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테크노 사피엔스의 내면 [영화]

글 입력 2022.07.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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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인류, 테크노 사피엔스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을 제안했다. 이는 겉모습을 뜻하기도 했지만 로봇이 인간과 동일시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 '애프터 양'은 테크노 사피엔스 양의 물리적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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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과 동시에 4인 가족 댄스대회를 불사르던 양이 작동을 멈췄다. 블랙아웃처럼 뚝 단절된 검은색 화면. 금방이라도 심장이 뛰었을 양의 가슴을 절개하자, 차가운 금속 전선과 메모리 뱅크를 마주했다.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와 달리 부패가 시작되었고, 제이크와 가족들은 빠른 시간 내에 그를 수리해야 했다. 수면도 취하지 않는 안드로이드가 생(生)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다. 오히려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양의 몸뚱이는 고장난 인형과도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가족사진의 앵글에 담겨있던 그가 ‘물건’처럼 느껴졌다.


양의 외형은 분명한 인간이다. 그러나 '고장'났고 '부패'했다. 기계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고루 갖춘 휴머노이드는 윤리적 경계마저 모호한 느낌을 주었다. 인간의 사후처럼 부패하고 마는 휴머노이드의 실지적 가치는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 것인가.

 

영화 속에서 양의 이타심 가득한 따뜻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중국 가정에서 입양된 미카에게 가족의 탄생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제이크의 가족은 각기 다른 뿌리로부터 뻗어나온 다문화 가정이다. 마치 인간 세계에 쉽사리 섞이지 못하는 안드로이드처럼 현대에도 그들을 대하는 차별은 여전했다. 문화 차이로 인한 정체성이 혼란했고, 제이크의 가족 역시 미카를 위하여 '문화 테크노 사피엔스' 양을 들이게 되었다.

 

미카는 '진짜 가족'에 대하여 묻는다. 인종도, 문화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여전히 혼란해했다. 양은 이것을 종(種)의 접목으로 비유했다. 그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하나의 품종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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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다문화 가정의 유대감을 불어넣는 매개체, 그 이상의 존재였다. 양은 미카를 메이메이(妹妹)로, 미카는 양을 꺼거(哥哥)로 부르며 문화적 유대를 잇는 동시에 가족으로서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양의 부재는 자리비움이다. 비싼 돈 주고 데려온 안드로이드 대신 함께 가족 댄스대회를 참가할 '꺼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미카에게 키이라가 마침내 제안한 것은 3인 가족 댄스대회였다. 남겨진 이들에게 양은 어떤 존재였을까.


영화는 양의 메모리 뱅크,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속가능한 아름다움과 영원함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알파, 베타, 감마에 이르는 양의 기억 섹터 마다 소중한 기억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라는 로봇이 갖는 차가운 물성과 달리 오로지 양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는 기억들은 내내 따스했다. 사랑스럽게 뛰노는 미카의 모습, 난반사하는 빛의 흐름과 푸르른 녹색의 정경.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하는 양의 얼굴.

 

짧은 생을 살다가 가는 인간과 달리, 많은 세대를 지나온 양은 많은 이들의 곁을 지켜낸다. 미카는 새롭게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이었고, 끝내 놓지 못한 인연은 복제인간 에이다가 될 것이다. 제이크는 그를 보며 '양도 사랑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많은 SF영화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그들은 주어진대로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기도 했다.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에 따르는 그들도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테크노 사피엔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인간의 존재와 존재 가치를 들여다보려 한다.


 

 

내 알고리즘의 목적은 당신의 행복이에요, 영화 <아임 유어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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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완벽한 배우자를 대체하기 위한 테스트 휴머노이드이다. 영화 '아임 유어 맨'은 나날이 감소하는 출산율을 비롯하여 비혼 여성이 증가하는 시대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영화였다. 내게 결혼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구속됨을 인정하는 귀결 단계다. 결단코 안드로이드 배우자를 신뢰하기까지 섣부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늘 직면해 있었다. 해결책은 정해져 있지만 알고리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실패로 끝나버린 여러 번의 사랑 끝에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행복했으면 좋겠다면서, 행복하자면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 알고리즘의 목적은 당신의 행복이에요."

