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이트 클럽: 나를 받아들일 때 - 2부 [영화]

글 입력 2022.05.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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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이어지는 이 시점에서, 잠시 정리해보자. 말라와 타일러는 분명 닮아있다. 아무리 봐도 돈 주고 사 입은 것 같지 않은 누더기나 남 눈치를 보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또한 둘 다 잭의 환상에서 만들어진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 다르다. 타일러는 소심한 잭과 반대로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며, 그렇기에 잭이 늘 탈출하고 싶어 했던 지겨운 일상을 박살내줄 구원자로 설정돼 나타난 또 다른 자아이다. 타일러는 ‘폭력’을 이용한 ‘해방’, ‘파이트 클럽’을 통한 ‘유대’를 제안한다. 물질적인 것을 최고로 평가하고, 그런 것만 전시하는 미디어, 이에 순응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세상을 파괴하려는 극단적 폭력 시위를 고안하기까지 한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뉴욕의 은행과 여러 건물을 폭파하는 ‘메이헴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와 달리 말라는 잭에게 진실한 포옹을 해줄 수 있는, 때론 로맨틱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바라던 이다. 실제로 말라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잭이 본인의 현실을 직면하고, 말라-실은 잭 본인-과 ‘진정한 유대’를 나눠 제대로 된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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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을 만나다



초기의 파이트 클럽은 서로 맞고 때리며 직접 살아있음을 감각하기 위해 시작된다. 잭과 타일러가 선술집 앞에서 싸웠던 것처럼, 이전까지 죽지 못해 살던 잭에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바로 그 주먹다짐을 위한 모임인 것이다. 심지어 싸움을 위한 규칙도 존재한다.

 

 

‘제1, 2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제3조- 누군가 "그만"이라고 외치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땅을 치면 그만둔다, 제4조- 싸움은 1대 1로만 한다, 제5조- 한 번에 한 판만 벌인다, 제6조- 상의와 신발은 벗는다, 제7조-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운다, 제8조- 여기 처음 온 사람은 반드시 싸운다.’

 

 

이런 괴짜 같은 모임에 참여할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파이트 클럽은 전역에 지부를 두는 등 완전히 성행한다. 잭이 ’파이트 클럽은 우리가 세상에 준 선물이었다’라고 말할 만큼, 파이트 클럽은 잭처럼 삶의 의미를 잃은 이들에게 매혹적인 취미이자 충격적인 일탈로 다가온 것이다. 심지어 잭이 다녔던 고환암 모임의 환자도 파이트 클럽의 회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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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파이트 클럽을 좋은 의도로 볼 순 없겠다. 허나, 단편적이지만 분명 삶의 새로운 자극으로 작용했기에 많은 이들이 모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파이트 클럽은 메이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집단으로 변모한다.

 

책 162쪽에서는 메이헴 프로젝트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제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메이헴 프로젝트뿐이다. 메이헴 프로젝트는 지구가 원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인류를 동면시키고 진정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무정부주의를 정당화시키는 거야. 상상해 봐. 백화점 쇼윈도를 따라 말코손바닥사슴을 쫓는 자신의 모습을. 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으로 덮여 있어. 시어스 타워를 덮고 있는 손목 굵기의 칡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거야. 잭과 콩나무처럼 말이야. 흠뻑 젖은 숲을 지나면 아주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어. 버려진 8차선 간선 고속도로의 카풀 차선 위에서는 사슴 고기를 말릴 수 있고. 타일러는 바로 이게 메이헴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했다. 완벽하고 신속한 문명 파괴.’


이렇듯 파이트 클럽은 단순히 잭을 포함한 회원들에게 일탈을 넘어서 그 근본으로 들어가, 일상의 권태를 만들어낸 물질주의와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사회 전체를 모두 파괴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즉, 타일러가 잭과의 첫 만남에서 비누를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설명하며 비누와 폭탄은 원료가 같으므로 폭탄은 세상을 정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파이트 클럽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타일러는 “비누만 충분하면 뭐라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했던 대로 비누 폭탄을 이용해 ‘완벽하고 신속한 문명 파괴’를 이룩하기로 계획한다. 이렇게 파이트 클럽은 테러 조직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결국 타일러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파이트 클럽은 잭에게, 파이트 클럽의 회원들에게 그저 또 다른 도피처가 될 뿐이다. 이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개인 문제로 시작된 싸움을 이 세상에 탓을 돌려 비겁하게 내면의 이야기로부터 다시금 고개를 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주의 허상 위에 세워진 세상의 문명을 파괴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안이한 꿈.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라는 모 만화의 명언이 들어맞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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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잭



