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타인을 수용하는 인터뷰어

성실하고도 단단한 인터뷰어, 김재훈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3.11.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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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나는 내가 인터뷰어로서 진행한 인터뷰의 서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의 의미일 수도 있고, 내면에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 찬 사람일 수도 있다. 겉으로 내뱉든, 속으로 삼키든 세상과 문화예술에 대해 쉴 새 없이 생각이 떠오르고 그래서 할 말도 많은 사람들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재훈 에디터의 글은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나처럼 내 안에 쌓인 얘기를 꺼내는 데 집중한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글이었다.

 

공식 오프라인 행사에서 만난 그는 ‘조용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말 많은 나와 반대로 말하기보다는 듣는 게 더 편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얼마 뒤 별생각 없이 그가 인터뷰어로서 작성한 ‘Project 당신’ 인터뷰 기사를 읽고 오프라인 만남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이가 하는 말에 진심으로 흥미로워하는 그의 모습이 활자를 타고 생생하게 전달됐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인터뷰를 좋아할 수 있을까?’

 

한때 나도 인터뷰어로서 인터뷰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쉽게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건네는 재밌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턴가 남의 말을 듣는 데 피로를 느끼고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만 급급해졌다. 인터뷰어가 천직인 듯한 그를 인터뷰하며 묻고 싶었다.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재밌게 들을 수 있냐고.

 

2023년 10월 14일, 홍대의 한 한적한 카페에서 나는 벼르던 질문을 꺼냈고 아주 성실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긴 시간 이어진 인터뷰에서 나는 기대한 답변 이상으로 많은 말을 들었다. 그 많은 말에서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는 속성 자체가 그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말해주는 지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인터뷰는 그 깨달음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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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김재훈 (이하 모든 사진 동일)

 

 

올해 초에 출간된 아트인사이트 인터뷰집에서 본인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마스크’를 꼽으셨어요. 이제 마스크를 거의 안 쓰는 분위기잖아요. 아쉽진 않으세요?

 

아쉬워요. (웃음) 사실 전 코로나 이전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썼거든요. 그럴 때마다 편하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분명 미세먼지로부터 날 보호하려고 쓴 건데 다른 의미로도 보호받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남들에게 나를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편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다들 안 쓰다 보니 아쉽긴 해요. 그래도 전보단 저를 드러내는 것에 망설이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사실 마스크를 안 쓴 게 원래 우리의 얼굴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잖아요. 마스크가 편하긴 하지만 코로나로 달라졌던 일상이 제자리를 찾는 건 반가운 일이고, 저도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표정을 확인하는 게 더 편하다 보니 수월하게 마스크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재훈 님은 인터뷰라는 매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요. 인터뷰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오래전에 사라져가는 철길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봤었어요. 주제 자체에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 저도 슬픈 마음으로 봤는데, 그 다큐멘터리의 PD님이 진행하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철길 위의 사람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세요?’, ‘어떤 게 가장 재밌으세요?’ 아니면 ‘지금 이 풍경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런 식으로 안부 묻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하시는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니까 오히려 더 울컥하더라고요.

 

그때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도 저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는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면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해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인터뷰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다큐멘터리가 먼저고 인터뷰가 2순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인터뷰가 우선순위에 오르게 됐어요. 그 이후로도 비슷한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봤어요. 물론 다 좋긴 했는데 맨 처음 봤던 그 다큐멘터리 이상의 감동을 주는 작품은 없더라고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찾아봐요.

 

 

인터뷰라는 게 매체마다 성격이 다 다르잖아요. 어느 매체에 나오냐에 따라 홍보 목적의 인터뷰인지, 정보 제공 목적의 인터뷰인지 갈라지죠. 재훈 님도 인터뷰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를 찾아보셨을 텐데 딱 다큐멘터리에서의 인터뷰가 결이 맞는다고 느끼신 건가요?

 

네. 그런 인터뷰 형식이 저의 본질적인 성격과도 맞는다고 느꼈어요. 저는 좀 잔잔하고 차분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그때 본 인터뷰가 제 이상에 딱 맞는 모습이었거든요. 다른 홍보성 인터뷰도 몇 번 경험해 봤는데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담담하게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예요. 고민이 되는 건 이런 식의 인터뷰는 홍보 목적이 아니다 보니까 자기만족으로 그칠 때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그런 인터뷰만 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자기만족에 치우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만한 요소를 가미한 균형 잡힌 인터뷰 방식은 없을까 생각하긴 해요.

 

 

일상 대화와 달리 바로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특징 때문에 더 인터뷰를 좋아한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사실 저는 평소에도 말이 워낙 많고, 친구들과도 인터뷰 같은 대화를 많이 나누거든요. 재훈 님에게는 인터뷰와 대화가 어떤 점이 그렇게 다른지 궁금해요.

