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상실이 품은 사랑의 도전과 용기 - 사랑하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3.05.2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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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그 말 자체로 의미가 넘치지만 가끔은 진부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과 연극, 회화 등 세상을 담은 예술 안에는 사랑이 충분히 넘치며, 충분하기에 사랑에 있어 새로움을 찾기엔 어렵다.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랑이 넘쳐서 나쁠 건 없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사랑에 있어 절대역치가 높은 나에게 한 영화가 찾아왔다. 바로 제75회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 ‘사랑하는 당신에게’이다. 제목에서만 느껴지는 사랑에 기대가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꾸미지 않은 순수한 사랑을 봤을 때,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나를 봤다. 사랑에 있어 새로움이 크게 중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따뜻함이 담겨있는 미소처럼 사랑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기보다는 일상에 스며들 때 더 짙어지는 것 같다.

 

영화는 아내를 잃은 후, 그 상실과 아픔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도전은 떠난 아내와의 약속으로 이뤄진다.

 

이미 나이가 많고 주름이 늘어난 주인공 ‘제르맹’이지만 아내와의 약속으로 현대 무용을 시작한다. 비록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약속을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사랑을 맹세하는 전사의 모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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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사랑이 사랑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에서 등장하는 사랑엔 항상 슬픔과 상실이 있다. 슬픔과 상실이 사랑으로 승화되며 다시 그 사랑은 그리움을 불러낸다. 사랑과 상실이 오고 가며 인생의 수많은 굴곡 사이에 껴 있는 사랑을 캐냈을 때의 행복함을 표현한다.

 

사랑에 있어 매개체의 역할도 이 영화에서 크게 작용한다. 떠나간 사람과 남은 사람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데 영화는 편지로 ‘제르맹’과 그의 아내를 연결한다. 편지는 시간 중 과거를 가장 잘 담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와 진심은 더 커진다. 아내가 남긴 마음과 진심이 시간 여행을 하며 그에게 정착했을 때 느껴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편지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면에서 영화 ‘업’이 생각났다. 떠나간 아내의 모험 앨범 마지막 끝자락에서 발견한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 새로운 여행을 하세요.’ 모험과 여행은 엄연히 다르다. 모험은 여행보다 더 예측 불가능하며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아내의 ‘모험’ 책에는 남편과의 모든 순간을 모험이 아닌 ‘여행’으로 적었다. 그리고 남은 남편의 새로운 여행을 응원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도 이와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속,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은 여행을 떠날 용기를 주기도 한다. ‘제르맹’은 여행 가방을 짊어 맨 셈이다. 물론 모험만큼 여행도 예측하기 어렵고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이 또한 도전과 약속이라는 맹세 아래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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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도 마음에 들었다. 가족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예측해 가족 몰래 현대 무용을 배우는 것을 숨기는 ‘제르맹’과 그것을 의심하고 걱정하는 가족들 사이의 오해는 소소한 웃음을 일으킨다. 가까운 관계지만 이들은 비밀을 만든다. 하지만 그 비밀도 결국 걱정과 사랑에서 기인한다. 모든 것을 보여주고 증명해야만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이가 든 만큼 든 그이며 현대 무용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당연히 실력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안무가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을 무렵에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안무를 새롭게 짠다. 너무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도전과 여행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는 점이 따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와 비슷하다. 기존 사랑에 있어 특별하고 새로운 걸 기대했다면 영화에 대한 나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순수하고 본질적인 의미를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관한 작품은 넘쳐나지만 정작 최근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해본 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모든 관계에서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게 한 사람의 용기가, 도전이,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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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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