 

사랑은 원래 알고리즘이다. 제게 이익이 되는 순간을 택하기도 하고 희생하기도 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맞춤형 배우자 안드로이드 톰은 그 끝에 언제나 상대의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인간과 그의 다른 점이었다.


수포로 돌아간 연구 탓에 이유 모를 상실감에 휩싸인 '알마'는 톰에게 무작정 성관계를 요구한다. 안드로이드이기에 주인의 명령어에 반응하여 즉각 처리하기 마련이었으나, 톰은 달랐다. 인간을 걱정하는 배우자-로봇은 공장으로 돌려보낸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에도 아랑곳 않는다. 마치 알마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알고리즘이 단순히 주인의 명령어에 복종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어땠을까. 톰은 알마를 위해 제멋대로 살림을 뒤집었다가도 원하는 대로 되돌려 놓았다. 단 11분이면 충분했다. 주인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행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마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은 진심을 읽는 안드로이드라니.

 

처음 대면한 프로그램에서 톰은 알마에게 테스트 안드로이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알마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톰은 사랑을 갈구했고 알마는 서로 관여하지 않을 것을 권했다. 알마는 정중했고 일관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격분하며 톰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톰은 알마의 감정을 읽고 진정한 내면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인간은 때론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고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으며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랐다. 인간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미묘한 진심을 톰은 알아차린다. 평범하지 않지만 여느 연인처럼 감쳐두었던 감정을 드러내고 마침내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은 일반 사랑을 닮아있다. 이런 사랑이라면 그가 심장이 뛰지 않는 배우자일지라도, 내 행복을 맡겨보고 싶다.


 

 

인간을 꿈꾸는 로봇, <에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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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로봇은 가재도구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감정을 주입하여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휴머노이드라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에이아이'는 내게 강한 슬픔을 안겨준 영화였다. 아들 대신으로 데이비드를 입양한 스윈튼 부부는 친아들 마틴이 퇴원하자 그를 깊은 숲속에 투기하듯 버렸다.

 

이 영화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데이비드의 마음 때문이었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에 그치고 만다.

 

영화의 배경은 천연자원이 고갈되어 가던 미래의 지구이다. 인공지능 A.I.에게 봉사 받는 삶에 익숙해진 지구는 인간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역할까지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마치 친아들처럼 사랑 받았고, 오래된 골동품을 내다 버리는 것처럼 버려졌다.


데이비드가 느끼는 한계는 충분히 사랑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짜'가 아닌 대용품이라는 것.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에게 가혹한 것은 다시 사랑 받을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설명서를 포함했어야 했다.


사랑받았던 기억을 지닌 채 '진짜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데이빗은 '피노키오'의 모험과 닮아있다. 소원의 주체가 제페토 할아버지에서 피노키오 본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동화와 같은 결말로 이어지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간이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데이비드 본인 뿐이었으니까.

 

데이비드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갖게 되기까지 스윈튼 부부의 노력이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 친아들 대신으로 데려왔지만 사랑하는 동안에는 데이비드는 부부에게 친아들이었을 테다. 데이비드가 요정에게 소원을 비는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인간 보다 사랑으로 가득한 A.I.는 가재도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휴머노이드를 다루는 숱한 영화들이 추구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인간의 모순일 수도 있겠다. 관계를 맺는 것은 언제나 목적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 친목을 도모하거나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서. 그 목적과 쓰임이 바래져 더는 불필요한 순간이 오더라도 상호 유기적 관계는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소모품 투기와 같은 이별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로봇과 인간이 상호적인 관계가 되려면 대체품이 아닌 하나의 개체 그 자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외형적 모습을 닮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재도구 그 이상의 가치가 되었으면 한다.


사랑은 생명체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이다. 인간을 위하는 감정을 불어넣어 설계된 프로그램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쩌면 안드로이드의 감정은 그에게 프로그래밍된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사랑하라, 알고리즘에 따라 결괏값을 이행하는 것뿐. 그러나 오고 가는 감정 속에서 그들은 대체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였다. 작동이 멈출지라도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는 간절함을, 본래의 쓰임이 사라졌다 해도 그들과 나누었던 감정은 대체될 수 없음을,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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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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