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윤대성의 출발을 읽고 [도서/문학]

시작과 끝이 같은 사람들
글 입력 2023.03.2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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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윤대성 작가의 희곡으로 상징이 많이 사용돼 시중에 있는 해석이 다양한 작품이다. 보통 작품을 볼 때 중요하게 봐야 하는 제목도 이 작품은 상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발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감”, “어떤 일을 시작함. 또는 그 시작.”이다. 일반적으로 출발의 반의어는 도착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출발과 도착을 일직선에 두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출발과 도착을 원에 두고 봐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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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주목할 점은 장소이다. 〈출발〉이 진행되는 공간은 간이역이다. 모든 작품에서 장소는 중요하지만, 특히 이 작품은 장소를 더 주목해야 한다. 작품의 간이역은 역 시간표가 있음에도 기차가 지나감에도 기차가 멈추지 않는 역으로, 도착이 없는 역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작품의 제목인 “출발”과 닮았다. 기차는 도착 이후에 출발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기차는 어느 역에 정차했다가, 사람들을 태우고 다시 출발한다. 그러나 작품 속 간이역은 도착이 없기에, 이전 역에서의 출발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도착과 출발이 불분명한 원을 연상한다.


두 번째는 인물들의 인생이다. 〈출발〉에는 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공식적인 등장인물은 사내와 역원이지만, 이 둘을 엮는 한 사람, 사내를 사랑했던 사람이자 역원의 아내였던 여성 역시 인물로 볼 수 있다.


먼저, 사내는 마을 교회에 나타난 전도사로 한 여성과 사랑하다 무언가를 찾고자 마을을 떠났다. 여성은 사내를 잊지 못해 사내를 기다리다 결국 역원과 결혼했음에도 사내를 그리워하다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간이역에서 죽었다. 마지막, 역원은 사내를 그리워하는 여성과 결혼했음에도 여성의 사랑을 막지 못해 아내를 잃었고, 그 이후 역에서 사내를 기다리다가 아내와 마찬가지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처럼,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간이역에서 출발했다. 사내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곳을 향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곳을 떠나기 위해, 마지막 역원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이렇게 본다면, 〈출발〉에 사용된 “출발”은 여기서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감”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상징적 요소는 기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극의 후반으로 가면, 사내가 떠나야겠다고 말할 때, 역원은 “기차를 이용하겠소?”라고 묻고, “그 여자도 기차를 이용했소.”라고 답한다. 이는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사내와 역원 중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를 분석하며 작품을 볼 때 흥미롭게 본 인물은 사내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사내의 인생이 “출발”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든 사전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밝혔듯, 출발에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감”이랑 “어떤 일을 시작함. 또는 그 시작.” 두 가지 뜻이 있다.

 

사내가 마을을 떠날 때는 산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떠났고, 그 마을은 사내가 여성과 사랑을 시작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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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고 사내의 인생을 보면서, 페퍼톤스라는 인디밴드의 “긴 여행의 끝”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노래는 “한참 만에 돌아온 이 도시의 풍경은 눈을 감고 떠올린 그 모습 그대로”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노래의 후반부에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막다른 길 그 벽 앞에서 난 우습게도 널 떠올렸어.”, “모든 것이 시작됐던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마침내는 만나게 된 길고 기나긴 이 멀고 머나먼 이 여행의 끝”이라는 가사로 노래가 끝난다.


노래 가사처럼 사내 역시 간절히 찾고자 원했으나, 결국 떠났던 곳에서 여성을 만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제 종점으로 다시 출발하는 일인데요. 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라는 사내의 대사에서 볼 수 있다.


출발의 사전적 의미를 찾다가 〈출발〉 작품을 1960년대의 청년의 방황, 혹은 두 사내 간의 사랑의 혼란이라고 정리한 사전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출발〉을 정리한다면, 자신 옆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찾아 떠났으나 결국 자신이 떠났던, 출발했던 곳에 있었던, 그래서 사실 자신의 출발지가 도착지였던 인물의 이야기라고 정리하고 싶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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