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삶은 정말로 전쟁과 무관한가요? - 연극 ’몬순‘

글 입력 2023.04.2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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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몬순_포스터.jpg

 

 

동시대와 호흡하는 새로운 극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창작극 개발을 시도하는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의 첫 번째 작품, <몬순>을 관람했다.


<몬순>은 섬세하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작가 이소연이 전쟁을 키워드로 포개진 다양한 층위의 세계와 정답을 찾아 헤매는 절실한 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세 가상 국가를 공간적 배경으로 세 집단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A국 : 무기회사 직원 차미와 그녀의 아들 굴,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유학생 네이지가 홈스테이를 하며 살고 있다. 네이지는 최근 전쟁이 발발한 나라인 타트 출생이며, 타트 역시 가상의 나라이다.


B국 : 미디어 아트 전공 대학원생인 새벽은 졸업 전시 주제인 ‘전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타트에서 온 교환학생 코우쉬코지를 알게 된다. 또 다른 전쟁 국가에서 사진 취재 중인 이삭은 새벽과의 화상 통화 화면을 통해 등장한다.


C국 : 유치원에서 일하는 리오와 타트 출신 안무가 문은 오래된 커플로, 퀴어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2인극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장면 연습을 친구인 홀키가 지켜본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6.jpg

 

 

아홉 명의 인물들은 모두 전쟁과의 거리감도 방향도 각기 다양하게 위치한다.


네이지, 코우쉬코지, 문은 전쟁 중인 타트 출생의 사람들로 현재는 다른 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에게조차 전쟁 그리고 조국인 타트와의 거리는 다르다.


네이지는 가족들이 아직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전화로 그들의 안부를 세 시간에 한 번씩 확인할 만큼 전쟁과 가까운 반면에, 문은 다른 나라에 살게 된 지 10년도 더 넘었고 더 이상 그곳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없다.


타트 출생이 아니고, 그 나라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인물들은 더욱이 전쟁 바깥에 있는 비당사자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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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미디어아트 작품의 첫 기획안을 발표할 때까지 ‘전쟁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전쟁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만을 적시는 빗방울의 수직적 이미지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간, 기업 간 이해관계가 매우 촘촘히 엮여있고 사람들의 이동도 자유로운 시대에 우리의 삶은 전쟁이나 전쟁 발생 국가와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


심지어 한국 사회는 전쟁을 실제로 겪은 세대와 공존하며, 전쟁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이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로서 전쟁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나라의 국민인 우리에게는 더더욱 전쟁이 멀리에만 있는 이야기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소연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장을 재현하는 것은 관람객이 미사일 아래에 놓이지 않은 자신의 자리에 안도감을 느끼게 하며, 자신이 전쟁으로부터 아주 먼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이한 생각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 마치 ‘전쟁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날아든 전쟁의 파편을 그려내며 ‘우리는 전쟁과 정말 무관한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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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는 화상 강의, 영상 통화, 온라인 게임 화면, 드론 등이 일상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작품의 배경이 현대 사회와 같은 초연결 시대임을 시사한다.


장면, 인물, 대사 간 오버랩을 통해 각자 다른 시공간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함으로써 다르면서도 비슷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결된 세계관에서 전쟁은 물리적으로 먼 공간에 있는 인물들에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는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유리 괴물의 이야기와 맞닿는다.


빗방울과 달리 수평적으로 넓은 범위를 이동하며 유리 알갱이를 사방에 흩뿌리는 괴물. 이 괴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유리 파편들이 우수수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살갗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을 준다. 


새벽은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전쟁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최종 발표에서 미디어아트 작품의 제목을 ’몬순‘이라 칭한다.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않지만 내 몸과 모두의 몸, 사이 사이를 휘몰아치는 바람. 즉,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풍 ’몬순‘에 전쟁을 빗댄 것이다. 그러나 이삭과의 전화를 통해 어떤 지역에서는 ’몬순‘이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폭우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전쟁이 하나의 매끈한 상징에 담길 리 만무하고, 새벽은 실패한다. 기실 비이자 바람이며, 재해이자 축복인 ’몬순‘은 전쟁에 대한 은유로 환원될 수 없다. 실체는 언제나 상징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몬순>은 이처럼 전쟁을 ’몬순‘에 빗대는 자신의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며, 이야기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의 두께를 상기시킨다.

 

- [창작공감: 작가] 전영지 운영위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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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전쟁이 주는 고통의 실체를 하나의 상징에 담아낼 수 없을뿐더러, 때로는 전쟁 당사자와 비당사자, 가해자와 피해자를 딱 떨어지게 구분 짓기 어려운 지점이 있음을 이야기에 녹여낸다.


극 중에서 무기회사 직원으로 등장하는 차미는 가난하고 약한 삶을 살아온 타트 출생의 어머니와 다른 길을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래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피하고자 했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무기회사였다.


그녀의 회사에서 만드는 무기들은 어머니의 조국이자 네이지의 가족들이 남아 있는 타트를 공격하는 데 쓰인다. 실망감을 표하는 네이지에게, 차미는 자신의 회사가 무기를 파는 일 외에 진행 중인 저소득층 장학 사업, 연구 지원, 복지 프로그램 등의 사회 공헌 활동들을 언급하며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는 전혀 모르는 채로 전쟁에 일조하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사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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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몬순>은 우리가 폭력의 얼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거대 사회 속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다가도 여전히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숨을 쉬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문이 리오와 장면을 만들 때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기를 원했듯이 현실적인 아픔에서 벗어날 수도, 도망쳐 갈 곳도 없기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다. 모두가 연결된 이 시대에서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방향성을 생각하도록 하는 목소리다.


분명히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실체인 전쟁 앞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제각각의 방향과 세기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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