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괜찮으면서도 안 괜찮은 현재를 즐겨라 - Something About Us 2024

글 입력 2024.07.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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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8일의 하루는 시작부터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독서 모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집에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었다. 차분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지만, 화창한 날씨에 곧 생각이 바뀌었다. 장마 전에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지인이 전에 데려가 줬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갔다.

 

카페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아주 오랜만에 글을 썼다. 쓰려고 계획한 글이 따로 있었지만, 오랜만에 쓰는 글이니만큼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아무런 개요 없이 빈 백지 위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이렇게 첫 문장을 썼다.

 

사는 게 괜찮다.

 

요즘 내 상황은 이상하리만치 괜찮다. 사실 내 삶은 항상 괜찮았는데 하필 지금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어서 기분이 더욱 들뜬 것일지도 모른다. 일이 잘 풀렸든, 여름 날씨 탓이든 중요한 건 요즘은 힘든 순간보다 즐거운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어렵게 찾은 삶의 평화가 무척 소중하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마냥 행복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요즘 내 삶을 괜찮게 만드는 요소를 잔뜩 나열한 뒤 이렇게 문단을 끝맺었다.

 

일단 지금은.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행복을 낯설어하고 불행을 익숙해하는 사람인지. 힘든 상황이 닥치면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확신하면서 행복한 순간에는 언제 끝날지 몰라 초조해한다. 그렇다. 나는 요즘 초조하다. 이 행복을 편하게 즐기지 못한다. 도처에 널린 불행의 시그널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현재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내용의 글을 완성하고 저녁 일정을 소화했다.

 

지인과 밥을 먹으며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귀환했다. 짧은 거리를 산책한 뒤 함께 밴드 공연을 관람하며 완벽한 휴일을 마무리했다. 휴일의 화룡점정을 찍어준 ‘Something About Us 2024’ 공연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사는 게 괜찮든, 괜찮지 않든 지금 나는 행복하구나. 그거면 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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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8일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린 공연 ‘Something About Us 2024’는 밴드 A-FUZZ와 Chihiro Yamazaki+ROUTE14 Band의 라이브 공연이 차례대로 진행된 콜라보 콘서트다.

 

A-FUZZ는 김진이(기타), 송슬기(키보드), 신선미(드럼)으로 구성된 여성 3인조 퓨전재즈 밴드다. 이번 공연에서는 객원 베이시스트가 함께해 더욱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퓨전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낯설어서 어떤 음악이 펼쳐질까 상상이 안 갔는데, 생각보다 친숙한 록 사운드가 강렬하게 들려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A-FUZZ의 공연에서 특히 좋았던 건 밴드에 보컬이 없다는 점이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나는 가사 있는 음악을 들으면 노랫말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편이다(그래서 이동할 때만 음악을 듣는다). 반면 가사가 없는 음악은 비교적 편하게 배경 음악으로 즐길 수 있어 책 읽을 때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인데, A-FUZZ의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는 록 사운드가 펼쳐지는데도 가사가 없어 평온하게 즐길 수 있는 오묘한 감각을 느꼈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생활인 내게는 일상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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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라이브홀에 발을 들이자 잊고 있었던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7년 전 여름, 여섯 팀의 록 밴드가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공연할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펼치는 경연 무대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 공연에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라는 밴드를 처음 만나고 팬을 자처하게 된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7년 전 그날 이후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나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그 긴 시간에도 밴드 공연을 보면 벅차는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실내에서 밴드 공연을 보니 그들의 연주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반가웠다. 드러머가 스틱을 강하게 내려치면 내 심장도 쿵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맞아. 7년 전에 내가 밴드 공연을 보는 걸 좋아했지. 이래서 좋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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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Chihiro Yamazaki+ROUTE 14 Band의 공연이 이어졌다. Chihiro Yamazaki의 트럼펫을 중심으로 Satoshi Yamashita(드럼), Masahiro Misawa(베이스), Hana Takami(키보드), Takayuki Saito(기타)로 구성되어 재즈, 팝, 클래식,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밴드다. 해외 아티스트가 얼마나 만나기 힘든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그들의 내한 공연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밴드에 있어 모든 악기가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해내지만, 이 밴드에선 단연 트럼펫의 존재감이 막강했다. 황홀하게 음악을 감상하다가 Chihiro Yamazaki의 트럼펫 소리가 더해지면 음악에 고전미와 향수가 더해졌다. 살다 보면 문득 ‘지금 이 순간을 나중에 그리워하겠구나’ 깨닫는 때가 있다. 내겐 그들의 음악을 듣는 순간이 그랬다.

 

이 밴드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연주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해 보였다는 것이다. 일적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할 때가 많아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하는 요즘인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어른이 되어도 괜찮을까 싶어 다급해지기도 했다. 꿈에 그리던 안정적인 기반 같은 건 아직도 전혀 닦지 못했는데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내가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초조해하고 자책하는 동안 그들은 뚝심 있게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었다. 그날 처음 만난 연주자들이 모두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밴드에 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대에 선 그 순간에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난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난 이대로 살 것이다. 그래도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 큰 용기를 줬다.

 

황홀했던 공연이 끝나고 지인과 나는 기대 이상의 커다란 힐링을 얻었다며 행복해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숨 가쁜 하루하루를 보냈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내 삶은 앞으로도 괜찮은 날과 괜찮지 않은 날이 뒤엉키며 굴러갈 것이다. 그 속에서 ‘Something About Us 2024’ 공연을 볼 때와 같은 황홀한 순간이 나의 평범한 삶을 빛내줄 것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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