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숄

글 입력 2023.12.0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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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역사, 끝나지 않은 비극


'오헨리 상' 최다 수상 작가

신시아 오직의 대표작 [숄], 국내 초역

 

 

[안네의 일기], [이것이 인간인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의 작품들과 더불어 홀로코스트 문학의 필독서이자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한 신시아 오직의 대표작 [숄](오숙은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연일 계속되며 이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이 지금 이 시각에도 시시각각 우리에게 전해지는 오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 속 참혹한 사건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에 닥쳐 인간의 존재 의미, 인간 조건의 무게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 책에 실린 [숄]과 [로사]는 1980년과 1983년 [뉴요커]지에 각각 발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 모두 최고의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오헨리 상을 수상(1981년과 1984년)했으며, 나중에 한 권으로 묶여 소설집 [숄]로 나오면서 각각의 울림과 무게를 더욱 증폭시켰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숄]은 엽편소설에 가까울 만큼 매우 짧지만 그만큼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이하게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임에도 '나치'나 '수용소' 같은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그 대신 '코트에 꿰매어 단 별'이라든가 '아리아인' 같은 단어에서 이 작품이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행렬과 수용소에서의 참혹한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시적인 문체로 간결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묘파되고 있는 사건은 그 자체로 오래 기억되고 또 널리 회자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뒤이어 이어지는 작품 [로사]는 [숄]의 배경이 된 시대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를 다루는 일종의 후일담으로, [숄]이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비대칭성이 오히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요인이 된다.

 

[숄]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로사 루블린은 강제수용소 경비병이 어린 딸을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30여 년 후 그녀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서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숄'이 있다. 그것은 굶주린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숄, 뜻하지 않게 그 아이를 파멸시키는 숄, 나아가 마법처럼 그 아이를 되살리는 숄이다.

 

 


"댁의 삶이 없다고?"

"도둑들이 빼앗아갔어요."


 

작가 신시아 오직은 유대계 미국인으로 유대인들의 삶의 경험, 홀로코스트와 그 여파 등을 다룬 작품과 에세이, 비평을 발표하며 크게 주목받아왔다.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라 찬사를 보냈으며, "브롱크스의 에밀리 디킨슨" "이 시대의 가장 우아한 문학 스타일리스트"로도 불린다. 특히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로 손꼽히는데 최고의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오헨리 상'의 최다 수상자(총 4회)이자, 2000년에는 에세이 [언쟁과 곤경]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홀로코스트 문학의 경우 대체로 아우슈비츠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거나 유럽 작가 및 지식인의 작품이 주로 소개되고 읽혀온 데 반해 신시아 오직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전쟁의 광기를 직접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존자 중 상당수가 이후 미국에서 생을 꾸려간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 작가의 증언 문학 역시 조명하고 음미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숄]을 읽은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이 작품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믿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는, 오직의 이 작품이 얼마나 강렬하고 생생한지를 말해준다. 창작이 기록 못지않은 진실성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실제로 이 작품은 발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숄]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로사는 어린 딸 마그다를 품에 안은 채 열네 살 조카 스텔라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이다. 극심한 배고픔으로 인해 몸이 너무나 가벼워진 나머지, 그들은 마치 공기 중을 떠다니듯 걷고 있다. 잠깐이라도 행렬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로사에게는 마그다를 빼돌릴 방도가 없었다. 젊은 엄마 로사는 수용소에서 딸 마그다를 숄로 감싸 숨기고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데,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젖 대신 숄을 얌전히 입에 문 채 쉼 없이 빨았고 그 덕분에 울거나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카 스텔라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숄을 가져가는 바람에 마그다는 죽음을 맞이한다. "추웠어요." 스텔라의 대답이었다.

 

[숄]이 이처럼 뼛속까지 추운 지옥에서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면, [로사]는 온몸이 튀겨질 정도로 뜨거운 지옥("플로리다, 왜 플로리다였을까? 왜냐하면 여기 사람들은 이미 태양에 튀겨져, 그녀처럼 껍데기였기 때문이다")을 배경으로 한다.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로사와 스텔라는 미국으로 이주하지만,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스텔라와는 달리 로사는 도무지 적응하지 못한다. 여전히 마그다가 살아 있다고 믿는 로사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텔라의 속물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로사는 미국에서의 삶이 조카의 도움 덕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과거와 단절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스텔라와 달리, 로사의 시간은 여전히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그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지금도 진행 중인 홀로코스트의 시간뿐이다. "'그' 이전은 꿈이에요. '그' 이후는 농담이고.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삶이라 부르는 건 거짓말이에요"라는 로사의 말처럼,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도둑맞았다.

 

우리가 지금, 다시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진실을 읽고 기억하고 새삼 돌이켜보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정하고 비난하거나 피해자에게 현재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참혹한 비극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빼앗고 망가뜨리고 파괴하는지, 그 처절한 고통을 인간의 차원으로 보편화하면서 우리가 이 비극의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게끔 한다.

 

 

 

신시아 오직Cynthia Ozick(1928~ )


 

1928년 미국 뉴욕의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죽인 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돌을 맞은 적도 있다.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소설집 [이교도 랍비와 단편들The Pagan Rabbi and Other Stories]로 에드워드 루이스 월런트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리어 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고, 2000년에는 에세이 [언쟁과 곤경Quarrel & Quandary]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했다. 1997년 에세이 [명성과 어리석음Fame & Folly]이 퓰리처 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2005년에는 소설 [베어 보이The Bear Boy]가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책에 실린 [숄]과 [로사]를 포함해 네 편의 작품이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오헨리 상을 받았으며, 특히 단편 [숄]은 현대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브롱크스의 에밀리 디킨슨' '이 시대의 가장 우아한 문학 스타일리스트'로도 불린다.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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