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많은 가명, 수만장의 셀피 -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글 입력 2022.08.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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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 같은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를 만나고 왔다.


2007년, 역사책에 쓰일 과거 거리의 사진을 찾기 위해 집 앞 경매장을 찾은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는 그곳에서 인화되지 않은 필름 수십만 장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낙찰받게 된다. 그 안에는 다량의 사진이 담겨있었고, 사진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오직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이름, 비비안 마이어뿐이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갔고, 그 과정 중 필름 일부를 스캔하여 자신의 SNS에 업로드 하였다. 수 많은 사람들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열광적으로 반응하였고, 그녀의 사진전에는 당시 최다규모의 관객이 동원되었으며, 전 세계적인 열풍이 일었다.


그녀는 정말 미스테리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무명의 사진작가라고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직업은 세 아이의 유모였다. 이 외에도 가정부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며, 노년에는 자신이 돌본 세 아이가 집을 마련해주어 그곳에서 지내었다.


전시를 통해 만난 그녀의 사진은 그녀처럼 사람을 이끄는 묘한 매력이 담겨있었다. 거리 위 사람들의 자연스러움과 다채로움을 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은 사람들의 눈길을 이끌었다.


이번 글에서는 전시를 보며 느꼈던 생각 세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고화질로 만나는 20세기 미국의 어느 멋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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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20세기의 나날을 담고 있다. 그녀의 사진에 특별한 연출은 없지만 거리의 생생함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감정이 담겨었다. 사실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20세기의 사진이기에 당연히 낮은 화질의 빈티지 느낌이 가득한 흑백사진을 떠올렸다. 그러나 전시에 걸린 사진들은 당장 어제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엄청난 고화질을 자랑했다. 지금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데도, 옛날 흑백 사진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편협한 시각으로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작품을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는 '사진이 너무 고화질이라 20세기의 느낌이 안 나'라며 친구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득 드라마 '스물하나 스물다섯'이 떠올랐다. 드라마를 볼 당시에도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인데 너무 고화질의 영상에서 이질감을 느꼈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90년대 영상은 모두 화질이 좋지 않았고, 영상의 비율도 달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의 영상이 기술적인 문제로 현재보다 화질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지,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낮은 화질의 영상처럼 흐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도 20세기를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현대의 사진느낌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녀가 살았던 당시도 사진과 같은 고화질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고화질로 인쇄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그녀가 살면서 두 눈으로 보았던 당시의 시대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녀의 작품이 한 발짝 더 생생히 다가왔다.

 

 

 

2. 수많은 가명, 수만장의 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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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미상, 날짜 미상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사진은 바로 그녀의 '자화상'이다. 이번 전시 소개에는 비비안 마이어를 '셀피(Selfie)의 원조'로 소개하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가 자신의 얼굴이 다긴 수만 장의 셀피를 남겼다는 것이 처음엔 아이너리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자화상은 굉장히 다채로웠다. 상점의 유리, 거울, 잔디밭의 스프링클러 등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셀피 속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전체적인 사진은 재기발랄함이 느껴질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현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보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소중한 존재인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자신이 더 가깝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그녀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3. 과연 비비안 마이어는 유명해지기를 바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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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보며 인상주의 화가 고흐가 떠올랐다. 세상을 떠난 후에야 명성을 얻었던 고흐처럼, 비비안 마이어도 생을 마감한 후에야 그녀의 사진이 조명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수집광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가명을 쓰며 자신을 숨겼지만 수많은 자신의 얼굴사진을 남겼고, 스스로의 사진실력을 자각하고 있어 동업편지를 썼지만 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유모인 동시에 돌연 아이들을 폭행하며 광분하기도 하는 유모였다. 나쁜 고용주에게 걸려 고생하며 자신을 빈민층이라고 생각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혼자 세계여행을 떠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가족들조차도 비밀에 싸였고, 평생을 사랑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았으며, 외로움이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주변인들이 서술하는 그녀를 돌아보면, 아마도 그녀는 우울증 또는 강박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사진은 행위를 넘어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또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비비안 마이어의 삶과 사진은 왜 그리 꽁꽁 숨겨져 있었을까?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지금,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


전시관람을 마치고 남은 질문은 "비비안 마이어는 과연 유명해지길 원했을까?"이다.


그녀는 자기작품을 좋은사진이라며 동업을 제안하는 등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동시에 가명을 써가며 자신에 대한 것은 꼭꼭 숨기려 했다. 아마 이런 미스테리한 면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비비안과 그녀의 작품에 더욱 열광시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비비안 마이어 다큐에서 그녀의 지인들은 생전에 그녀에게 관심이 쏠렸으면 그녀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작품을 인정받는 것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이목을 받는 건 싫어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그저 그녀가 원하는 인생을 살다 간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고향까지 알아내다니 비비안이 화내겠는데요 남이 알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비비안 마이어의 수많은 양의 사진필름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녀의 사진을 넘어 삶까지 전부 파헤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남는다. 사진이 발견되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녀의 삶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속하여 아카이빙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비비안의 이미지를 지속적 메이킹하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줄 알았을까? 대답해 줄 이는 없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원했을까? 이 역시도 대답해 줄 이가 없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만나고, 그녀의 사진을 통해 그녀를 만난 것은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녀의 삶이 공개되는 것에 걱정을 느끼는 모순된 감정이 뒤엉킨 비비안 마이어 전시의 리뷰를 마친다.

 

 

[김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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