잭은 낙심한다. 파이트 클럽의 성격이 테러 조직으로 변질되자 잭은 메이헴 프로젝트를 거부하나, 타일러는 오히려 잭을 배제하고 작전을 강행한다. 이때 말라는 잭에게 손 내민다. 사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잭의 곁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 주고 그의 말을 믿어주는 인물은 말라 뿐이다. 말라는 1부에서 설명했듯, 잭과 환자 모임에서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공유한 사이로, 잭이 회피하고 싶은 현실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는 동시에 잭이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이자, 그에게 가장 필요한 해답을 말라와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잭과 말라는 근본적인 공감대- 진정한 유대가 이미 형성된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말라를 조우한 잭은 자신이 가짜라는 진실에 대한 반감으로 또다시 불면에 빠져들며,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외면하기 위해 또 다른 나를 만든다. 나의 이상형, 워너비- 바로 타일러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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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잭은 자신의 상상에서 분리해낸 타일러와 교감하고, 의지하며, 동일시했기에 파이트 클럽이 초기 방향을 잃은 것은 물론, 자신을 내친 타일러에게 절망한다. 아울러 잭은 타일러가 그저 자신감 없는 저 대신 자기 삶을 구원해줄 환상의 존재, 다시 말해 자신이 만든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다. 또한 파이트 클럽은 그 시작을 함께했음에도, 제대로 찾은 자유라고 생각했음에도, 처음으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던 집단임에도 그를 소외시킨다.

 

잭은 이전까지 자기완성을 멀리하기 위해 방어기제로 창조된 타일러와 가까이하며 평화를 찾으려 했지만, 타일러의 존재 및 파이트 클럽은 안식처가 아닌 도피처였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지난날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에 부닥친다. 이유는 오직 하나, 지겨울 만큼 반복한 이야기- 진정한 자기완성을 위한 제일의 조건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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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라


 

여기서 다시, 말라는 타일러와 달리 잭과 궁극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인물이다. 더욱이 말라는 잭이 타일러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촉매제인 동시에 잭이 타일러를 거부하고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게 하는 방아쇠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오직 말라만이 잭과 ‘진정한 유대’를 나눌 수 있는- 어쩌면 더 나아가 ‘사랑’을 가능케 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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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타일러는 잭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메이헴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려 하자, 그 발단인 말라는 제거 하려 한다. 잭은 완전히 파괴의 철학만으로 가득 찬 타일러를 마주하고, 허황한 타일러의 존재는 물론, 그간 자신이 타일러라는 인격을 따라 해온 행동의 결말이 파괴적이고 분노적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에 회의를 느낀다. 또한 이윽고 잭이 원한 것은 ‘말라’- 잭 본인은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현대의 정체성 미아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제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과 관계 맺은 진정한 유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잭은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인 타일러를 죽인다. 저의 뺨에 총을 겨누면서까지 그렇게 한다.

 

말라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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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마침내 나를 받아들일 때


 

이 행동은 결정적인 잭의 변화를 보여준다. 잭은 이제 자신을 신뢰하고, 누구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를 생각해 직접 결단한다. 잭이 타일러를 삭제하면서 둘의 극단적이고 병적인 특성은 사라진다.


결국, 구원은 오직 나로부터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의 찌질하고 소심한 허물, 극단적으로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욕구, 타인과 화합하며 둥글게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까지. 입체적인 인간으로서 드는 마음을 모두 받아들일 때, 조각난 정체성이 통합돼 어디에도 치우쳐지지 않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더욱이 나를 믿고 신뢰하면서 진정한 유대를 나와 먼저 시작할 때,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도 건강하게 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에서 잭과 말라는 두 손을 꼭 잡고 폭발하는 뉴욕을 바라본다. 이렇듯 메이헴 프로젝트를 막진 못했지만, 잭이 "믿어줘. 모두 잘 될 거야. 우린 참 이상한 때 만났어"라고 말하며 말라의 손을 놓지 않는 해당 장면은 잭이 긍정의 내적 변화를 넘어 진정한 유대를 통해 진실된 정체성으로 거듭났음을 뜻한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쉽지 않다. 쉬울 리가 없다. 잭이 그랬듯 냅다 다른 정체성을 뒤집어쓰거나 단편적으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훨씬 간편하다. 그렇지만, 그건 오히려 불행과 후회로 돌아올 뿐임을 우린 이제 잘 안다. 덧붙여 잭이 쳇바퀴 돌듯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 자신을 정의할 수 없어 유령 같은 존재로 떠도는 순간은 분명 우리를 닮았다. 현대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게 영화와 원작 소설을 아울러 <파이트 클럽> 전체의 목적이었던 만큼, 잭의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우리를 비춘다.

 

그렇기에, 무조건 낙심할 필요 없다. 파이트 클럽에 가입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는 우리가 잭과 마찬가지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겁먹지 말고, 숨을 한 번 들이킨 뒤, 시작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가 보는 거다. 여기, 지금, 당장!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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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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