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조각가'를 생각하면 미켈란젤로 또는 로댕을 떠올릴 것이다. 세기의 역작인 피에타와 생각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이들에게는 아니지만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조각가들이 있다. 바로 '분자 조각가들'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분자 조각가'는 약을 만드는 화학자(의약화학자)를 의미하며, 이들은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크와 시약을 가지고 실험대 앞에 서며 하루하루 열심히 다듬는다. 이들이 만들어 낸 약은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도 한 획을 긋는 약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작은 알약 하나가 우리의 몸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아프면 약을 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 이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먹는 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처방받아 먹는 약은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을까? 당연하게 여겨지던 약에 대한 질문이 생기니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번진다.
질문의 답은 분자 조각가 중 한 명인 백승만 박사가 지금까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분자 조각가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도서 <분자 조각가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분자 조각가들>은 총 6장에 걸쳐 약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1. 운으로 찾아내다 - 1장은 타이레놀과 페니실린, 디곡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약들의 공통점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우연한 기회가 마냥 운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화학자가 신약을 만들기 위해 실험대에서 화합물과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정말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그들의 연구를 성공작으로 만들어준다. 지금은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원래의 뜻은 '오랜 준비 끝에 찾아온 행운'을 뜻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단어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2. 자연을 모방하다 - 가장 초기에 나온 약이 운에서 찾아냈다면, 그 이후에는 식물과 동물에서 방법을 찾았다. 약이 있기 전, 사람들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자연에서 방법을 찾았고, 이미 사람에게 투여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생약제는 소중한 데이터가 되었다. 화학자들은 식물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내는 물질에 주목해 답을 찾았고, 이후엔 동물에서 답을 찾았다. 2장에서는 양귀비 열매즙을 채집해서 건조한 추출물인 아편과 그 주성분인 모르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또한 주목 껍질에서 찾아낸 항암 대표물질인 탁솔과 양의 장기에서 찾아낸 아드레날린 외에 뱀과 독도마뱀에서 출발한 당뇨와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자연에서 약의 성분을 찾아낸다는 것 외에도 연구용으로 소량 확보하는 것과 전 세계에 공급하기 위해 대량 생산하는 것이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왜 뉴스에서는 연구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들려오는데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잊힌다거나 치료에 적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는 파트였다.
3. 사람을 연구하다 - 자연을 모방하여 약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궁금증이 따라온다. '사람은 식물도 아니고 개나 소가 아니기에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사람 몸에서 나오는 물질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3장은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하듯 사람을 연구하여 만들어진 항암제, 에이즈 치료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4. 물질을 창조하다 - 3장까지는 자연에서 유래한 물질(천연물)을 조각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엔 화학자들이 처음부터 창조한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학자들이 창조한 화합물은 천연물과는 달리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리고 이 케이스의 대표주자로 수면제를 꼽을 수 있으며, 4장에서는 수면제의 탄생배경부터 부작용, 전쟁에 사용된 방법, 구조를 변경하며 만들어진 위험물질 등과 같이 수면제의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후 5장과 6장은 지금은 어떻게 약을 만드는지, mRNA와 분자조각의 미래를 다룬다. 4장까지의 이야기가 스토리 위주의 내용이라면, 5장과 6장은 보다 본격적인 분자 조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전히 화학은 어렵고, 화학구조는 보아도 '이게 화학 구조구나'하고 넘기지만 책에서는 화학구조의 귀여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분자 조각가들이 만든 물질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에 직접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실제로 이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더라도 분자 조각 그 자체를 보여주는 화합물 '나노키드'는 이름만 들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화학에 잠시나마 유쾌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실제로 이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수업 중 분위기 전환용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 전공이야기보다는 이런 귀여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화학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도 모두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친절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일요일 아침 MBC에서 반영되는 '서프라이즈'를 시청하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문과 출신인 필자도 큰 어려움없이 책을 완독하였으니, 약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두려움없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위에서 다룬 내용 외에도 약과 관련한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