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나 이렇게 사는 걸까 - 넥스트 투 노멀

살다 보면 행복한 날이 온다는 말
글 입력 2023.11.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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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문장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첫 곡이 관객을 끌어당기는 이유도 이 문장과 결을 같이 한다.


골칫거리 아들과 따분한 남편, 천재지만 또라이 같은 딸과 함께 사는 다이애나 굿맨은 집에 사랑이 가득해 행복하다고 말한다. 반면 그의 “천재지만 또라이 같은” 딸 나탈리의 이야기는 정반대이다. 이딴 집에서 가출하지 않은 건 기적이며 타인의 행복에 의문을 품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 가식적으로 행복한 척을 하는 건지. 가정에 대한 어머니와 딸의 엇갈리는 평가는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던 집안에 균열을 내보인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댄 굿맨은 다이애나처럼 공들여 온 가정에 대한 애착을 보이면서도 나탈리의 말처럼 집에 먹구름이 끼어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댄은 나탈리처럼 도망치고 싶어하는 대신 기도와 커피 한잔으로 이겨내겠다며 가족을 품는 의지를 보인다. 노래는 뒤로 갈수록 점점 비틀린 가족을 보여준다. 숨을 쉴 때만, 일할 때만, 노력할 때만, 놀 때만 아프다는 가사는 모든 순간 아픔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집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며 ‘굿맨’의 방식대로 불행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살펴보아야겠다.

 

 

CK온 스테이지 넥스트 투 노멀 포토콜1.JPG

 


다이애나는 조울증과 과대망상 등의 정신질환에도 가족을 위해 버티려고 애쓴다. ‘완벽한 가족 되어 볼래, 씨발 못 되면 좀 어때, 아찔한 접시 돌리기, 세상도 늘 함께 돌아’라는 가사에서 다이애나의 일상이 긴 꼬챙이에 대고 돌리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댄과 함께 병원에 가고, 약을 처방 받는다. 대체 무슨 약과 무슨 약을 같이 먹으면 안 되는지도 헷갈리는 데다가 부작용으로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약을. 


다이애나의 옆에는 항상 댄이 있다. 댄은 운전하는데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을 거 같다고 할 정도로 지쳐도 항상 다이애나의 곁을 지킨다. 다이애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울증 환자 모임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댄의 노력으로 다이애나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어도 몇 번이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결국 다이애나는 자신의 상처와 병이 얼마나 깊고 고통스러운지 댄은 전혀 모른다고 분노한다. ‘내 죽음은 단지 느릴 뿐’ 다이애나와 다를 게 없다는 댄은 항상 혼자인 듯 외롭다. 집에 불이 켜져있단 건 누군가가 그곳에 산다는 증거인데 댄이 바라보는 집은 늘 불이 꺼져있는 것만 같다.


한편 나탈리는 수영 대회에선 물에 같이 뛰어들고 학교 공연에선 약을 먹고 차에 뻗은 엄마와 그런 엄마를 챙기느라 나탈리는 뒷전이 된 아빠 사이에서 삶이 힘겹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와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서 손톱이 깨지도록 피아노 연주에 집중한다.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대학교에 조기 입학할 수 있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가족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다이애나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건 과거 한 불운한 사건 이후였다. 나탈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겪은 사고는 17년째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이애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영혼이 박살 난 것 같고 댄 역시 그 사고를 잊지 못한다. 나탈리는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언제나 부모님에게 2순위로 밀려난다. 날 사랑해달라는 나탈리의 외침은 ‘널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는 다이애나의 말에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엄마가 죽길 기도하다가도 정말 죽을까 봐 울던 나탈리는 어느 순간 자신을 위해 더는 울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런 나탈리를 위로하는 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헨리다. 나탈리에게 완벽한 짝이 되겠다고 선언한 헨리는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가정을 찾는 댄과 다이애나와 달리 네가 미치면 같이 미치겠다며 광기와 엉망이 완벽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말에 앞서 다이애나는 나탈리에게 그간 방치한 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나탈리가 알 수 없는 사고에 관해 설명한다. 딸인 너에게만은 완벽한 가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는 평범한 게 뭔지 몰랐다는 다이애나의 말이 눈물샘을 고장낸다.

 

극은 이토록 다른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입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다. 또, 최선일지 모르겠으나 최선이길 바라는 방식대로 나아가며 마무리된다. 더 나아가 가족에게 신경 쓰느라 잊혀진 자신을 돌이켜본다.

 

 

CK온 스테이지 넥스트 투 노멀 포토콜2.JPG

 

 

굿맨 가족은 마치 고슴도치 같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가시가 돋쳐 있어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는다. 그들이 상처를 입지 않는 방법은 서로 거리를 두고 오래 걸리더라도 대화를 하는 일뿐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노라면, 굿맨 가족의 상황이 꼭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돈을 버느라, 일이 바빠서, 사는 게 힘겨워서 자식이 2순위가 되기도 하고 그런 부모에 상처받다가 기대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희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우자도 힘들고 아프다지만 안 그래 보일 때도 있으며 불 켜진 집에 들어가도 나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경험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남들 집은 다 좋아 보이고 화목해 보이는데 우리 집은 왜 항상 이럴까? “넥스트 투 노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완벽, 정상 같은 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평범 같은 건 너무 머니까 그 근처 어디라도 가보자고. 어찌 보면 힘 빠지는 이 말이 기운을 나게 만드는 게 “넥스트 투 노멀”의 이야기가 주는 힘인지 모른다.


다이애나를 돌보며 지쳐가는 댄은 피곤이 엿보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어색한 나탈리의 떨리는 목소리는 상처가 잘 보인다.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닦아내는 다이애나의 혼란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덩달아 관객도 등장인물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다이애나와 댄, 나탈리에게 조금 더 애정을 보내며 그들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회복을 자신의 회복으로 믿는다. 악순환이 계속될 듯 보일 때는 안타깝다가 한 발씩 더 나은 길로 내디딜 때는 꼭 내가 앞으로 나아간 듯 힘을 얻는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살아있어야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다이애나는 처음 극에 등장했을 때처럼 억지로 견디기 위해, 완벽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훨씬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인생 목표가 어긋난 나탈리 역시 비슷하다. 불을 켜고 함께 견디자는 나탈리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싶어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상당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픔은 삶의 일부고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사랑하길 주저하지 않겠다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관객도 한 걸음 성장한다. 


내가 속한 가정이 나만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해도 불행을 벗어내고 나아가는 방법은 비슷할 것이다. 굿맨 가족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힘든 가족에게 작은 힌트를 줄 수 있지는 않을까.


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에서 이런 “넥스트 투 노멀”로 2023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DIMF의 대학생 경연부문 대상을 받았다.

 

기존 라이센스 극에 비해 가족들의 감정선이 더욱 풍부해지면서 다이애나를 둘러싼 가족의 상처와 고민이 여실히 보인다. 덕분에 관객은 다양한 등장인물에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이입하며 나아가 치유된다. 또 대극장에서 소극장으로 옮겨 오면서 관객은 이야기를 더욱 가깝게 맞이한다. 

 

철제로 된 무대 대신 하얀색 판으로 만든 집은 좀 더 평범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도 갇힌 듯 답답해 등장인물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한다. 

 

기존 "넥스트 투 노멀"이 그리웠던 사람도, 새로운 연출의 "넥스트 투 노멀"이 보고싶은 사람도, 그저 삶이 힘들거나 가족 문제로 지친 사람도 따스하게 맞아주는 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의 "넥스트 투 노멀"은 11월 11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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