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취향] '인생영화'를 찾아 떠나는 모험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요?
글 입력 2022.05.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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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취향

: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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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기생충>이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 후보에 오르고 있을 무렵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로컬 시상식’이라 지칭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물론 아카데미 수상은 수많은 영화인들의 꿈이고 영광으로 여겨지지만, 결국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수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회원들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나치게 백인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좋은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인터넷에서 흔히 언급되는 목록도 비슷한 지적을 받곤 한다. 그러한 목록은 누가 어떻게 선정한 것인가. 다수의 선택을 받은 영화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화는 아니다. 명작들의 제목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누군가의 취향을 설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흥행 여부와 평단의 호평 여부를 각각 가로축 세로축으로 놓고 우리가 아는 영화들을 나열해 본다면 흔히 '인생영화'로 꼽히는 작품들은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은 동시에 흥행에도 성공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괴작들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인생영화 리스트를 가진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와 심리적 거리가 있는 영화평론가나 기자, 영화인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함께 글을 쓰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또 어떤 영화에 공감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궁금증에 질문을 던졌다. '매체에서 흔히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들 중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생영화는 무엇인가', '목록에는 없는 나만의 인생영화가 있다면 어떤 작품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영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상이 되는 영화의 조건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러기엔 영화 종류가 너무 방대해질 것 같아서 2010년 이후 개봉작으로 제한을 두었다. 20세기나 2000년대 영화에 비해 2010년대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응답해주신 19명의 에디터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우리에게 다가온 2010년대의 영화들


 

 

<소셜 네트워크>

<인셉션>

<케빈에 대하여>

<액트 오브 킬링>

<그녀>

<그래비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보이후드>

<캐롤>

<스포트라이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라라랜드>

<아가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셰이프 오브 워터>

<겟 아웃>

<로마>

<기생충>

<어느 가족>

<레이디 버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조조 래빗>

<듄>

<노매드랜드>

 

 

'매체에서 흔히 명작으로 꼽히는 다음 영화들 중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생영화는 무엇인가'라는 문항에 제시된 25편의 목록은 ‘bbc 선정 100대 21세기 영화’, ’더 가디언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 등에서 2010년 이후 개봉한 영화들을 골라내고 서로 겹치는 영화를 추린 후,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봤을 법한 영화들을 시대별로 골고루 뽑아 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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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목록을 작성하며 <기생충>과 <인셉션>, <라라랜드>가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다. 세 작품은 영화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알 정도로 많이 언급될 뿐더러 영화와 상관없는 맥락에서도 일반명사로 쓰일 만큼 일종의 '밈'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생충>은 해외 굵직한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팬데믹 직전 극장가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이고, <라라랜드>는 OST의 히트와 함께 수차례 재개봉을 했으며, <인셉션>은 유독 한국의 사랑을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 아니던가. 예상대로 세 작품은 각각 9표(기생충), 7표(라라랜드), 8표(인셉션)를 받으며 1위, 3위, 2위를 기록했다. 그 외에 4표 이상을 받은 작품은 <케빈에 대하여>, <그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가씨>,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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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뜻밖이었던 영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9표를 받으며 당당하게 <기생충>과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 10대 소년과 20대 청년의 풋풋한 사랑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표현한 이 영화가 <기생충>과 함께 1위를 차지한 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들의 특징적인 취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19명이 응답한 결과이므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전체의 취향을 보여준다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라라랜드>나 최근에 개봉한 다른 영화들보다 많은 표를 받은 건 눈에 띄는 지점이다.

 

 

 

나만의 인생영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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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에 없는 영화 중 인생영화가 있다면 알려달라는 항목에는 총 12명의 에디터님들이 자신만의 인생영화를 공유해 주었다. '2010년 이후 개봉'이라는 최소한의 조건만 있을 뿐, 장르도 국가도 제한이 없어서 겹치는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그 와중에 두 에디터의 선택을 받은 <데몰리션>과 <월플라워>가 눈에 띄었다. 이 밖에도 언급된 영화는 다음과 같다.

 

 

<어벤져스 시리즈>

<코다>

<마미>

<버팔로66>

<제로 다크 서티>

<데몰리션>

<오버 더 펜스>

<아주 긴 변명>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더 랍스터>

<소공녀>

<싱 스트리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월플라워>

<벌새>


*응답 내용 중 <델마와 루이스>와 <어톤먼트>는 각각 1991년, 2007년 작품으로 '2010년 이후 개봉'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아 제외하였다.

 

 

 

해당 영화가 인생영화인 이유를 알려달라는 항목에도 길고 짧은 여러 가지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의 인생영화를 향한 열정이 설명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중 일부를 공개한다.


 

박태임: <제로 다크 서티>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에 대해 ‘가장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특히 다큐처럼 건조하게 흘러가던 화면에 일순간 폭발하는 폭약씬이 정말 매력적인데요. <제로 다크 서티>는 여성 CIA요원이 오사마 빈 라덴 암살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과장된 연출이 없고 대신 인간이 열망하던 목표를 결국 이뤄냈을 때의 허무함이란 감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같은 감독의 <허트 로커>도 넘넘 좋은데 2008년 영화라 제합니다!)

