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류와 시멘트, 땅 그사이의 여정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영화]

낯선 나라 칠레와 더욱 낯선 대안 영상예술
글 입력 2022.08.3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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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할 때 우리는 '대안'이라는 말을 쓴다. 대안에는 새롭다는 의미에 그 방점이 찍히는 만큼 주류의 흐름이나 고전적 문법을 벗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대안 영상예술이란 기존의 대중 영화와 상업 예술이 고수하던 주제적, 형식적 틀을 탈피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영상 예술을 일컫는 것이다.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네마프Nemaf)는 매년 8월 열리는 탈 장르 대안 영상 미디어 예술축제로 대안영화, 디지털영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등 뉴미디어아트 영상과 전시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제다. 2000년에 시작해 올해로 22년째 진행되고 있으며 해마다 특정 주제와 슬로건을 정하여 작품을 선별해 전시 및 상영한다. 올해의 주제는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이다. 기존 미디어 매체에서 인간 중심적 시선으로만 비추던 '자연'을 보다 넓은 개념으로 확장해 모든 자연적 존재들을 탈권위적이고 역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네마프2022는 8월 18일부터 26일까지 메가박스 홍대, 서울 아트시네마, 서교예술실험센터, 언더독 뮤지엄 등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20일인 토요일 저녁에 홍대 메가박스로 향했다.

 


사진_포스터_네마프2022.jpg

 

 

 

처음 접한 칠레의 영상 예술 - 칠레 비디오 예술 특별전2: 지형도는 오류, 불은 자유, 영화는 연기


 

난생처음 가보게 된 영화제가 대안 영상예술제인데 심지어 일정에 맞는 시간대가 낯선 나라인 칠레 비디오 예술 특별전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스스로 칠레의 비디오 예술을 접해볼 수 있겠는가?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6시부터 약 1시간가량 칠레의 영상 작품 9개가 연이어 상영되었다. 짧게는 2분 남짓에서 길게는 15분 정도 분량의 단편 영상들이었다.


첫 번째로 상영된 <알티플라노>는 귀를 찌르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황량한 붉은 사막의 풍경과 호수 등을 여러 이미지로 보여 주었다. 작품은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 북서부 전통 지역인 아타카메뇨, 아이마라, 칼차키 디아귀타의 안데스산맥에서 촬영된 것으로 고대의 염전, 화산 사막, 유색 호수로 이루어진 지질학적 공간 내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상 내내 들리는 소리는 화산, 간헐 온천, 칠레 청고래 소리 등의 초저주파 불가청음에서 발생한 음악적 파노라마로 색과 형태가 충돌하는 영상 이미지와 결합하여 생생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냈다. 영상 내내 고동치고 움직이는 풍경은 각종 채굴과 지열 개발 등으로 위협을 받는 고대의 땅이 털어놓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증언이다.


다음으로 이어진 작품 <리튬>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벌어진 에코사이드에 대한 시각적 여정을 다룬다. 영상에 뿌옇게 처리된 형형색색의 것들은 얼핏 추상화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실제로는 사막에 산처럼 쌓인 버려진 옷들이다. 남미에서 팔리지 못한 중고 옷과 새 옷들은 이곳 아타카마 사막이 종착역이다. 이곳의 풍경을 통해 빠르게 만들고 쉽게 버려지는 패스트패션의 환경 오염 문제를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뼈>이다. 마치 흑백 인형극을 보는 듯했는데 한 소녀가 인간의 시체를 사용해 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소녀는 시체의 뼈에 근육과 살을 붙이고 각각 해체되어 있는 신체를 이어 붙여 두 명의 남성을 되살린다. 그중 한 남성을 신랑으로, 다른 남성을 주례로 만들어 마치 결혼식을 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결혼을 약속하는 서약서와 같은 서류에 서명을 하는 모습도 나오는데 마치 되감기를 한 듯이 서명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워진다. 영상의 두 남성은 권위적이고 과두정치적인 칠레 건국의 중심인물 디에고 포탈레스와 하이메 구스만이다. 그로테스크한 이 의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오래전 칠레를 건국한 두 인물을 소환한 소녀는 무엇을 되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촬영된 작품 <뒤쫓다>는 다양한 앵글에 비친 사람과 사물, 풍경 이미지 등을 빠르게 전환하여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은 결정, 선택, 결과, 상황 및 시간에 대한 생각을 탐구하는 여정을 다룬 것으로 매우 유사하지만 매우 다른 경로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공유하는 사물과 사람 및 장소, 그들과의 연결고리, 그리고 환경을 살펴본다.


이외에도 기억과 정체성, 퀴어적 욕망의 교차점을 탐색하는 작품 <라 메사>, 벽돌과 양철, 판지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 발파라이소가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이미지를 구현한 작품 <발피> 등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연이어 보다 보니 작품 간의 맥락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고 심지어는 개별 작품의 내용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칠레의 역사나 정치적 상황, 문화 등을 잘 알고 있었다면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데 많이 아쉽다. 개인적 견해로는 9개의 작품이 모두 여정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의 주제인 '자연' 안에 독립적인 일부로 존재하는 인류와 문명, 국가, 그리고 전체를 이루는 자연의 시간적 흐름과 여정을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았던' 낯선 경험


 

영화제도, 대안 영상도, 심지어는 칠레의 예술도 모두 새롭고 낯설었다. 평소에 익숙했던 영화의 감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영화관을 빠져 나왔다. 전체 서사가 중심이 되어 화려한 볼거리나 숨겨진 미장센의 의미 등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일반적인 대중 영화들과 달리 훨씬 더 직관적으로 감상했다. 작가들의 구체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영상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보다는 시각적 경험과 나의 감정에 집중하며 작품을 즐겼기 때문이다. 대안 영상이 가진 의의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작가들이 영상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듯 관객들도 기존의 감상법을 반드시 따르기보다 자유롭게 보고 느끼며 감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번에는 일정상의 문제로 한 타임밖에 감상하지 못했지만, 내년 네마프에서는 올해보다 더욱 풍성하게 작품들을 즐기고 싶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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