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젊은 안무가 4인이 떠나는 새로운 모험 - 모내기

신진안무가 발굴 육성 페스티벌 '모내기'
글 입력 2024.05.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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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모든 모험은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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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서 변화의 수순을 점진적으로 밟을 때는 기존의 상태를 성실히 보완하면 된다. 그러나 전에 없던 새로움을 쫓는 상황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개척지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본래의 발자취를 참조할 수 없는 난관들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오직 목표하는 바만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담대함과 자기 확신뿐만 아니라, 그 방향을 함께 살피는 지지자의 존재도 필히 갖추어야 한다.


“모든 모험은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든다.” 모든 컴퍼니의 신진 안무가 발굴 육성 페스티벌, ‘모내기' 프로젝트의 슬로건이자 이번 공모의 공통주제다. 이번 무대에서 ‘모험'이란 그저 작품 내적으로 존재하는 가공의 사건만을 칭하지 않고, 작품 외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인의 도전까지도 함께 아우른다. 이렇듯 저마다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모인 안무가들이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모험가라면, 이번 프로젝트는 그들과 발맞추어 동행하는 조력자다.

 


 

"당신의 웃음들은 어디로 갔나요?"


 

공연의 첫 순서, 김도현의 〈바로〉는 건축 설계도를 뜻하는 단어다. 동시에 과거의 시간을 거쳐 존재하게 된 내가 ‘바로'서게 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치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듯, 삶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크고 작은 단계들을 모험에 빗댄다. 도입부에서도 남성의 등에 업힌 한 어린아이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아이가 바라보는 시야 끝에 한 여성이 등장해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고,  뒤따라 나타나는 두 명의 인물이 움직임을 더한다.


이 셋은 스킨톤의 레오타드를 입고 손발에 스타킹을 감싼 차림새다. 스타킹이라는 가변적인 오브제는 마치 물결처럼 유려한 동작들과 어우러져 유연하게 늘어나고 줄어든다. 이를 매개로 각 개인은 유기적으로 얽히며 특정한 형태를 완성하고 즉시 해체되기를 반복한다. 그 가운데 이들과는 달리 일상복을 갖춰입은 남성이 등장한다. 그가 안무가 본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를 ‘주인공'이라 칭해도 될 것 같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3인은 그가 거쳐온 시간의 흐름에서 과거에 해당하는 객체처럼 느껴지게 된다.


주인공은 관객석의 관객 중 한 여성을 무대 위로 초대한다. 그는 여성에게 스타킹을 두르고, 그 끝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동작을 주도한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은 3인의 객체로부터 분리되어, 명확한 현시를 대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3인과 다를 바 없는 복장이 된다. 그리고는 대중가요에 맞춰 자유로운 몸짓으로 독무를 이어간다. 마치 작품의 2막을 여는 듯 강렬한 전환이다. 무대는 주연과 조연의 경계를 흐리고,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흐리며 우리 모두를 주인공의 자리로 초청한다. 더불어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뒤섞으며 매 순간 역동하는 삶의 현장을 무대 위로 옮겨낸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모험이지 않을까?"


 

두 번째 순서는 안무가에 도전하는 7년차 직업무용수, 이예닮이 펼치는 〈주름 속의 집〉이다. 무대 위에는 한 면이 천으로 막힌 정육면체 형태의 구조물이 자리하는데, 이 사물이 '집'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안에 혼자 머물러 있는 한복 차림의 인물 곁으로 또 다른 인물이 종종걸음을 치며 다가온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복장과 머리 모양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은 후에 나타난 인물이 맨 작은 가방뿐이다.