 

사실 저도 친구들과는 진지한 얘기를 많이 나눠요. 그런데 인터뷰는 그 자체로 명분이 있으니까 좀 더 쉽게 본질에 파고들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인터뷰와 대화가 명확히 구분된다기보다는 인터뷰가 본질에 파고드는 걸 조금 더 가속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진지하거나 깊은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죠. 친구와의 대화보다 처음 보는 사람에 한해서 더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라는 명분 없이 낯선 사람에게 인생관 같은 걸 물어볼 순 없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인터뷰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정말 까다로운 인터뷰이를 만날 때가 있잖아요. 인터뷰이에게 풍성한 대답을 끌어내는 재훈 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일단 저는 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말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쿠션 멘트를 많이 깔아두죠. 우선 가벼운 질문을 많이 던지다가 상대가 어떤 얘기를 했을 때 그 대답 하나를 깊은 얘기로 연결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요. 예를 들어 날씨 얘기처럼 무난한 주제로 겉도는 듯이 시작하다가 상대방이 알게 모르게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게끔 접근해요. 어려운 방법이긴 한데 그런 식으로 계속 파고들면 말을 망설이시는 분들도 수월하게 대답하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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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인터뷰한 글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건강하게 삶을 꾸려나가야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내용을 담으셨어요. 그게 2년 전 글이었는데, 그때 말한 그 태도를 지금도 유지하고 계세요?

 

지금은 조금 흐트러지긴 했어요. 그래도 자신을 잘 통제하면서 사는 삶이 여전히 제게는 무척 아름다운 삶으로 여겨져요. 끼니 잘 챙겨 먹고, 운동 꾸준히 다니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이런 게 어떻게 보면 정말 철저한 자기 통제에서 나오는 루틴이잖아요. 그 인터뷰를 작성했을 당시 자신을 통제하는 게 정말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나가는 제 모습에서 쾌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땐 저 자신한테만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전처럼 잘 통제하고 있진 못하고 있어요. 저 개인의 삶을 넘어 제 주변의 것도 온전히 관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나가는 게 지금의 제 목표인 것 같아요.

 

 

클래식 공연에 관해 쓰신 리뷰를 보니까 피아노 연주까지 해보셨을 만큼 클래식을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인터뷰를 통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또 그 사람의 말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는, 굉장히 언어 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언어가 없는 음악을 좋아하시는 점이 흥미로워요.

  

생각이 많은 편이라 굳이 외부에서 다른 생각을 주입받고 혼란스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언어가 없는 음악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주고받는 말은 그런 외부 소음과 전혀 다른 결이에요. 음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인터뷰는 일대일의 관계에서 이뤄지잖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면 ‘이 사람의 얘기를 내가 다른 포맷으로 녹여낼 수 있겠다’라거나 ‘이 사람이 하는 얘기는 지금 나만 들을 수 있어’와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질문하느냐에 따라 이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도 있는 거고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듣는 것과 나 한 사람을 향해 전해주는 말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언어 행위죠.

 

 

재훈 님의 글에서도 본인을 두고 생각이 많다고 묘사하는 부분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자아 성찰도 자주 하신다고요. 저도 생각이 많고 자아 성찰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거든요. 재훈 님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었나요?

 

저도 의심의 과정을 항상 겪는 편이에요. 다만 어느 순간부터 불필요한 자기검열이 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의식적으로 저를 풀어주려고 노력해요. 그 수단으로 글도 쓰고 문화예술도 향유하게 되면서 차츰차츰 자기검열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이 정도까지는 도의적으로 어긋나지 않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조금씩 놓아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같은 글에서 나에 대해 만족하지만 동시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셨어요. 그 글을 쓰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 지금도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나요?

 

지금도 여전해요. 그때 글을 그렇게 썼던 이유는 제가 저한테 만족하면 그 상태에 안주할 것 같아서였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만족이 너무 없으면 자기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게 되잖아요. 양극단의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저를 수용하되 수용하지 않는, 거부하되 거부하지 않는 식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많이 써요. 한평생 제 몸과 정신을 이끌고 살아야 하는데 나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거기서 오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거예요. 그럴 바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끔 노력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무척 공감되는 얘기에요. 저도 최근에야 제가 저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못난 저를 견디며 살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저를 받아들이고 수시로 찾아오는 자기혐오를 해소해요. 재훈 님은 저와 달리 글에서 본인을 전면으로 내세우시지 않는데, 재훈 님에게도 글쓰기가 저처럼 어떤 표출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문득 내가 나를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들여다보면 분명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이 보일 거예요. 그럴 때 나는 왜 이런 장점을 갖지 못했냐며 스스로 다그치기보다는 나란 사람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없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사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였던 것 같아요.

 

 

본인의 한계를 인정하니까 그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에 대해 열등감이나 거부감 같은 게 없는 거군요. 생각해 보면 저도 제가 저를 미워할 때 피해의식 때문에 남의 말을 쉽게 왜곡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인터뷰이의 말에 대해서 크게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때에 따라서는 해석이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저는 순전히 관찰자로서 들으려고 해요. 저의 과도한 해석이 개입되면 인터뷰이는 제 눈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규정되잖아요. 그러면 인터뷰에 그 사람이 온전히 드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타인을 편견 없이 그대로 묘사하는 게 의식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평소에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색안경 쓰고 판단하는 태도를 지양하시는 건가요?

