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을 사랑한 인간, 인간을 사랑한 죽음 [영화]

글 입력 2022.12.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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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이 일부 작성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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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앞에 죽음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마냥 피하기만 할까, 아니면 겸허히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일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윌리엄 패리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두 딸과 듬직한 사위, 성공한 사업과 화려한 저택까지 가진 남부럽지 않은 남자였다. 부유하고 성공한 인생, 모든 이들의 총망을 받고 두 자녀의 사랑을 받는 그의 65세 생일이 다가오던 평범한 날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죽음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왔다. 인간의 탈을 쓰고 말이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수잔 패리쉬'. 성공한 집안과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과 남자친구,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사라는 직업까지 모든 걸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 결핍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항상 그녀에게 말하였다. 진정한 사랑을 찾으라고, 진정으로 가슴 떨리는 사랑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그녀는 남자친구 '드류'를 온 마음 다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저 그런 하루 중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 보는 남자와의 대화를 통해 둘은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고 헤어진 그 남자와의 인연은 끝날 줄 알았다. 끝날 줄 알았는데.. 아버지 옆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그 남자. 하지만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것처럼, 아니 마치 이 세상을 처음 느껴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모르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와중에 한 여자를 알게 되었고 첫눈에 이끌려 대화를 이어나가다 이름 하나 묻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대로 가면 안 될 거 같은 마음에 골목을 꺾을 때까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육체에 죽음이 깃든다. 죽음이 들어간 그 남자의 이름은 '조 블랙'. 윌리엄 패리쉬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저승사자 '조 블랙'은 인간의 몸으로 잠시 윌리엄의 집에서 거주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자신을 아는듯한 한 여자를 만나고 이런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이끌린다.



 

죽음을 사랑했던 여자, '당신은 조예요'


 

조 블랙은 그렇게 수잔과 사랑에 빠진다. 죽음으로서 사랑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낯선 감정 속에서도 수잔에게 강하게 이끌린다는 것을 알게 된 조 블랙은 정해진 기간 속에서만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 또한 자신과 헤어지기 싫어하고 스스로도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조 블랙은 수잔을 데려가겠다고 한다. 죽음으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윌리엄은 조에게 크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이건 계약 위반이라고 말했지만 조는 타인의 말 따위 듣지 않았다. 사랑을 처음 느껴본 그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헤어지지 않고 평생을 함께하는 것, 그게 타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더라도 말이다. 그는 아마도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죽음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수잔을 죽음으로 데리고 가 평생을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그런 조에게 '이게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어?'라고 되묻는다. 정체를 밝히고 진실을 털어놓으며 수잔의 마음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이는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아야 완전히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퀸스의 말과 같았다.


조 블랙은 죽음이지만 어쩌다 보니 선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수잔과의 사랑을 이별로서 재정의 한다. 자신이 인간 세계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조는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수잔을 보며 안녕의 말을 전한다. 조와의 대화를 통해 수잔은 그녀가 지금까지 사랑했던 '조'는 카페에서 만났던 그이가 아닌 다른 무언가임을 깨달았지만 그를 보고 말한다.

 

'당신은 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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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은 조 블랙이 자신의 아버지를 데리러 온 죽음임을 알았을까?

 

내 생각에 수잔은 조 블랙과의 마지막 대화 속에서 그가 죽음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두려웠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조'임을 알았을 것이다. 처음 느껴보는 진실한 사랑을 '조 블랙'이라는 이름의 죽음과 함께 나눈 수잔의 눈동자는 쓸쓸해 보였다. 눈동자는 가득 눈물로 일렁이지만 끝까지 흘러내리지 않았던 게 의도된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와의 이별에서 수잔의 눈물이 떨어지지 않아 더 인상 깊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영혼을 잃은 여자의 혼란스러움과 그럼에도 이 감정이 '사랑'임을 알고 있는 똑똑한 수잔에게 딱 맞는 눈동자였다고 생각한다. 흔들리지만 강인한, 두려우면서도 끌리는. 혼란 속에서도 사랑한 남자의 이름을 부를 줄 아는 수잔은 흐르지 않은 눈물 그 자체였다.


 

 

죽음이 코앞에 온 남자,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기분으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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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곁에 죽음이 왔음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주변을 용서하며 자녀에게 사랑을 말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경이를 표하며 그의 생일파티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 '어느 날 아침 눈을 떠서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는 바랄 게 없다라고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고 최선을 다해 주변을 사랑했으며 다가온 죽음에게도 예를 갖추는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더는 바랄 게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인 걸까? 부와 명예? 사랑과 성공?

 

내가 그를 보고 느낀  '바랄 게 없는 삶'이란 스스로에게 만족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결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죽음 앞에서는 욕심이 앞설 것이 분명하다. 이걸 해볼걸, 저걸 먹어볼걸, 그때 그러지 말걸, 망설이지 말걸과 같은 온갖 후회와 미련이 밀려와 나를 덮치고 내 죽음의 발목을 잡는다. 온전히 나의 마지막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내 삶의 연대기를 뒤돌아볼 때 깔끔하지는 못해도 후회는 없을 때 비로소 나도 '여한이 없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은 어느 날 갑자기 덮쳐온 죽음에게 예를 갖추어 집을 내어준다.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진 죽음 앞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며 심지어 마지막엔 그에게 '고맙다'라고 마음을 전한다. 자신의 딸에게 진실한 사랑과 마음에 대해 가르쳐주어서 고맙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온 마음 다해 '사랑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후 어둠이 짙고 밤하늘에는 불꽃놀이가 한창일 때 두 남자는 겸허히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따라 다리를 건너 사라진다.

 

 


세 주연 배우의 명연기


 

수잔과의 이별 후 조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다. 처음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낯설어하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정말 이 세계를 최초로 접하는 인류의 모습과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눈동자가 로봇이 아닌가 의심하며 볼 정도로 흔들림 없는 '죽음'의 연기를 완벽히 소화했다고 본다.

 

클레어 포라니(수잔)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와 사랑했던 남자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연기가 정말 인상 깊었다. 어쩐지 모르게 마지막을 인사하는 듯한 아버지를 향해 눈물을 흘리고, 이별을 고하는 조블랙을 향해 혼란과 애정의 눈빛을 보낸다. 조 블랙의 영혼이 떠나가고, 카페에서 만난 그 남자가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올 때는 반가우면서도 감정의 한 모퉁이가 조금은 슬퍼 보였다. 조 블랙이 인간 세계에 보낸 선물은 다시금 수잔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었다.

 

'65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나요?'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을 향해 건넨 마지막 인사. 안소니 홉킨스(윌리엄 패리쉬)는 삶의 마지막을 알고 절망하면서도 주변인들에게 인사를 하며 겸허히 안녕을 고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안 적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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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 블랙의 사랑'은 인생과 사랑의 가치를 알려주는 영화이다. 삶의 끝에서 인간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좋은 추억뿐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좋은 추억을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고, 현생에서 누린 부와 명예는 이 세계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세상은 참 가혹하다. 바삐 움직이면서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쌓고 사랑을 나누며 베풀어도 결국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이니 말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져갈 좋은 기억들과 돌아봤을 때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기분을 느끼려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차디찬 겨울밤과 어울리는 영화, '조 블랙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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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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