두 인물은 동질성을 띠는 일관된 안무로 함께 협력하다도, 집의 안팎을 두고 몸싸움을 벌이며 거칠게 대척하고, 가방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주연과 조연의 관계를 끊임없이 전복한다. 하나의 자아 속에서 양가적인 감정이 계속해서 대립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가방이라는 사물 역시도 외출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인물에게 닥쳐온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집의 구조 또한 혼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인물은 집을 옮기거나 여러 방향으로 굴리며 형태와 위치를 바꾼다. 천으로 가로막힌 면도 바닥이었다가 벽면이 되고, 또 지붕으로 바뀌며 다양한 기능으로 변주된다. 천을 담벼락 삼아 고개를 내밀고 바깥을 살피고, 한 인물이 집 아래에 깔리거나, 돌연 벽으로 돌격해 집으로부터 분리된 천을 이불처럼 덮고 나란히 눕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말에서 두 인물은 마침내 천장에 가방을 걸고, 가마처럼 집을 어깨에 이고 무대 밖으로 한 발짝씩 걸어나가며 진정한 협동을 이룬다. '집'과 '가방'으로 비유되는 '안주'와 '탈피' 중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패배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움직임은 바닥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나원은 공연장의 주소지를 제목 삼은 이번 작품, 〈마포구 백범로 35〉에서 움직임의 장소가 되는 ‘바닥'을 소재로 힘의 관계를 실험한다. 무대 바닥 위로는 천장에 설치된 구조물로 드리워진 그림자로 수평의 경계가 새겨진다. 두 명의 무용수는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닮은 동작을 일관되게 연속하며 바닥을 탐색한다. 모든 신체가 바닥에 닿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탐구하는 듯한 동작이다.


그러던 중, 이들은 각자의 의상을 벗고 상대방의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바닥이 되어 서로의 몸체를 지지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이전의 동작이 자신과 바닥의 관계만을 탐구했다면, 이제는 저마다의 바닥과의 관계에 서로의 존재를 더해 세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시도한다. 균형잡기를 계속하며 상대와 바닥을 동시에 지탱하며, 일상적 움직임이 아닌 춤이라는 움직임에서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바닥의 물성을 거듭 실험한다.

 

이내 그림자가 만들어낸 경계선은 사라지고, 다시금 서로로부터 떨어져 이제는 각자만의 동작을 거듭한다. 어떤 한 명이 동작 중인 나머지 한 명을 가만히 응시하기도 하고, 처음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느린 속도로 바닥을 쓸고 온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중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늘 바닥과 긴밀히 접촉된 채 살아가지만, 일상에서는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이 광대한 매개체를 이들은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나아가 바닥이라는 지면을 평생 공유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관계를 고찰하며, 공간과 신체를 매개하는 바닥의 또 다른 얼굴을 고민하는 듯하다.

 

 

 

"우리는 커다란 동물원에 살고 있습니다."


 

윤희섭은 현대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동물원에 비유한다. 이번 작품 〈동물원〉의 도입부에서, 그는 최근 SNS를 떠도는 유명 챌린지,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를 리믹스한 음악에 맞춰 독무를 춘다. 하지만 이내 동물로 분한 무용수들이 관객석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이전의 공기를 깨뜨리며 무대 위를 점령하고는 정글을 연상케 하는 야성적인 군무로 다채로운 동물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리고 챌린지 댄스 이후로 잠깐 퇴장했던 안무가가 무대 위로 등장해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고, 관객에게 하모니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객석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무용수의 동작에 맞추어 화음을 내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현장의 사운드에 발맞추어 무용수들은 나머지 공연을 완성해 간다. 전체를 통해 조화를 이뤘던 직전의 군무와는 달리, 각자의 스포트라이트 안에서 통일된 안무를 일제히 선보인다.

 

이 무대는 SNS 등의 채널로 상대를 관찰하거나 스스로 관조의 대상이 되는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뉘앙스가 비판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신선하다. 서로가 서로를 응시한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듯 자유로운 움직임 덕분이다. 관객과의 협업에서도 우리 시대의 양상 속 암보다는 명에 주목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발견하고 모두의 하나됨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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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협업의 일부로서의 안무가 아닌 오로지 안무만을 위한 무대라는 점에서 유독 특별하다. 또한 신작을 공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단순한 일회성의 행사로 치부할 수 없다. 태중의 상태와도 같은 구상 단계의 작품이 비로소 실체를 획득하는 현장으로, 이번과 같은 무대는 특히나 젊은 아티스트에게는 자신의 방향성을 공고히 선포하는 중대한 시작이 된다. 그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이번 프로젝트가 각자의 출발선에서 뜻깊은 사건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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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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