 

그런 편이에요. 사람들이 자기랑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의 말을 들으면 반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적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나랑 생각이 달라도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 나랑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생각이 항상 같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고요. 저를 공격하려고 한 말인데도 그 의도를 못 알아차리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그럴 땐 나만의 고집이 있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여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편견이 없는 것과 주관이 없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재훈 님은 편견이 없을 뿐이지 본인의 주관은 확실한데 그걸 굳이 남한테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혐오가 만연한 모습이 아주 안타까워요. 충분히 협력하면서 잘 살 수 있는데 상대를 자신의 색으로만 물들이려고 하는 게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런 폭력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남한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다 입체적인 존재인데 납작한 시선으로 대상화하는 게 현재 혐오 사회의 문제점이잖아요. 사실 알고 보면 다 똑같은 사람이고,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의 경우에도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다 있거든요. 근데 점점 사람들은 서로를 그렇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니까, 그런 부분이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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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E’이라는 공연의 리뷰에서 ‘무용한 시도 끝에 얻은 결핍의 본질에 대한 직시는 결코 무용하지 않다.’라는 문장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을 알려는 시도는 어떤 결과를 갖든 무용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 문장을 썼어요. 설령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결심했다는 것 자체가 개인에게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그 결심 하나로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시간들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니까요.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서 깨달음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게 공연의 전반적인 흐름이었는데, 덕분에 제 결핍을 들여다보게 돼서 공연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그 마음을 표현하려다 보니 그런 문장이 나왔던 것 같아요.

 

 

확실히 ‘HOLE’ 리뷰는 재훈 님의 다른 리뷰와는 결이 달랐어요. 기존의 리뷰는 작품을 충실히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면, 해당 리뷰는 추상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제 상황을 대입해서 쓰다 보니까 조금 다른 글이 완성된 것 같아요. 저도 제 결핍 때문에 저를 미워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방금 얘기했던 것처럼 이 결핍도 평생 지니고 가야 할 제 모습이란 말이죠. 이걸 미워하면 내 인생, 내 안의 모든 것이 미움으로 가득 차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결핍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패배하는 과정이에요. 나의 못난 모습을 확인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이 패배가 곧 승리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나를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그렇게 관점을 바꾸면서 점차 저의 결핍을 긍정하게 된 것 같아요.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네요. 인터뷰집에서 좋은 콘텐츠란 건강하고 따스한 내용을 담은 콘텐츠라고 말씀하셨는데, 재훈 님의 글도 그런 방향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쉽지는 않은 것 같지만요. 제가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남들도 그걸 건강하게 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다만 절망을 누적해서 결핍을 긍정했듯이 좋은 콘텐츠라는 것도 그걸 만드는 과정에선 절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누적되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모르게 제가 바라는 방향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죠.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재훈 님이 올해 초 인터뷰에서 2022년은 이해할 수 없었던 혼란이 많았던 해였고, 2023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벌써 2023년도 회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꽤 지났는데, 재훈 님에게 2023년은 어떤 해였나요?

 

작년 한 해가 심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면 올해는 그 혼란이 많이 해소된 것 같아요. 내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다져놓은 것들을 발판 삼아서 뛰어보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태까지는 어떤 신발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열심히 고른 신발을 신고 뛰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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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 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만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법. 어쩌면 내 선입견으로 섣불리 이상화한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나의 걱정이 기우인 것으로 밝혀져 행복했다. 재훈 님은 자신의 글을 그대로 닮았다. 아니, 글에서 드러난 것보다도 더 많은 훌륭한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나의 치열한 현실을 살아갔다.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를 통과하면서 늘 그래왔듯이 나는 또 사소한 이유로 내가 끔찍하게 싫어졌다.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운 나는 재훈 님과 주고받은 대화의 녹음본을 잠깐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어떤 해답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척박한 나의 일상에도 이런 가뭄의 단비 같은 대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 사실만으로 나에게는 위안이었다.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서 이 인터뷰를 시작했다. 몇 시간에 걸친 성실한 답변을 듣고 나는 그가 지금처럼 인터뷰를 즐기기 위해 얼마나 고된 사투 끝에 단단한 내면을 다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 재훈 님이 담담하게 전한 삶의 태도는 살면서 문득 떠오르곤 했다. 많은 말이 주옥같았지만 타인의 말을 과대 해석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 이상으로 남의 반응에 신경 쓰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 정말 질 좋은 대화를 나누면 그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내겐 10월의 홍대에서 재훈 님과 주고받은 대화가 그랬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가진 것 이상으로 과시하는 이 세상에서 묵묵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은 타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흥미로워하는 인터뷰어가 있다. 이런 인터뷰어의 존재 덕분에 우리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도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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