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의 마침표를 위해. - ‘아무튼 출근’ 장례지도사 편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9.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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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초반. 어린 나이는 아니더라도 아직 젊은 나이에 속해 있다. 그래도 겉모습, 체질과 체력, 내면 등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나 관점도 변했다.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볼 때는 부러움이 밀려왔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나 감정을 느꼈는데도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지금의 내 나이에 머물 수 있음에 고마워하고 있다. 풋풋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젊음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이이다. 무엇보다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의 나를 그리워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부쩍 많이 하는 것을 보면,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며 겪는 변화와 감정을 마주할 때 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이 떠오른다. 두 분이 느끼는 여러 변화와 감정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것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걸까.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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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죽으면 화장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야. 오래 사셔야지.”라고 말했다.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불에 타 죽는 것 같고, 두 번 죽는 것 같아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던데, 괜찮아?”라고 물었다. 평소와 다른 태도인 나를 보면서 좀 놀랐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언젠가는 겪어야 할 부모님과의 이별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왔을 때, 자식에게 바라는 것을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얼마 안 돼서 우연히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의 작년 방송분을 보게 됐다. 장례지도사의 업무일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방송이나 글을 접할 때마다 내 죽음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튼 출근’의 장례지도사 편을 시청할 때는 내 죽음보다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날은 복선이었던 걸까.


그 방송을 보면서 부모님의 죽음을 완전히 마주했으며, 처음으로 현실적인 부분까지 접근했다. 부모님의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맏이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이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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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출근’ imbc 홈페이지

 

 

‘아무튼 출근’의 장례지도사 편은 권민서 씨의 업무일과를 보여주면서 장례지도사의 하는 일을 세밀하게 알려줬다. 임종 후 삼일장으로 치러지는 일반적인 장례를 총괄하는 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례지도사의 주 업무다. 사망부터 입관, 발인 등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한다. 부수적인 업무는 행정업무로 장례용품 재고 관리, 수수료 관리, 정산 업무 등을 한다.


고인이 편하고, 좋게 갈 수 있도록 꼼꼼히 신경 써 주고, 유가족이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지도사의 손길과 관심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일이지만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다. 장례지도사는 단순히 장례를 총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적으로도 든든한 존재이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등본상에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시신 포기각서를 쓴 경우를 뜻하는 무연고자에게는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장례지도사 권민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마지막 복지는 장례다. 어쨌든 마지막을 담당하는 사람들. 죽음은 항상 삶 속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멀리할 것도 아니고 등한시해서도 안 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서 밀어낼 존재도 아니거든요. 누군가는 생을 위해 일을 한다면, 누군가는 생의 끝에 있는 최전선, 죽음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의 삶이 끝나야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모든 분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한마디 덕분에 처음으로 죽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생과 죽음 모두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만큼 생과 죽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방송 덕분에 달라진 장례문화도 공부할 수 있었다. 웰다잉으로 자신의 장례를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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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송을 시청자로서 보기도 했지만, 세월이 흘러 유가족이 될 사람으로서 시청했다. 사망부터 발인까지 어떻게 진행되고, 고인에게 어떻게 대하며, 어떤 부분을 신경 쓰는지 꼼꼼하게 봤다.


권민서 씨의 말처럼 죽음은 항상 삶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멀리하거나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내 죽음은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기다 못해 난도질하는 것처럼 아프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건 잊어버리고 피하는 것도 좋지만, 무조건 그럴 수 없다. 잊어버린다고 잊히지 않는 게 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모님과의 이별의 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얼마 안지나 죽음에 관한 방송을 보면서 언젠가는 겪어야 할 부모님의 죽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플 것이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자신이 없다. 그 순간이 최대한 늦게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중요한 건, 소중한 사람의 죽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꾸고, 익숙하지만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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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기

추억을 기록하기

그 사람이 원하는 마지막은 무엇인지에 관심 가져보기


이 세 가지는 언젠가 겪게 될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이를 수 있다. 대신 나중에 꺼내 볼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이 다른 사람보다 많고, ‘있을 때 잘할걸’이라는 후회도 덜할 것이다. 이는 그리움이나 슬픔에 사무칠 때, 큰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다. 어쩌면 불행 속 작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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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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