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아 놓고 싶다 - 산책가의 노래 [도서]

글 입력 2022.07.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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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또래보다 산책을 자주 한다. 이는 나와 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어르신의 영향이 크다.

 

밖에서만 볼일을 보겠다는 어르신의 고집에, 우리 가족들은 못해도 하루에 5회 이상 어르신과 바깥바람을 쐰다. 한번 나갔다 하면 주구장창 뛰어다니던 어르신도 속절없는 세월을 피하지는 못하셨는지 몇 년 전부터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는 없던 취미가 새로 생겼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강아지와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강아지와 하는 산책은 여러 장점이 있다. 그중 두 가지를 말하자면, 우선 새로운 시야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할 때에는 가까이에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을 동시에 봐야 한다. 3초 뒤 강아지가 앞발을 내디딜 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이 있는지, 누군가 먹다 흘린 간식 부스러기가 있진 않은지 (우리 집 어르신은 365일 배고파 하신다), 혹시나 가래침이 떨어져 있는지 꼼꼼히 봐야 한다. 반대로 멀리서 친구 강아지가 오는지 (우리 집 어르신은 개를 보면 달려드는 버릇이 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어르신이 오고 계신지 살핀다.


덕분에 평소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장소가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 항상 비슷한 코스로 다니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망울진 꽃봉오리가 오늘은 활짝 펴 있고, 내가 잠든 새벽에 소나기라도 내렸는지 몇 시간 전에 걸었던 흙길이 질퍽해져 있다. 내가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꽃들은 어느 날 폈다가 졌을 것이고, 흙길도 내가 모르는 새 비를 머금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퍽퍽한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속으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다. 이건 굉장히 큰 장점이다. 운동하는 친구들이 운동의 장점으로 흔히 말하는 것과 같은 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방금 전까지 어떤 감정에 얽매여 있었다 해도 당장 내 손에 쥐여진 것은 산책 줄이다. 내가 이걸 잡고 있는 이상 나는 내가 데리고 나온 이 생명체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나를 괴롭히던 일상으로부터 거리가 벌어지면 이제 풍경만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초등학교의 교정도 나무가 우거진 공원도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연속성 있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모든 장면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그저 찬찬히 걸으며 그것들을 감상할 뿐이다. 완전히 나와 분리된 객체로서든 혹은 나의 경험을 연관지어서든.

 

그렇게 한껏 거닐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든 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그 찰나가 나를 괴롭힌 모든 것들과 나의 사이를 조금 둔하게 만들어준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고, 생각한 것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었던 게 된다.

 

<산책가의 노래> 전반에 걸쳐 자신이 마주한 모든 것들을 쉬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긴 장마 사이 마주친 뱀도, 누군가로 인해 다시 떠오른 어느 기억의 한 페이지까지도. 모든 페이지마다 섬세하게 묘사된 문장과 그림을 감상하고 있자면,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영원히 잊힐 것들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 활자와 물감으로 남기고 말겠다는 작가의 굳센 의지마저 엿보인다.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두 편의 글과 함께 이 글을 줄이겠다.

 

*

 

<담아 놓고 싶다>


꽃은 시들고 과일은 썩는다.

해는 지고 바람은 분다.

담아 놓고 싶다.


닿을 듯 어른거리던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다시 산산이 흩어진다.

담아 놓고 싶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이고

가만히 느끼면 알 수 있는 것을

담아 놓고 싶다.

 

 *

 

<붉은 클로버>

 

당신이 나를 보고 웃던 그 순간

내 마음에 꽃 한송이 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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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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