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흙 속에서도 피는 연꽃처럼 - 코코 샤넬

<코코 샤넬>을 읽다.
글 입력 2023.04.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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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의 대명사, 샤넬


 

샤넬.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이자, 선망의 대상 혹은 로고를 드러냄으로써 욕망을 전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명품' 브랜드의 고유명사. 매년 인상되는 가격 덕에, 지금 사는 샤넬이 가장 저렴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만, 매장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면 가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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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보이백'으로 불리는 보이 샤넬 플랩 백 | 출처 : 샤넬 공식 홈페이지

 

 

'오픈런' 문화에 일조한 샤넬의 대표 제품은 바로 가방이다. 그중에서도 샤넬의 '보이백'은 모두의 꿈이라고 불릴만큼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는 굳건한 아이템이다.

 

가방을 보고 있는 누구라도 한 번 쯤은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멋지고 고고한 자태가 인상적이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며 과하지 않은 색조합과 디자인이 인상적인 샤넬의 가방은 유행을 타지 않는 동시에 유행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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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 | 출처 : 샤넬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선망을 선사하는 브랜드의 창시자이자 우아함의 대명사인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솔직하고도 대담한 이야기가 있다.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삶을 읽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를 만든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모습은 사진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삶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값비싼 명품 브랜드의 수장, 당시 여성들의 움직임을 위해 파격적인 복식을 선보이며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는 데에 일조한 진보적인 여성 사업가 정도가 필자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가브리엘은 생전 회고록을 펴내려 했으나, 몇 번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사후 30여 년이 지나서야,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전기의 저자인 앙리 지델은 그녀의 다채로운 면과 내밀한 이야기를 속속들이 전해준다.

 

전세계 여성의 워너비로 자리매김한 가브리엘 샤넬의 이야기 일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코코샤넬 표지.jpg

 

 

가브리엘의 어린 시절은 생각만큼 반짝이지 않았다. 물론 그녀 자체는 원석이었으나,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보면 기구하다면 할 만한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녀는 어머니 사후 12살부터 떠돌이 행상 아버지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아 처량하고 외로운 유년을 언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수녀원에서 버티는 삶을 살았다.

 

스물이 되었을 무렵, 진정한 자유를 찾고 있던 가브리엘은 더 큰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해 당시 머물고 있던 도시에서 가장 상업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자리를 옮겨 보조양재사로 일을 시작한다. 또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한 카페에서 가수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에티엔을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에티엔이 가브리엘을 높이 평가했던 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남다른 개성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반짝이는 면을 알아봐준 재력가 덕에 가브리엘은 모자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에티엔과 있으면서 그녀가 얻은 수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의 내면을 확인한 것이다. 에티엔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녀는 말을 타는 모임에 자연스레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받는 일을 경험한다. 이로 인한 모욕적인 상황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다짐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남성들이 입는 승마용 바지가 훨씬 편하다는 것을 알고 부인용 옷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같은 디자인으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후 남성복에 자주 쓰이는 천을 사용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발목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만드는 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가브리엘의 눈에 최고의 멋은 실루엣과 라인이었다.

(p. 156)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러운' 이분법적인 사고를 떠나, 성별의 경계를 허물며 어떤 스타일을 누가 입던 간에 실루엣과 라인으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에 주력했던 그녀는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고려한 옷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디자인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떠났던 1차 세계대전 당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고려하여 레이스와 코르셋 등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없앤 의복을 선보였다. 엉덩이 부분을 낙낙하게 만들고 옆선에 주름을 넣은 '샤넬 라인' 원피스를 만들고, 손을 넣을 수 있도록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의 재킷을 만드는 등 새로운 생활 환경을 고려한 실용적인 스타일로 인기를 얻게 된다.

 

사업 감각이 뛰어났던 샤넬의 일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소극적으로 관여했던 미국에 보낼 의상에는 파리 여성들처럼 검정이나 베이지 등의 색상이 아닌 강렬한 색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말이 생각났던 순간이었다.

 

전기라기보다는 허구라고 하는 편이 더 믿음이 갈 만한 삶을 살았던 가브리엘. 1971년 1월 11일 어느 호텔방에서 20세기를 주름 잡았던, 일평생을 일에 헌신했던 그녀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일요일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한 사람의 인생치고는 상당히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독자로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책 <코코 샤넬>.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절망에서도 언제나 희망과 배울 점을 찾아 성장을 도모하며 진취적인 삶을 살다 간 가브리엘.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어나듯,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로 용기와 교훈을 준 그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존경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윤화 전문필진.PNG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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