 

 

김재훈: <오버 더 펜스> 

<오버 더 펜스>는 제 인생 처음으로 2회차, 3회차를 시도한 영화인데요, 영화 속 숨겨진 의미들을 찾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돌이켜보기 위해서기도 했습니다. 쉽사리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출되는 행동들, 그리고 모든 게 맞지 않아 어긋나버린 관계, 그것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긴 여정까지, 장면 하나하나가 제 눈에 계속 밟히더라고요. 이걸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후회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기록으로까지 남겨둔 영화입니다. 아직까지 영화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황인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연극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 현실-영화와 영화-연극이라는 두 층 사이에 관람객을 방황하게 하여, 오히려 온전히 그 안에 속해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좋았습니다. 나이듦에 대한 멋진 접근을 보여주는, 로케이션마저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준: <프란시스 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이 느껴지도록 끝나는 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다. ‘프란시스 하’는 그 중간에 해당된다고 한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미소를 띠며 살아가는 나름의 인생에 대한 방향성을 알려준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밀고 나가라고 말한다. 차갑고 악역으로 보이겠지만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친구도 필요하다. 잔소리하는 엄마도 필요하다. ‘프란시스 하’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타협’이란 것이 한 발짝 뒤로 양보하는 것일 뿐, 절대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영화다.

 

 

 

나에게 의미를 남겼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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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영화’라는 말도 곱씹을수록 묘한 측면이 있다.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를 본 직후에 가볍게 인생영화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항로를 바꿀 정도는 되어야 인생영화 자격을 부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생영화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다양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호준: 영화는 하나의 복합예술입니다. 스토리 전개에 따른 문학적 요소는 물론, 관객과 화면을 공유하는 시각적 요소와 그 흐름을 함께 소통하는 청각적 요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촬영 기법 및 구도, CG 등의 영상 기술과 효과음 디자인 및 사운드트랙 등의 음향, 음악 기술을 모두 통틀어 '연출'이라 칭할 때, '죽기 전 꼭 봐야 할 영화'의 기준은 이러한 연출이 극본과 함께 관객들에게 얼마만큼이나 다가갔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큰 축을 이루는 답변은 영화의 형식적, 미학적 요소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가졌고(영화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필요조건) 공감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가(윤지원)’, ‘음향/cg, 촬영기법 등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김수미)’, ‘내용과 형식, 연기 각각의 측면과 그 조합이 높은 완성도를 가질 때’(황인서)와 같이 우리가 흔히 좋은 영화, 꼭 봐야 할 영화를 말할 때 익히 거론되는 요소를 짚어준 분들이 계셨다.

 

 
안현지: 인생 영화의 기준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영화를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분 전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 이야기의 장, 다른 인물을 통한 새로운 세계 접해보기 등. 나는 이런 모든 영화의 기능, 역할을 포함하여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 혹은 시야를 넓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에 속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답변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의 주관적인 느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영화의 독특하고 멋있는 연출과 구도, 유명한 감독보다는 개인이 보고 느끼고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여운이 인생 영화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 영화는 한 번 보고 결정되기보다는 여러 번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개인마다 다른 인생 영화를 가진다.(박성준)', ‘남들이 뭐라건 그냥 내 맘에 드는 영화!(박태임)’,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언제든지 존재를 드러나 삶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영화(이정은)’, '관객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공감하며 내 삶의 태도에 그 메시지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인생 영화라고 생각합니다(유다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인생영화가 아닐까요!(김예솔)'와 같이 말이다.

 

물론 두 가지 측면 모두를 언급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분량 문제로 모든 의견을 다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

 

『죽기 전 꼭 봐야 할 영화 1001』같은 책은 여러 번 개정판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나온 영화에 대한 평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는 명작으로 여겨졌던 영화가 더 이상 그렇게 말하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과소평가 받던 작품이 다시 조명받기도 한다. 영화는 세상과 함께 변해가고, 우리의 취향, 영화를 보는 눈도 그렇게 변해간다. 2010년대 들어 여성영화와 퀴어영화가 더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주목을 받는 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더불어, 배우와 감독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요즘에는 영화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겨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감독의 영화를 쉽게 명작이라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을까?


때론 영화를 보는 환경의 변화가 영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19년 말, 2010년대의 영화계를 돌아보며 새로운 10년을 내다보는 특집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팬데믹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극장을 찾는 사람이 줄고 OTT서비스가 급성장하면서 여러 편의 영화가 극장 개봉을 미루거나 취소했다. 훗날 2020년대 영화들을 돌아볼 때 이러한 변수가 어떻게 평가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발명된 지 100년 남짓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앞으로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무궁무진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묵묵히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이번 질문에 대한 응답은 순전히 영화를 향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꽤 길게 답해야 해서 어찌 보면 귀찮을 법한 질문들에, 정해진 글자수를 꽉꽉 채워 응답해주신 내용을 읽으며 영화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취향은 만들어가는 것이고, 인생영화란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 과정은 모험이 아닐 리 없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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