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색깔은 BLUE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가 보여주는 사랑의 과정
글 입력 2022.12.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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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그의 소설 <사양>에서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대답은 ‘비밀’이다. 인간만이 비밀을 안고 산다고 말한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든 비밀을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개방하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글을 읽는 독자도 무방비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오히려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나만의 비밀이 알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말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랑이다. 정영수 작가가 <내일의 연인들>에서 ‘연인이 된다는 것은 두 개의 삶이 하나로 포개어진다는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인이 되는 과정에서 나는 상대에게 ‘나’를 공유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담아 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개방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것이 ‘펀치 드렁크 러브’인 것은, 그 쉽지 않은 과정을 ‘사랑’ 하나만으로 뚫어 버리는 Love power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베리, 숨다.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서사는 단순하다. 누나 일곱을 둔 베리가 동생의 친구 레나를 만나게 되고, 그는 이전에 폰섹스를 하다가 알게 된 악덕 업체 일당에게 방해를 받는다.

 

영화에서 베리는 언제나 도망가고, 숨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오프닝에서 파란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베리가 있다. 그는 가장 구석진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그는 언제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베리의 회사는 카센터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고, 회사에서 그의 사무실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다. 거기다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여 원근감을 극대화한다. (아나모픽 렌즈란, 본래 촬영하는 영상을 수축해 기록하는 렌즈이다. 이는 화면에 더 많은 정보와 공간을 담을 수 있지만, 영사 시 화면이 왜곡돼 보인다.)

 

과장된 원근감은 베리를 더욱 깊고 먼 곳으로 몰아넣는다. 이는 베리가 외부와의 교류를 두려워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을 나타낸다. 누나 일곱이 베리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그가 ‘I don’t know’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생각과 모습 그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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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은 베리가 사용하는 전화기에서도 알 수 있다. 베리는 언제나 타인(=외부)과 교류하기 위해 전화기를 사용한다. 전화기란, 외부와 직접적인 교류를 막으며 익명성 또한 갖출 수 있다. 베리에게 있어서 최적의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베리의 수단은 끝내 무너진다. 베리의 누나들이 사무실에 전화를 거는 장면부터 균열이 생기지만, 그의 최종 무기는 폰섹스 회사에 의해 무너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살아온 베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결국 전화기 뒤에 숨어 외부와 교류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베리는 업체에 자신의 신상을 전부 말해버린다. 결국 그는 사기를 당하게 되는데, 업체는 폰섹스에 대한 이야기와 베리의 신상들을 이용해 그를 협박한다. 이를 기점으로 베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쫓기게 된다.

 

 

 

베리, 혼란스럽다.


 

악덕 업체 일당이 자동차를 타고 베리를 쫓는다. 도망치는 베리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보인다. 영화에서 그림자와 실루엣은 인물의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베리는 일당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지만, 사실 그가 도망치는 대상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심리적 공포일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을 포함한 많은 장면에서 자동차 소리가 등장한다. 여기서 자동차는 언제나 높은 데시벨과 함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동차는 언제나 ‘외부’에 존재하고 있는데, 영화는 베리가 느끼는 ‘외부’에 대한 공포감을 자동차를 이용해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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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베리에게 다가가는 카메라다. 누나의 집에서 그의 혼란이 극도로 치닫는 과정을 살펴보자. 누나들의 소음. 그 안에 섞인 베리의 어릴 적 치부, 베리의 소개팅 이야기. 이러한 사운드가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카메라는 베리에게 다가간다(트랙 인).

 

해당 카메라의 동선은 베리의 스트레스를 극대화 시킨다. 카메라가 베리에게 다가감(트랙인)으로써 베리는 화면에 서서히 갇히게 되고, 이때 그는 프레임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렌즈의 밀착은 그를 관찰 당하는 대상으로 만든다. 앞서 말했듯 베리는 언제나 자신을 숨기려는 인물로, 이러한 연출방식은 그의 혼란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외에도 영화 곳곳에 그의 외로움과 불안정함이 드러난다. 베리가 식탁 의자에 앉아 폰섹스 전화를 거는 장면에서, 베리가 의자에 앉아 있고 맞은편 의자는 비어있다. 이때 프레임 속 피사체 배치에 주목해보면, 화면 내 균형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비대칭적인 화면은 베리의 불안정함과 외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서 베리와 폰섹스 전화 간의 실체 없고 공허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베리와 레나


 

