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곡 '산불'을 통한 역사적 현실의 재현 [도서/문학]

역사적 현실의 재현과 휴머니즘
글 입력 2023.05.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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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의 <산불>,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


 

작가 차범석은 1924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며 처음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유치진의 희곡론 강의를 통해 역사적 현실, 사실의 재현에 관한 그의 문학관을 정립하였으며, 그의 작품활동은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연극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소극장 운동을 전개한 ‘제작 극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연극의 예술성 확립과 실험정신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삶의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창작했다.

 

두 번째로, ‘연극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한 극단 ‘산하’에서 활동하며,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고발했던 그의 작가 의식이 인간 내면의 의식에 집중하는 작가 의식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극단 ‘산하’가 해체된 후, 연극 행정가로서 활동했던 시기를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시 차범석 작가는 시대의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역사의식이 담긴 역사극 창작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신춘문예 정식 등단작 <귀향(1956)>, <불모지(1958)>, 극단 산하 활동 시기의 <청기와 집(1964)>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 사실주의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산불(1962)>의 경우, 한국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던 1951년, 남편을 잃고 과부들만이 남겨진 P부락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해당 작품 창작 당시 연극, 무용 동맹 활동에 참여했던 차범석은 국군이 진주한 이후 인민군에게 동조한 부역자 색출 소탕 작전에 연루되어 열흘 간 유치장에서 생활했던 사건으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느낀 개인의 무력감, 절망감을 계기로 10여 년간의 고심 끝에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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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산불> 속 장면을 통해 주제 알아보기


 

차범석의 <산불>은 그가 리얼리즘 연극관에서 강조했던 역사의식과 휴머니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 전쟁 속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의 비참함을 그려내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애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중점으로 더 이야기해보자면, <산불>은 1951년, 한국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진행되어 하나의 작품에 인민군과 국군이 모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 중 양씨의 아들, 점례의 남편은 인민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최씨의 사위이자 사월의 남편은 국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와 같은 설정은 전쟁 속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가족사로 함축시켜 전쟁으로 인해 희생당한 개인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들을 살해하는 인민군과 국군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반면에, 작품 내에서 P부락 주민들이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보다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의 첫 장면에서 인민군에게 제공할 식량을 모으는 양씨의 모습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서민들은 그들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식량을 제공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1) 언제는 국군에게 밥을 해 냈다고 죽이고 언제는 빨갱이 놈들에게 아부했다고 경을 치고…(한숨) 똥파리만도 못한 목숨인 줄은 알지만 정말 억울했지! 억울해! - <산불> 中 이웃 아낙

 

2) (한숨을 쉬며) 지지리도 박복한 백성이지! 올라가면서 죽이고 내려오면서 쳐붓구 백성이 무슨 동네북인가! 생각나면 때리구 죽이구 - <산불> 中 병영댁

 

3) “말이야 바로 말이지만 누가 빨갱이고 누가 노랭이고 있어? 그저 못먹고 못 배운 게 흠이지… 이리 가라면 이리 끌리고 저리 가라면 저리 흔들려서…안 그랬어?”- <산불> 中 이웃아낙

 

 

이처럼 작품 속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P부락의 주민들은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 보호를 명분으로 한 인민군과 국군의 식량 및 재산 약탈, 두 세력의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을 더욱 억울해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재산 약탈은 빨치산에서 내려온 인민군들을 색출해내기 위해 양씨의 대밭을 소각해버린 것으로 인민군과 국군 모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점례와 사월의 경우, 이데올로기가 아닌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욕정에 집중해 규복을 공동 소유하는 것, 지인의 사상에 휩쓸려 인민군에 잠시 동조하였지만, 공비라는 이유로 국군에 의해 총살당하며 이데올로기 차이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는 규복이 이와 맥을 같이한다. 결국,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피해를 본 인물은 당시 시대의 서민들이자 규복인 것이다. 

 

 

일정한 방향이나 의미도 없이 끌려다니는 무지한 사람들의 애정의 원색은 곧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 문명도 의욕도 찾아볼 길 없는 깊은 산 속에서 그릇된 사상의 희생과 갈등을 통해 지난날 우리 민족이 겪었던 상처를 어루만지며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고자 붓을 들었다.

 

- 국립극단 제29회 <산불> 공연 팜플렛 中 (1962)

 

 

위의 글과 같이, 차범석의 <산불>은 한국전쟁 속에서 민족 분단의 고통과 대립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P부락의 주민들, 점례와 사월, 규복의 삼각관계 안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본성에 존재하는 욕망을 꾸밈없이 보여주고자 한 사실주의 작품이자 그의 문학관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앞서 작가의 작품활동과 <산불>의 주제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6.25 전쟁 당시 현실을 그린 <산불>의 특수한 작품 배경, 인간의 욕정이 현시대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기에 오늘날까지 꾸준히 제작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관점으로 <산불>이라는 연극을 사유해야 하는가? <산불>의 주제에 자주 등장하는 ‘이데올로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념 즉,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 역사적ㆍ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이다.

 

작품 속에서도 그려지듯,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전쟁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타나 보이는 허상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현실은 2023년,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발발한 전쟁, 사회 집단 내의 관념 차이로 인해 대립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등이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립의 요소이다.

 

그렇다면, 산불과 다른 예술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현 사회의 문제점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또 사유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하는 물음이지만, 문화 예술 애호가, 향유자, 소비자, 그리고 문화 예술의 생산자, 창작자, 예술가로써 동시대의 문제와 현실을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바라볼 것인지 탐구하는 과정이 미래 문화예술인들이 동시대를 바라보아야 할 태도로 표현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무천극예술학회作 '차범석 희곡연구'

 

 

[윤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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