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지(未知)’에서 싹튼 공포 – 실종법칙 [공연]

내가 알던 ‘너’가 실종되었다
글 입력 2024.04.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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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불안은 '미지(未知)'에서 온다. 낯설고 알 수 없는 감각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보고 있는 ’너‘가 진짜 ‘너’일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가 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신뢰는 관계를 지속하는 토대가 되며 이것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공포가 되어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계는 거침없이 무너져 내린다.


특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일수록, 익숙하다고 생각한 공간일수록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때, 공포는 더욱 그 몸집을 불리며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누군가가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미처 알아채지 못한 악의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공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도 이어지기에 더욱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실종은 ‘미지’ 그 자체인 사건이다. 어떠한 전말도 명확히 알 수 없는 부재(不在) 속에서 인간은 불확실한 정보에 상상을 더해 공포를 증폭시킨다. 또한 만약 실종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정보를 마주하거나, 그동안 당연하게 믿고 있던 것들과 맞지 않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충격과 혼란스러움은 더욱 큰 공포로 이어질 것이다.

 

 

 

미지(未知)에서 싹튼 공포 : 연극 <실종법칙>을 통해 생각해 본 생존과 실종의 법칙


 

실종법칙 포스터.jpg

 

 

연극 <실종법칙>은 이렇게 뜻밖의 미지를 마주할 때 다가오는 공포를, 애인과 동생의 실종이라는 상황을 마주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극은 ‘유영’이 동생 ‘유진’의 행방을 찾아 동생의 애인인 ‘민우’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은 서로가 알고 있는 각기 다른 정보를 공유하며 유진이 실종된 전말을 밝히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 유영은 민우의 치부를, 민우는 유영의 악의(惡意)를 들추며 서로를 의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우와 유영은 애써 외면했던, 혹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각자가 믿고 있던 사람들의 전혀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둘에게 유진의 실종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믿었던 누군가의 실종이자, 오랜 관계 속에서 인지하고 쌓아온 모든 사실과 믿음의 실종이었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안정과 안전의 실종이기도 했다.


실종의 반대편에서는 그 반대급부처럼 악의와 기만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에게 유진의 실종과 그것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동안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 온, 어쩌면 스스로도 외면해 온 자신과 타인의 악의와 기만을 마주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관객들 역시 극이 진행되는 동안 두 인물의 대사를 통해 유영과 민우가 어떤 사람인지, 또 무대 위에 있지 않은 유진이 어떤 인물인지, 끊임없이 그 판단을 바꿔가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이 흔들리고 바뀌는 모든 순간순간은 관객들에게도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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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포는 실제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불안과 내면의 공포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누군가를 믿고 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알던 그 사람과 타인이 아는 그 사람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악의와 기만에서 기인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일수도, 그것을 인지하든 못하든 누군가에 대한 악의와 기만의 마음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판단하고, 자신과 타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악의를 꿰뚫어 보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 이러한 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이를 어떻게 잘 관리하고 제대로 마주하며 살아갈지는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미지’의 영역에 놓일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우리의 불안과 공포는, 우리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경계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이는 오랜 시간과 경험에만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대로 마주해야 소중한 사람과 관계를, 더 나아가 스스로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것이 어쩌면 자기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생존과 실종의 법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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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극 안에서는 ‘실종법칙’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을 보면서 이 극이 장르의 문법에 따라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 자체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내면의 공포가 어디에서 오는지, 부재와 미지, 기만과 배신, 편견과 악의 등 수많은 것들을 포함할 수 있는 그 답을 ‘실종’이라는 소재로 풀어간다.


그래서인지 연출의 측면에서도 관객들의 심리가 극을 통해 어떻게 이끌려 갈지를 디테일하게 신경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이어지는 두 인물의 구도 안에서 변주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를 더 섬세하고 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조명과 음향은 관객들이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순간에 철저히 계산되어 사용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존재감이 컸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극에 몰입감을 더했다.

 

다만 두 인물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다듬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편견에 의해 생기는 맹목적인 공포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 보았지만, 불만 섞인 짧은 대사들과 이를 맞받아치는 감정적인 태도만으로는 그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기도, 극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도 어려워 보였다.


미지에서 싹튼 공포가 편견과도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것에는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상 그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피상적이고 감정적인 짧은 대화만으로 이를 들춰내는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비판보다는 조롱일 될 위험이 있다.


드러나 있는 통계를 어떻게 해석할지, 당사자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어떠한지, 그 뒤의 구조적인 배경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논의해 보지 않은 채 편견에 기인한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작업이 극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고,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결국 극 안이 아닌 극 밖에 있는 우리의 몫이다.


편견이 공포가 되고, 그 공포가 혐오가 되고, 혐오가 다시 편견을 재생산하는 분명한 지점은 모호하지만, 그것은 현상으로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것의 합리성이나 정당함과는 별개로 맹목적인 공포를 그저 말도 안되는 것이라 치부하고 넘겨버리거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도, 그저 인간의 선함을 기대하며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도 이러한 공포를 마주하는 건강한 자세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공포를 제대로 마주하고 해석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실제로 그러한 공포와 공포가 만들어내는 위협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공포라는 감정을 제대로 다루고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연극 <실종법칙>이 스스로의 내면에 있는 공포라는 감정과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포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 미지에서 비롯되는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자기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스스로가 되기를, 이러한 공포를 제대로 마주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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