레나가 베리에게 처음으로 다가가는 (베리에게) 충격적이고, 기분 좋은 침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영화 오프닝에서 붉은 자동차가 굉음과 함께 도로를 뒹군 것에 대해 ‘영화의 시작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요란하고 충격적인 오프닝의 마지막에 레나는 따스한 햇빛을 몰고 베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이러한 오프닝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레나가 베리의 마음에 들어오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그 과정을 ‘펀치 드렁크 = 두들겨 맞아 정신 못 차리는’ 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영화의 서막을 알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는 베리가 외부에 대한 두려움(=Traffic acident)을 갖고 있으나, 사고 직후 따스하게 등장하는 레나처럼, 그의 마음이 언젠가 사랑으로 열리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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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예고했듯이, 서두에서 설명한 베리의 특징은 레나로 인해 모조리 반전된다. 베리가 레나에 대한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비대칭 화면은 레나로 인해 균형을 이루게 된다. 레나와 베리의 투샷은 언제나 측면에서 촬영되는데, 이때 둘은 데칼코마니와 같은 대칭을 이룬다. 하와이에서의 재회 장면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을 그림자로 보여줬다는 점과 그들 사이로 다양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지나간 점에 주목 해야 한다. 이는 베리가 내면적으로(=그림자) 레나를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연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베리의 최종 무기였던 전화기도 마찬가지이다. 베리는 전화기 뒤에 숨어 도망만 다녔지만, 어느새 전화기를 든 채 사무실을 뛰쳐나와 악덕 업체를 찾아가기까지 이른다. 전화기 외에도 그의 사무실엔 오르간이 있다. 오프닝에서 베리가 ‘오르간’에 관심을 갖게 되는 타이밍은, 절묘하게도 레나가 그의 사무실을 방문한 직후이다. 길가에 놓여 있던 오르간은 어느새 베리의 사무실에 놓인다. 그의 내면과도 같은 사무실에 말이다.

 

오르간의 아름다운 소리는 영화 전반적으로 깔리는 정신없는 사운드와 상반된다. 오르간은 베리가 레나에게 받은 따스한 마음이 분명하다. 오르간은 러닝타임 내내 사무실에 숨겨져 있지만, 후반부에서 베리가 그것을 들고 레나에게 간다. 이때 베리는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것들을 레나에게 고백하는데, 오르간의 전달은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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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색깔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펀치 드렁크 러브‘는 아나모픽 렌즈로 인해 발생하는 플레어(이미지 안에 한줄로 된 여러개의 원이나 고리가 생기는 현상)에 주목해야한다. 베리의 푸른색은 영화 전반부에 깔려 있지만, 신기하게도 색깔이 나타나는 지점마다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영화 초반부 베리의 주변에 파란 플레어는 그의 외로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베리가 악덕 업체에게 얻어 맞고 도망갈 때, 그의 주위에 생기는 푸른 플레어와 상가 빛은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빨간 옷을 입은 레나를 만난 후 베리의 넥타이가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한 것처럼, 그의 주변에 맴도는 파란 빛들은 레나를 만나면서 또 다른 의미로 변한다. 베리와 함께 있는 레나에게 푸른 플레어가 잔뜩 겹칠 때, 베리와 레나가 서로 깊은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와이에서의 장면도 빠질 수 없다. 베리에게 하와이란 철저한 ’외부‘이다. 언제나 사무실에 숨어 있던 그가 레나를 위해 하와이로 향한다. 하와이는 베리의 공간이 아니기에, 공간적 미장센에서 파란색 피사체를 찾아 보기 힘들다. 하지만 레나의 호텔 방, 레나와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베리의 파란색 플레어가 발생한다. 결국 겁쟁이 베리가 사랑을 위해 외부로 자신을 끌고 나왔으며, 끝내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에 레나를 다치게 한 악덕 업체 보스에 맞설 때, 베리의 후광으로 비치는 파란 빛들이 그를 강인하게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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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베리가 레나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레나도 베리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베리는 레나를 위해 -어디든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레나도 –같이 가요-라고 말한다. 필자는 베리를 중심으로 글을 다루었지만, 영화는 베리와 레나가 주고 받는 관계를 균형 있게 보여준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중요하듯, 우리는 엔딩 크레딧에도 주목해야 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의 엔딩 크레딧은 다양한 색깔이 섞여 있는 추상 미술이 연속된다.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베리와 레나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갈색, 노란색, 다양한 색깔이 섞인 화면이 연속된다.

 

여기서 주인공들의 색깔 외에 다양한 색깔이 나타나듯, ’펀치 드렁크 러브‘는 베리와 레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그 알 수 없는 힘은 때론 우리를 용기 있고, 강인하고, 사랑스럽게 바꿔준다. 이것은 그 ’펀치 드렁크‘한 현상을 겪고 있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이다.

 

 
[김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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