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금기에 다가가기

글 입력 2024.04.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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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날 것’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인간 문명이 이룬 성취를 납작하게 무시하고 그것이 자아내는 불쾌한 무게감을 체감 중이기 때문일까. 겹겹이 씌워져 비대해진 인간, 그 안에 나체로 존재했던 태초의 원형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적어도 한 겹의 문명을 덧댄 모습만이 인간으로 인정받는다. 피로해진 나는 한 벌의 옷에서조차 구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살갗의 몸은 어쩌다 금기의 대상이 됐을까. 문화권마다 다른 정도로 몸이 통제받는 사실은 그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 나라에선 벗지 않는데 호기심을, 저 나라에선 드러내는데 경멸을 품는다. 똑같은 몸은 위치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의 몸이 된다.


그런데, 우리 다 갖고 있는 것들이잖아. (물론 그렇지 않은 몸도 있다) 너무 원초적이어서 순진하기 그지없는 질문, 그만큼 당연한 질문이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있다. 저마다의 가슴, 유두, 허리, 치골, 성기, 배꼽, 체모. ‘문명인’이라면 하루에 한 번씩은 씻으며 보게 되는 부위들의 몸.


이상...한가? 낯..선가? 저속한...가?


때론 단순함이 명료한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복잡한 논의들에서 잠시 멀어진다. 그만큼 한 권의 책에 가까워진다. 도발적으로 시뻘겋고, 여러 권을 펼쳐놓은 듯 거대하다. 본체의 크기만큼 드넓은 표지 사진이 얼굴처럼 박혀있다. 머리를 민 사람이 자기 겨드랑이를 향해 있는 힘껏 혀를 내민다. 망설임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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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진작가 렌항(Ren Hang)의 동명 사진집 Ren Hang에 관한 이야기다. 렌항은 성에 관한 묘사를 엄금하는 중국의 억압에 담담히 직면한 인물이다. 렌항이 표현하고 싶은 건 단순하고 명료하다. 우리는 로봇이 아닌 성기와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 어떤 메시지도 없이, 단지 자연 상태의 사진을 찍었을 뿐이라는 그가 나의 선조처럼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뽑아 들었다. 괜히 주위를 둘러봤다.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로봇이 아닌 성기와 섹슈얼리티를 가진 인간 동료들이었다. 일련번호를 찾을 때의 당당한 태도는 휙 날아가고, 누구도 표지를 볼 수 없도록 몸에 밀착한 후 발을 재촉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구석에 자리 잡았다.


왠지 모를 머쓱함은 Ren Hang을 읽는 방식의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했다. 불안에 떨며 한 장 한 장을 재촉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를 죄스럽게 만드는 태도는 이 책의 대척점에 있다. 정체 모를 감시의 시선을 인지하고 감내하고 적절히 해결하는 것까지 이 책의 독서법이라는 걸 알았다. 구석진 자리에서 한 움큼의 편안함과 몇 방울의 불안을 갖고 책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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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피사체는 렌항의 친구들이다. 모두 나체다. 그것이 너무나 낯설었다. 낯섦을 느꼈다는 게 당황스러울 정도로. 목까지는 자연스러웠던 형상이 실오라기를 걸치지 않는 몸과 이어지면서 부조화를 이뤘다. 마치 합성처럼 느껴졌다. 수백 쪽의 페이지, 수백 번의 나체를 보고 책을 덮을 때까지도 이물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감정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모르는 이의 나체를 마주했다. 절대 본 적 없지만 너무나 익숙한 몸. 또렷하게 렌즈를 응시하는 눈이 그들이 주체적인 인간임을 단순하게 증언했다. 다양한 포즈와 공간 속에서 눈만큼은 동일하게 선명했다. 외설과는 거리가 먼 응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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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넓게 늘어선 회갈색의 건물 숲이 축축하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단 하나의 나체가 자아낸 마법 같은 힘이었다. 희고 황갈색을 띤 몸의 곡선이 높이 솟은 직선 건물의 허영심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유로운 몸은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간이 사라진 아파트 단지를 점령한 식물의 한 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젠더의 구분을 뛰어넘는 욕망의 방향 역시 흥미롭다. 입을 맞추는 부위, 살을 맞대는 사람의 젠더는 나체 앞에서 중요한 구분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선과 열망만이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다. 그 감정과 행동이란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것이 제삼자의 몸으로서 재현됐다는 것만이 낯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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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무얼 발견하고 느끼고 싶었던 걸까. 벗어도 된다는 허락? 몸을 둘러싼 억압의 부조리함? 다 무시하고 마이웨이로 살라는 격려? 날 것의 몸에 대한 탐미 혹은 관음? 나의 독서에 누군가의 몸을 훔쳐보고 싶다는 어떤 더러움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건 더러움이라고만 일컬어져도 될까. 내가 보려는 몸은 순수한 주체로서의 주장이었는데도. 몸에서 맥락이란 게 없어져도 될까.......

 

... 생각을 멈췄다. 단순한 몸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퍽 애처로웠다. 몸에 이미지를 덧입히고 제거하는 지난한 반복이 평생의 과제가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몸을 오래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친숙함이 있다. 인간은 모두 그 친숙함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자유가 있다.


겸연쩍게 거울 앞에 선다. 한 꺼풀씩 벗겨낸 몸이 앞에 서 있다. 눈에 씐 여러 필터를 벗겨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부적절한 선정성이란 아무리 뜯어봐도 찾아볼 수 없다.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욕망만이 곳곳에 박혀있을 뿐이다. 결국 내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누군가의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도 같은 말인 것이다.


익숙하고도 낯선 나의 몸. 이 덩어리가 원하는 욕망은 어디에 잠들어있는가. 어디로 향하고 싶어 하는가. 왜 향해야 하는가. 너의 몸과 욕망은 왜 그러해야 하는가. 너와 나의 몸과 영혼은 이렇게 또 연결되어버린다.


원초적인 몸을 응시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상한 방식의 사랑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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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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