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소현'의 마리 퀴리 [공연]

뮤지컬 <마리 퀴리>
글 입력 2024.02.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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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주)라이브

 

 

뮤지컬 <마리 퀴리>는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일대기에 주목하면서도 루벤 뒤퐁과 안느 코발스키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동시에 라듐의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최초로 노벨상을 2회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인 만큼 그녀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역사극 또는 다큐멘터리 극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상 인물인 안느는 이 작품을 역사극 또는 다큐멘터리 극 성격에서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마리 퀴리의 원래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폴란드의 여성 과학자가 프랑스 소로본 대학에 와서 겪는 차별과 여러 어려움, 그리고 원소의 발견을 통해 이러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스스로를 당당히 빛내며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마리의 여정이 그려진다. 마리는 주기율표의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채우고자 하는 꿈을 꾼다. 한편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폴란드인인 안느는 마리의 꿈을 응원해 주는 인물이자, 과학자인 마리와는 다소 대척점에 서 있는 직공의 신분을 가진 인물이다. 


수많은 실패 끝에 마리는 새로운 원소 라듐을 발견하고, 라듐은 곧이어 모든 물품에 사용되며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신적인 물질이 된다. 그러던 중 마리는 피에르 퀴리와 함께 라듐이 암을 치료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내고 이를 위해 임상실험을 시도하며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라듐이 내뿜는 막강한 방사능 에너지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된 라듐 공장의 직공들은 매독에 걸려 사망했다는 오명을 쓰며 하나둘 죽어갔고, 안느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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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와 직공들의 모습 © (주)라이브

 

 

이렇게 작품은 마리와 안느로 나누어 라듐의 명암을 동시에 조명한다. 마리는 라듐의 순기능을, 안느는 라듐의 역기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단순히 마리 퀴리의 연구가 낳은 선한 측면만 조명하지 않으며, 악한 측면 또한 함께 다루어 마리 퀴리라는 인물을 단순히 우상화하지 않는다. 동시에 끊임없는 실패와 인내, 그리고 차별로 인한 슬픔, 아버지와 남편 피에르 퀴리의 죽음을 겪는 마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은 ‘과학자이자 위인’ 마리 퀴리보다는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정체성을 정립한 한 인간’으로서의 마리 퀴리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러한 마리 퀴리의 모습은 음악의 리프라이즈를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넘버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들의 지도> 등과 같은 리프라이즈 넘버와 멜로디를 통해 변해가는 마리 퀴리의 모습과 라듐으로 인해 변해가는 세상과 마리와 안느의 관계를 강조한다. 더불어 직공들에게 부여된 합창곡에 코믹 릴리프의 기능을 부여함과 동시에 작품의 넘버 중 가장 비극적인 멜로디를 부여함으로써 계속해서 마리의 넘버와 대조시킨다. 마리의 음악이 가라앉을 때면, 직공들의 멜로디는 밝아지는 반면, 마리의 음악이 희망에 가득 찬 순간에는 직공들의 음악은 슬픔과 비극으로 가득 찬다. 이렇게 음악은 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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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퀴리 役 뮤지컬 배우 김소현 © (주)라이브

 

 

이번 2024년 공연(3연)에는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김소현 배우가 마리 퀴리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뮤지컬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음역과 음색에 따라 배역이 나눠지는 음악극이다. 그렇기에 대체적으로 각 뮤지컬 배우의 이미지는 거의 고착화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으로 데뷔한 김소현 배우는 일명 ‘공주 전문 배우’로 일컬어졌으며, 출산 이후에도 복귀작인 뮤지컬 <엘리자벳> 엘리자벳 役을 시작으로 <안나 카레리나>에서 안나 카레리나 役,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役, <모차르트>에서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役 등을 맡으며 대체로 순수하면서도 고귀한 신분의 역할을 해왔다. 


마리 퀴리와 같이 주체적이고 무언가를 탐욕(탐구)하는 인물에는 강하고 다소 굵은 보이스를 가진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왔다. 지금까지 마리 퀴리 역을 맡은 배우를 살펴보면 김소향, 옥주현, 정인지, 리사가 있으며, 이 배우들은 모두 파워풀한 소리를 가진 배우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소현 배우의 마리 퀴리 도전은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으며, 새로운 것이었다. 김소현 배우의 목소리가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녀가 어떻게 마리 퀴리를 표현해 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김소현 배우의 마리 퀴리는 새로운 마리 퀴리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음악과 연기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그의 마리 퀴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지금까지 대체로 성악적 발성을 사용하던 김소현은 안정적인 진성 발성을 대체로 사용하면서 기존의 아름답고 따뜻한 목소리에 당당함과 당돌함,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를 덧붙였다. 김소현은 다른 배우처럼 강하고 파워풀한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단단한 음성을 기반으로, 가녀림 속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탄생한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은 부드러움 강인함으로 무장한 채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강하지만 따뜻함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가 만들어낸 마리 퀴리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고, 그것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마리 퀴리처럼 인류의 빛나는 훌륭한 업적이 아니어도 말이다. 실패 앞에서도 슬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다시 시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힘들었던 한때가 자연스레 떠오르며 과거의 실패와 좌절로 인한 상처를 치유받는다.


이 작품이 창작 뮤지컬 작품 중 특별한 이유는 여성 과학자의 삶을 다뤘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한다. 미투 운동 시작을 기점으로 하여 뮤지컬계에서는 여성을 타이틀로 한 작품이나, 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의 직업이 대부분이 예술가, 그리고 작가에 국한되어 있다.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 록, 힙합 등의 강한 음악을 사용하고, 노래를 부르는 여성의 모습은 디바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강한 여성은 외면적으로 강하게 표현되는 여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프라노의 순수한 음색에서도 강함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머지않은 시일에 다양한 여성 인물을, 그리고 다양한 음색을 가진 멋진 여성 인물을 다양한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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