을 흔들어 깨운다. 이런 경험이 나름 ‘매혹적’이다. 옮긴이도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일까. 무수히 많은 내가 언젠가 나를 넘으리라. 그리고 세상에 나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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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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