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의, 시 ‘아닌 것’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4.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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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묻는 사소한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자기 주관이 확고한’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가 청소년일 때,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왜 사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춘기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내가 사춘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이러한 질문을 일부러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 내가 누구인지 잘 몰랐던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질문은 연령 불문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질문이며, 많은 사람은 살아가면서 마음 한구석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리라는 생각을 한 채로 살아간다.

 

사람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소개할 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000이고, 몇 살이고, 어디 대학, 어느 과에 재학 중입니다” 정도로 짧게 끝낸다. 좀 더 길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가가 어딘지, 취미가 무엇인지, 장단점까지 말한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중략)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에린 헨슨의 시 ‘아닌 것’은 일반적으로 자기 소개할 때 형식적으로 말하는 이름, 나이, 대학, 본가 같은 것들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에서 말하는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은 그저 책의 제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의 제목은 하나의 글자에 불과하다. 내가 그동안 무슨 책을 읽었는지보다 내가 한 권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아는 것은 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만날 때 다른 세계를 만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하는지, 그의 성격은 어떤지 등을 모두 포함한 그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이다. 외적인 것은 한 사람의 세계가 아니다.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일부만 차지할 것이다. 외적인 모습만으로 사람을 파악할 수는 없다. 내가 하는 말로 상대방이 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고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내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상대방에게 나의 세계를 점점 더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의 꿈, 진로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중, 고등학교 때는 오히려 가고자 하는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6년 내내 정하지 못한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머지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하나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만큼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직업은 돈을 잘 버니까,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직업이니까 진로로 선택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또,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일기는 다른 사람에게 수월하게 읽혀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정말 오늘 내 하루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기에 좋고, 오피니언은 문화예술에 대한, 혹은 평소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을 다듬고, 구체화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어 좋다. 교내 신문사 활동을 하며 작성하는 기사는 평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주제와 관련된 객관적인 사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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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나를 깨닫는 것의 기쁨


 

우리나라 대표 민요 아리랑은 ‘참된 나를 깨닫는 것의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사람들이 참된 나에 대해 쉽게 깨닫지 못하기에 이에 대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참된 나’는 나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면 점점 가까워진다. ‘참된 나’는 어느 순간 깨닫기보다는 나에 대해 생각함에 따라 스며들고, 참된 나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에린 헨슨도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참된 나를 마주하는 것이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레드북’의 ‘난 뭐지’도 참된 나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생각이 드러난다. 결국 예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은 나를 정의하는 것은 결국 참된 나를 안다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시간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놓치는 것이고, 결국 ‘참된 나’를 마주할 수 없게 된다.


참된 나를 마주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계속 생각해야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이든, 책, 영화를 본 후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든, 오늘 강의 때 배운 어느 사상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하는 것이든, 그게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든 좋다. 나에 대한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곧 나를 깨닫는 것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우리는 아직도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 나이, 소속 대학, 학과 등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다.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저는 꿈을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는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기 쓰는 것도, 내 생각을 담는 오피니언을 작성하는 것도, 객관적인 사실을 담는 기사를 쓰는 것 모두 좋아합니다. 소설 ‘천개의 파랑’을 읽고 난 후 ‘찬란’이라는 말에 빠져있는데, 이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자기소개 틀이 아니기에 어색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통해 내 세계를 진정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름, 나이 같은 것이 아닌 내 생각, 내가 인생에서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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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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